비장애인 같다는 말을 칭찬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C) pixabay
나는 정신장애인이자 자폐인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장애와 자폐는 내부장애처럼 장애의 양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장애인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휠체어나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며, 복지카드도 없다. 겉으로도 나는 그럭저럭 눈맞춤도 하고, 말도 잘하고 글에도 능숙하다. 그런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장애인처럼 보이고는 한다. 아니, 장애계 동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장애인으로 본다.
비장애인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은 순간들이 생각난다. 한번은 내가 절망을 겪었을 때, 내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가 네가 무슨 장애인이냐는 말을 들었다. 그는 내 가족이었고, 내가 약을 먹는 정신질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한 번은 직장 동료분께 내게 비장애인인 줄 알았다는 말씀을 들은 것이었다. 그분은 내가 지속적인 약물치료가 필요한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셨다. 내가 지능검사에서 처리속도 영역이 경계선 지능 수준이라는 것을 말씀드리자 더욱 납득하지 못하셨다. 그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일을 잘하고 의사소통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이분들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의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분들은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자조하거나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서, 힘을 얻길 바라서, 능력을 칭찬하고 싶어서 그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러한 말들을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이제부터 자세하게 설명하겠다.
*장애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장애가 없는 것이 아니다
장애의 유형은 다양하다. 휠체어, 지팡이, 안내견 등으로 장애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작은 보조공학기기만을 사용하는 유형도 있고, 아예 아무런 보조를 받지 않는 유형도 있다.
정신적 장애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장애이기 때문에 장애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언행 혹은 심리검사 결과 등으로 진단하게 된다. 장애 정도가 객관적으로 중증인 당사자는 그 사람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기도 하지만, 경증이거나 경계선 범위에 있는 당사자는 약봉지나 약을 먹는 장면을 들키지 않는다면 눈치채기 어렵다.
그러나 겉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장애가 아닌 것이 아니다. 내부장애를 가진 당사자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것은 그 당사자의 내부장애 상태가 신체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장애 당사자가 약물치료나 상담 등의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하게 되면 상태가 급변할 수 있다. 비록 호전되었다 할지라도 주기적인 정신건강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그 컨디션 자체가 바로 장애 상태인 것이다.
정신장애인은 회복되었더라도 사회적 차별과 낙인을 계속해서 겪는다. 중대한 질환이 없다고 할지라도 당장 보험 가입부터 어렵다. 정신과 치료를 유지하고 있다면 운전면허 취득의 결격사유가 된다. 약 17개 가량의 법률에서 정신질환자 및 정신장애인의 자격 취득을 제한한다. 약 먹는 것을 들키면 소문이 퍼진다. ‘정신병자’, ‘정공(정신과 사유로 사회복무 판정을 받은 사람을 비하하는 말)’과 같은 욕이 공공연히 쓰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장애인 같다’라는 말이 당사자의 의학적, 사회적 장애를 없애줄 수 있을 리 없다. 오히려 당사자의 어려움을 부정하는 무책임한 발언이 될 수 있다.
*비장애인 같다는 말을 칭찬으로 사용하는 행위에 부정적인 가치판단이 담겨 있다
비장애인처럼 보인다는 말이 칭찬이라면, 그의 대우인 장애인처럼 보인다는 말은 욕이다. 비장애인처럼 보인다는 것, 장애 상태가 드러나지 않거나 숨기는 것이 좋다는 뜻이고, 장애인처럼 보이거나 장애 상태가 드러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런 말을 장애인 활동가가 좋아할 리가 없다.
당사자가 비장애인으로 보였던 이유가 당사자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라면, 장애인은 필연적으로 능력이 좋지 않은 것인가? 비장애인은 무조건 능력이 뛰어나고 장애인은 부족하기만 한 존재인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실무 능력, 예술적 능력, 인권감수성이 탁월한 장애인을 많이 봤다.
결국 장애인에게 ‘비장애인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은 칭찬이 될 수 없다. 듣는 사람이 장애인 활동가라면 더더욱 실례다. 장애인 활동가는 장애를 없애거나, 비장애인 ‘취급’을 받거나, 능력주의적인 칭찬을 듣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를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서 장애를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궤적과 정체성, 자부심을 부정하게 될 수 있다.
말은 그 사람의 세계를 드러낸다. 비장애인의 세계는 장애가 부끄러운 세계이지만, 장애인 활동가의 세계는 장애에 자부심을 가진다. 장애인과 소통하고 싶다면 장애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라. 그리고 그의 세계를 존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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