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령이 느껴지는 전등사와 보호수. ©하석미
【에이블뉴스 하석미 칼럼니스트】 봄의 기운이 서서히 피어나는 이 시기. 나무에는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자연은 다시 생명의 기운을 머금고 있다. 나는 본격적인 여행을 떠나기 위해 달력을 펼쳐 꽃이 피는 시기와 방문할 장소를 체크하고 있다. 매화, 산수유, 벚꽃이 만개할 곳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이번 여행지는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강화도의 천년 고찰, 전등사다.
천년을 지켜온 사찰, 전등사
전등사(傳燈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서기 381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이다. 불교가 한국에 전래 된 것이 서기 372년이니, 전등사는 불교 전래 초기부터 존재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전등사의 첫 이름은 진종사(眞宗寺)였으며, 고려 시대에 고려 충렬왕의 왕비 정화 궁주가 이곳에 옥 등잔을 기증하면서 전등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곳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왔다.
전등사를 만나다.
전등사는 산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장애인 차량은 사찰 마당까지 진입할 수 있어 수동 휠체어 이용자도 불편함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입구는 삼랑성 동문과 남문 두 곳이 있으며, 전등사는 일반적인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 삼랑성의 동문과 남문이 일주문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남문을 통해 사찰로 들어섰다. 문을 지나자마자 마주한 풍경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발길을 옮기다 보니, 전등사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부도전이 자리하고 있다. 역대 고승들의 부도탑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부도 앞에 서서 바람에 실려 오는 나무 향을 맡으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고 있다.

작은 불상들과 목어가 있는 전각. ©하석미
조금 더 올라가면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었던 적묵당이 보이고 있으나 지금은 숙소와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고, 이곳에서 흐르는 고요한 기운은 여전히 깊은 명상의 공간처럼 느껴지고 있다.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이곳의 시간을 생각해 보고 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것은 600년 넘은 은행나무이다. 두껍고 거친 나무껍질이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울퉁불퉁한 나무의 기둥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고 있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마저도 마음을 다독여 주고 있다. 은행나무 아래에 앉아 올려다보니, 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나며 다가오는 봄을 알리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며 나를 감싸고 있고, 나는 이 순간이 마냥 평온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고 졌다.

푸른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연등이 걸린 고즈넉한 풍경. ©하석미
전등사의 보물과 문화재
전등사는 수많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대표적인 것은 전등사 범종(보물 제393호)으로, 본래 대조루 옆 종루에 있던 것이 현재는 적묵당 옆 종각으로 옮겨 보관되고 있다. 그 외에도 약사전, 목조 석기 여래 삼불좌상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보물들이 남아 있다.
사찰 한편에는 전등사 약수터가 자리하고 있데, 방문객들이 추운 날씨에도 한 모금씩 마시며 자연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그곳에서 맑고 시원한 약수 한 모금을 마셨다. 약수 한 모금이 마셔보니 달콤함과 시원함이 마치 깊은 산속에서 전해지는 작은 선물처럼 느껴졌다.
휠체어에서 바라본 대웅보전과 대조루
전등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보물 제178호)은 크기는 크지 않지만, 조선 중기의 건축미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정교한 조각 장식이 눈길을 끌며, 건축을 배우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보는 곳이기도 한다고 한다. 계단만 있어서 가까이 다가가 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웅장함이 전해지고 있다.

계단만 있어 휠체어 사용인은 접근 금지구역. ©하석미
대웅보전 맞은편에는 대조루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강화해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있다. 휠체어에 앉아 이곳을 바라보는 순간, 평소보다 더 넓고 깊게 풍경이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멀리까지 시야를 열어주고, 바람에 실려 오는 풀 내음과 바다 향이 감각을 깨운다.
대조루는 단순한 누각이 아니라, 건축적으로 정교한 설계를 갖춘 공간이다. 특히 대조루에서 대웅전을 바라볼 때 시선이 25도 위쪽을 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휠체어에 앉은 나의 시선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들게 되고, 그 앞에 자리한 불상을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대조루 옆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한참 동안 머물며 풍경을 감상하기에도 좋았다. 산과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봄의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차가운 계절이 지나가고 따뜻한 기운이 퍼져가는 이 순간,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이 풍경은 그 어떤 자리에서도 느끼지 못할 특별한 감동을 준다.

맑은 날씨 속에 펼쳐진 전등사에서의 탁 트인 전망. ©하석미
무장애 여행을 위한 안내
초입 주차장에서 출발할 때, 전등사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길고 가파르다. 따라서 휠체어가 과부하로 멈추거나, 내려올 때 작은 모래들로 인해 미끄러질 위험이 있으니 반드시 다른 분의 도움을 받아 이동하는 것이 좋다.
직접 이동해 본 결과, 두세 차례 휠체어가 멈추는 경험을 했으며, 내려올 때도 미끄러질 뻔해 많이 놀랐다.

길게 이어진 경사로 길 조심조심.©하석미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무장애 여행을 계획할 때는 이동 경로의 경사와 안전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점이 걱정이 된다면 대웅전 마당까지 들어가 하차하시면 됩니다.
전등사에서 맞이하는 봄
전등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천 년의 시간이 흐른 공간이며,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특별한 장소다.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멀리 산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우며, 사찰을 거닐며 차분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
차가운 겨울바람이 남아 있는 길을 걸으며, 조금씩 따뜻해지는 햇살을 맞이하는 시간. 전등사는 마치 계절의 경계를 넘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 속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다.
봄이 오면 더욱 아름다워질 전등사에서, 한 잔의 따뜻한 차와 함께 천년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무장애 여행을 위한 편의시설
장애인 화장실: 기존에는 없었지만, 최근 새롭게 조성되었습니다. 다만 출입문이 좁고 내부 공간이 협소하여 실제 사용이 어렵다. 보다 편리한 이용을 원하신다면 주차장 근처 공중화장실을 이용.
식당: 남문 입구에 휠체어 출입이 가능한 식당이 있음.
전등사 정보
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전등사로 37
문의: ☎ 032-937-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