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하는 레인맨의 행동이 정말 기괴하다고 생각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봤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를 너무 잘하고 조연으로 나온 톰 크루즈가 잘 생겨서 스토리나 시사점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을 26년 동안 매일 마주 보면서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다시 이 영화를 보니 30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면서 봤던 영화의 장면마다 제 아들이 겹쳐지면서 단 한 장면도 그냥 웃고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레인맨처럼 제 아들도 밥 먹는 시간 간식 먹는 시간을 정해 놓고 정확하게 지킵니다. 정해진 메뉴도 있습니다. 항상 하루 3끼 하얀 쌀밥, 두부 8조각이 반드시 들어가 있어야 하는 국, 김치, 고기, 샐러드나 시금치입니다. 반찬은 3가지 종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3가지 미만이거나 4가지 이상이면 먹지 않습니다. 월요일은 두부 8조각이 들어가 있는 국 대신에 치즈를 끼니마다 먹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해둔 이 규칙을 26세가 된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뉴스는 매일 KBS1 9시 뉴스를 봅니다. TV를 켜는 시간은 정확하게 8시 57분입니다. 매일 8시 59분은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멘트가 나오면서 우리나라 명소들을 영상과 함께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명소 이름이 자막으로 나오면 매일 쓰는 일기장에 반드시 씁니다.

레인맨과 다른 점은 제 아들은 책을 절대로 읽지 않고 기억력도 좋지 않고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할 정도로 천재가 아닙니다. 매일 뉴스를 봐도 비행기사고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해서 비행기를 잘 탑니다.

최근 방송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천재적인 변호사 우영우가 자폐성장애인입니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서번트 증후군인 우영우나 레인맨과 같은 자폐성장애인은 현실에서 존재하는 경우는 0.1% 정도로 매우 적습니다.

자폐성장애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자폐성 장애인은 모두 레인맨처럼 한 가지 분야에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습니다.

자폐성장애인은 잠재된 능력, 나타나는 장애정도나 양상이 스펙트럼처럼 매우 다양하여 자폐스펙트럼장애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레인맨은 어릴 때 시설에 맡겨져서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시설에서만 살았습니다. 엄마가 어릴 때 죽고 레인맨을 돌봐줄 사람은 없고 밑에 어린 동생이 레인맨 때문에 다칠까봐 염려가 되었던 아버지는 레인맨을 시설에 보냈습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설은 너무 좋아 보였고 최대한 레인맨에게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시설이 감옥이라면 저 정도로 좋은 시설도 감옥이 될 수 있을까? 만약 레인맨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동생과 함께 성장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의문점이었습니다.

미국은 신탁이 우리나라보다 빨리 잘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절감했습니다. 레인맨 아버지는 비장애인 동생에게는 단 한 푼도 상속하지 않고 장애인 아들인 레인맨에게만 유산의 거의 전부를 상속합니다.

레인맨이 자폐성장애인이라서 돈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으니 아버지는 30억을 친분이 있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신탁합니다. 30억 수탁자는 최선을 다하여 레인맨을 위해서만 그 돈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돈을 한 푼도 물려받지 못하고 장미정원과 자동차만을 유산으로 받은 동생은 돈을 받아낼 목적으로 레인맨을 시설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형의 존재조차 몰랐던 동생은 레인맨이라는 형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자폐적 특성으로 인한 형의 집착과 기괴한 행동에 화를 내기도 하지만 계속 같이 여행하면서 형의 기억력과 계산능력이 천재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카지노로 데려갑니다.

천재 형 덕분에 카지노에서 단 하루 만에 돈을 왕창 벌면서 동생은 지금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형에 대한 연민이 솟구칩니다. 대부분의 자폐성장애인들처럼 형이 천재적인 능력이 전혀 없고 기괴한 행동만을 반복하고 사소한 것에 병적으로 집착하기만 했다면 없던 형제애가 갑자기 생길 수 있었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생긴 의문입니다.

맨 마지막에 레인맨은 동생과 함께 살 것인지 시설로 돌아가서 살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정확한 의사 표현을 못 합니다. 오락가락 답변을 계속하다가 결국 시설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레인맨은 자신이 자폐성장애인이라는 인식도 없고 천재적인 계산능력은 있지만 아주 간단한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일상용품의 가격들을 잘 알지 못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탈시설 움직임에 찬성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뉘어 있습니다.

레인맨처럼 현실 인식이 떨어져서 일상생활이 어렵고 확실하게 시설 밖에서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나 선택이 없는 경우에도 시설 밖으로 나와서 독립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인가?

시설 밖에서 동생과 살아야한다고 탈시설하도록 선택을 강요해서 거의 평생을 살아온 시설을 떠나서 동생과 살아야 한다고 하면 동생이 형을 24시간 돌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활동지원사가 교대로 돌봐야 하는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해야 하나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포기할 것입니다. 국가는 지속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레인맨이 시설 밖에서 살아야만 행복할까요?

영화를 보는 동안 계속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