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작가는 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일을 하다가 연구원을 거쳐 장애운동가로 변신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장애차별분야 전문위원, 한국발달장애가족연구소 이사장, 장애여성네트워크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팟캐스트 ‘A의 모든 것’ 진행도 하고 있다. 2017년 대한민국인권상 국민 포장을 받았다.

김효진 작가가 지은 책으로는 “이런 말, 나만 불편해?”, “특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엄마는 무엇으로 사는가”, “모든 몸은 평등하다(공저)”, “오늘도 난, 외출한다” 등 5권의 장애 관련 에세이집이 있고 장편 동화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 할래”를 썼다.

아홉 번째 작품으로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장애는 그야말로 수많은 다양성 중 하나’라는 설명이 책 표지에 붙어 있고, ‘장애 공감 지수 높은 사회로 가는 장애 내비게이션’이란 부제도 붙어 있다.

지난 9월 30일 오후 6시 이룸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 북토크에서 작가는 에세이가 아닌 다른 형식의 문학작품으로, 가르치려 하는 것이 아닌 사실을 담백하게 나타내는 내용으로 쓰려고 했는데, 출판사 편집장이 사회에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경험한 사실에 생각과 주장을 더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북토크에서 아들 찬이가 엄마는 국문학과를 나왔으니 다른 문학작품도 쓸 수 있는데, 왜 장애 관련 글만 쓰느냐는 불만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북토크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참석했는데, “엄마는 오늘도 소금땅에 물 뿌리러 간다”의 최유진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장애와 여성, 그리고 노인의 문제와 맞닥뜨리고 있는 작가는 삼중차별은 더하기가 아니라 더 확장된 문제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의 작가 윤상원 작가의 강의에서 말한 “장애학생은 왜 노란 등하교 버스만 타야 하는가”에 대한 말을 인용하면서 장애문제는 감수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재해석해야 함을 강조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북토크에서 자립이나 특정 분야의 복지 또는 정책적 혜안을 묻는 질문에는 참석한 관객 중 전문가를 찾아 대신 말하도록 부탁하는 겸손도 보였다. 참석자들은 한 권만 더 출판하면 10권이 되는데 그것을 기대한다는 말과 이번에 출판된 책이 장애인식 개선을 하거나 장애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교재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했다.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서인환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서인환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은 19가지의 경험한 사례와 이에 대한 생각을 주제별로 나누어 담고 있으며, 이를 정리하여 요약한 메시지를 부록처럼 제시하여 정말 교재처럼 만들어졌다. 주장을 보려면 부록만 봐도 좋고 부록부터 보고 본문을 읽어도 좋다. 아니면 본문을 읽고 부록으로 요약해서 본인이 읽은 것을 다시 정리할 수도 있다. 아래에서 주제들을 한 문단씩 소개해 본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보면 가르치려 한다고 했다. 택시를 타도 장애인에게 예의를 가르치려 하고, 편하게 나랏돈 받으며 살 수 있는 좋은 제도(기초생활수급제도)가 있는데 왜 일을 하느냐고 가르치려는 이웃도 있다. 그것이 친절인 줄 안다. 하지만 불편하다. 오히려 배워야 할 사람들이 가르치려 든다. 맨스플레인(설명하는 남자)이란 용어를 소개하면서 남자들도 여자들에게 가르치려 한다고 하였다. 지하철에서도 말을 거는 사람이 많아 외출은 피곤하다. 충고는 원할 때에 해야 한다.

신호가 왔을 때 언제든지 쌀 수 있어야 좋은 사회라고 했다. 화장실 문제는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일상생활에 장애인 화장실 설치 여부는 늘 알아두어야 하는 문제다. 초등학교 할아버지 등에 업혀서 등하교를 하던 작가는 할아버지가 늦게 와서 오줌을 싼 기억을 말하면서, 늘 놀림을 받아 이골이 나 있지만 반장의 ‘오줌싸개’라는 놀림은 아무리 이골이 나도 아픔은 새롭더라는 말을 한다. 장애인화장실이라도 자동 물 내림 등 편리하지 않은 곳이 많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청소보관함으로 방치 하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화장실은 복도에서 바로 들어가도록 하고, 일반 화장실 내를 통과하게 하는 것은 서로가 불편할 수도 있다.

장애가족 동반자살(사회적 타살)을 언급하면서 사회가 절망을 주어서는 안 되고, 가족도 장애인을 대신해서 살아가는 선택을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장애인도 늙어서 죽고 싶다고 소리친다. 열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언니의 죽음을 상기한다. 아픔으로 인해 몸만 아니라 추억 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 누구도 먼저 말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하필이면 멀쩡한 사람을 데려갔느냐고 말했단다.

강자는 약자에게 사과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죄가 있다면 장애인을 낳은 것이다.’라는 발언에 대한 사과문을 예로 들면서 자신은 비하의 의도가 없었고, 받은 상처에 대해 사과한다는 식의 회피용 사과나 장애인의 자격지심이라는 말은 이중 차별이다. 차별은 의도성과는 무관하다. 차별을 인정하고 구체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경청, 판단보다는 공감하는 어른이 필요하다고 작가는 말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장애 관련 코미디는 승화된 예술이지만 그 속에 뼈가 들어 있다. “특수학교라니 특수부대나 보내든가”, “음성체온기로 체온을 재면 정상입니다라는 말을 하는데 나보고 정상이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의 유머를 예로 든다.

작가는 어른을 사회에 비유한다. 마사 누스바움의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에서 나이 드는 것에 불행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고, 유머와 이해와 사랑은 필연적으로 따라오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한다. 유머는 저항정신에서 오며 통쾌함을 준다. 약점을 치부로 여기지 않고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려면 사회가 편하게 받아주는 상대가 되어 주어야 한다.

여성의 정체성은 장애 앞에서 사라진다. 장애인을 무성으로 인식하거나 불편하니 집에 있으라고 하는 사회는 변해야 한다.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의 자긍심”이란 책은 장애를 무성 취급하는 사회를 꼬집는다. 노인인데 스마트폰을 잘 쓴다거나, 장애인이니 민원서류를 대신해 주려고 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차별이다. 원하는지, 필요한 도움인지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누구에게는 해 주지 않아 차별이고 누구에게는 해 주면 차별이다. 장애인과 노인도 활동을 해야 하고, 고립과 은둔은 해롭다고 작가는 힘주어 말한다.

사람들은 서로 의존한다. 장애인도 이웃으로 받아들여 상호의존을 인정한다면 양육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아이는 혼자서만 키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장애인의 양육에 대해 부정적이다. 원래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작가는 공학기술의 발전과 보조공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지체장애는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걷는다고 말한다. 지팡이와 전동휠체어의 사용 경험을 들려주며, 무사히 할머니가 되었다고 말한다. “나이 든다는 드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상냥함을 잃는 것이 두렵다”는 장혜영 전 의원의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노래를 소개하면서 하루하루 전쟁 같은 터널을 지나 무사히 할머니가 도착했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장애여성 예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는데, 장애여성 관점에서 해석하면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는 말로 새로운 지평을 위한 제대로 된 대접을 요구한다. 장애화가 모드 루이스를 언급한다. 그는 비전공 화가로 외출이 어려워 집에서 창밖의 풍경을 주로 액자 형식으로 그렸다. 장애가 아닌 작품에서 그는 재평가를 받았다. 윤심덕이의 예술성보다 연애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듯이 프리다 칼로 역시 남편의 명성 뒤나 장애가 아닌 화가로 뒤에 가려져 재평가를 받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의존을 피할 수 없다. 의존의 선택을 할수 있느냐가 자립의 중요한 요소다. 자기 개발을 위해 나쁜 장애인이 될 용기도 필요하다. 만화방을 하며 생계를 유지한 가족 이야기와 가족을 떠나 공부하기 위해 수녀원에 들어간 이야기, 친구가 없어 외로워하다가 친구에게 시간을 내주어야 친구가 됨을 발견한 경험을 전하며, 상호 의존하며 용감하게 사는 법을 알려준다.

인간관계에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매달리면 호구가 된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도 주로 들어주어야 했고, 필요할 때만 찾아주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작가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장애인은 만나는 폭이 좁아 친구나 동료가 더 소중히 여겨질 수 있지만, 너무 친해지면 나중에 오히려 더 멀어질 수도 있다.

특히 상대가 나를 필요로 이용했다면 말이다. 작가는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할 때부터 연구원 생활을 하기까지 줄곧 돈을 빌려준 친구 이야기도 들려준다. 발달장애인은 친구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사처럼 봄날의 햇살 같은 친구를 만들려면 친구 사귀기의 시행착오와 판단력을 갖기 위한 주의가 필요하다. 평등한 관계를 맺으려면 상당한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작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한다. 장애와 비장애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끌리는 인간의 관계라야 한다고 말한다. 어릴 때에는 부모와 그냥 살자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커서는 연예상담을 하며 지내다가 마흔이 되어 처음에는 호감이 없었으나 충실함을 보고 끌리게 되어 결혼했다고 한다. 위라클을 운영하는 온라인콘텐츠 창작자 박위 씨와 걸그룹 출신 송지은의 결혼 발표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장애인은 기적, 비장애인은 천사 일변도였다. 결함 없는 결혼 상대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인간 사랑의 결과일 뿐이다.

활동지원을 받아야 하는 장애여성에게 가족 돌봄을 떠맡기는 것은 장애여성에 대한 중첩적 차별이라고 본다. 어떻게 키웠는데 하면서 과도한 역할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립해서 살만하니 착한 장애인에게 가족 돌봄의 책임을 지라고 하면 장애인은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의해 착한 효도 콤플렉스가 발동된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만 돌봄을 책임 지우는 것은 사양한다고 말한다. 장애여성도 누군가의 이모, 고모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헬렌 켈러의 ‘위험을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말을 인용한다. 코로나 첫 사망 피해자가 장애인이었으며, 아파트 엘리베이터 수리를 하면 장애인에게는 대책이 없으며, 장애를 경제적 부담으로 여긴다고 꼬집는다. 아들 찬이가 불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너 혼자 도망가라’고 한 에피소드는 아직도 안전은 먼 숙제임을 보여준다.

장애인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환대라며, 장애인의 무장애 공간인 케렌시아(안식처, 쉼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와지’가 운영하는 렁트멍(느리게 천천히) 모임이나 나이브아트 스토리가 운영하는 ‘그림이야기’는 예술인들에게 케렌시아 역할을 한다. 장애 예술인들을 위한 케렌시아가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인생도 여행이다. 여행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젖힐수 있는 기회다. 굳이 장애인 마크가 없어도 접근성이 보장되는 외국의 화장실을 보게 되면 어떤 사회 모습이 바람직한지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캐나다 여행에서 그냥 일상이 된 접근성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이 없는 활동을 보았다. 타이타닉 기념 페어뷰 론 묘지조차도 접근성이 좋아 도심에서 언제나 추모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전윤선 작가가 여행은 ‘강물처럼 흘러 바다를 만나는 여정’이라 했는데, 김효진 작가는 장애인에게 고생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맞추어진 사회에서 신경다양성(자폐)도 수용해야 한다며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장애여성 네트워크 활동가 현희를 추억한다. 그리고 병리학이 아닌 생물학적 다양성으로 보는 신경다양성에 대해 설명을 한다.

주호민 자녀 사건에서 장애인은 안전한 사회가 보호해야 하며, 장애학생의 목소리가 사건에서 빠져 있음을 지적한다. 작가는 대학시절 장애로 인해 지각했을 때 ‘장애인은 더 열심히 해야 한다’며 교수에게 혼난 이야기도 들려준다. 주호민 작가 자녀 사건에서 시시비비를 위해 장애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드러난 것도 문제라고 언급한다.

장애는 가족 단위로 다루어져야 한다. 장애인의 형제자매가 장애인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겠지만, 자신의 길을 변경할 필요는 없다. 장애가 가족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해 주는 것 정책이 필요하다. 작가는 여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가는 동생을 지지해 주고 있다. 김나무(필명) 작가의 ‘조금 불편해도 나랑 노니까 좋지’에서 다룬 장애 형제자매 문제를 소개하면서 형제자매도 함께 돌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김효진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엿들으려면 부록만 봐도 되고, 소개 기사만 봐도 된다. 하지만 이해하려면 꼼꼼히 읽어야 한다. 차별 문제는 대충이 없다. 그리고 풍부한 사례 경험을 자기화하고 차별학의 이론들을 무기화하거나 타인에게 설명하려면 원문을 읽어주기 바란다. 60년 동안 모아둔 작가의 체험담을 놓치지 않으면 공감이나 감수성이라는 선물을 받게 될 것이다.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은 서울문화재단의 장애예술 창작지원 사업으로도 선정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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