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이제 드라마가 끝나서 아쉽지만, 나는 드라마를 통해 더 아쉽기만 한 현실이 답답했다.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차정숙이 간 이식 수술 후, 장애인 등록을 하고 장애인 주차 스티커를 발급받게 되는 내용이 나온다. 특히 12화에서는 남편인 서인호가 본인의 장애인 주차 스티커를 떡하니 차에 부착하고, 불륜녀를 태우고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차정숙은 남편에 대한 회의를 느끼며 이혼을 결심한다. 그런데 그 장애인 주차 스티커는 '주차불가' 표시가 되어 있다.  '주차불가'인 장애인 주차 스티커는 당연히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할 경우, 불법이다.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속 장애인 주차 구역 '주차 불가' 표지. © 박혜정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속 장애인 주차 구역 '주차 불가' 표지. © 박혜정

하지만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인 나는 이 장면에서 답답함을 느꼈다.당연히 '주차불가'인 차량이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하면, 불법이니 신고를 하면 된다. 드라마에서 이런 내용을 사람들에게 인식시켜 주는 부분은 좋다.

그러나 현실에서 '주차불가'인 차량이 불법 주차를 하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오히려 '주차가능' 표지인데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 멀쩡하게 걷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는 게 답답한 현실이다.

가족 중에 휠체어나 보장구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있어서 '주차가능' 스티커를 발급받았다면, 장애인이 동승하지 않았을 땐 주차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수없이 겪은 바로는 운전자나 동승자가 장애인 등록을 하고 '주차 가능' 스티커까지 발급받았으나 아무런 보조 기구(휠체어, 목발, 워커 등) 없이 멀쩡하게 걸을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등록까지 합법적으로 했고, '주차 가능' 스티커도 발급 받았으니 당연히 주차하는 게 맞고, 내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부분이 맞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 가능' 표지가 있는 차량이 주차를 했지만, 보행에 큰 문제가 있는 분이 아니었다. © 박혜정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 가능' 표지가 있는 차량이 주차를 했지만, 보행에 큰 문제가 있는 분이 아니었다. © 박혜정

하지만 아래 영상을 보시고 한번만 생각을 해봐 주시길 부탁드린다.

​나와 같이 휠체어를 무조건 타야 하는 하반신 마비나 거동이 아예 안되는 중증 장애인은 장애인 주차 구역이 무엇보다 필수적인 부분이다. 신체적으로 더 힘드니까 단순히 나에게 특혜를 달라, 양보해 달라는 것이 아니다.

휠체어를 타는 내가 처음 임용된 2010년, 우리 학교에서는 나를 위해 장애인 주차 구역을 처음으로 하나 만들어 주었다. 나는 매일 아침 출근을 해서 하나뿐인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영상 속 남자 분이 하나뿐인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를 하셨다. 전화를 해서 나는 휠체어를 빼고 내리기에 이 공간밖에는 없고, 다른 주차 구역에는 차를 대고 전혀 내릴 수가 없다고 양해를 수차례 구했다.

그러나 이 분은 다리에 철심 2개를 박아서 장애인이고, 주차가능 표지가 있기에 본인도 주차할 권리가 있다고 하셨다. 또, 멀리 주차를 하고 오면 본인도 다리가 욱씬거린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어렵게 휠체어를 빼고 내리는 걸 보시고도 절대 양보해주지 않으셨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아침마다 주차하고 내릴 곳이 없어서 사무실에 한동안 제 시간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빼고 내릴 수 있는 공간을 찾아 한참을 헤매거나, 도저히 공간이 없으면 불법 주차이지만 인도에 주차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알고 보니 같은 건물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었다. 가끔 복도에서 뵀을 때, 급하게 뛰어가는 모습도 많이 봤다. 이 분은 시차 출근으로 8시 출근하시는 분이어서 내가 주차를 먼저 할 수도 없었다.

이 분과의 갈등으로 내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자 이런 영상을 올리는 게 절대 아니다. 그래도 멀쩡하게 걷고 뛰는 이 분은 다른 곳에 주차할 수도 있으시지만, 나와 같이 휠체어로만 이동이 가능한 중증 장애인은 다른 곳에는 전혀! 주차할 수가 없는 절실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장애를 입은지 오래된 편이지만, 누구보다 활동량이 많다고 자부한다. 병원, 마트, 재래 시장 뿐만 아니라 아이들 학교 운영위원, 간담회, 학부모 연수 등에도 빠지지 않고 간다. 내가 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도 도움을 받아 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몰, 키즈카페, 박물관, 과학관, 산, 바다, 국내여행, 해외여행 등 장소를 막론하고 어디든 가게 되면, 장애인 주차 구역 때문에 자주 곤혹을 치르게 된다.

최근 들어 어디를 가나 더욱, 장애인 주차 구역에 멀쩡한 사람들이 주차하는 걸 너무 많이 보게 된다. 그로 인해 내가 주차할 구역이 아예 없는 난감한 경우에 많이 처한다. 물론 멀쩡해 보여도 본인만의 힘든 장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보행의 장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주차 구역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엄마인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를 가고, 아파서 병원을 가고, 마트를 가는 등 모든 생존의 상황에 장애인 주차 구역이 없다면, 정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어디도 갈 수 없다. 이걸 단순히 중증 장애인이 누리는 특혜 정도라고 생각하시는가?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어쨌든 살아 가려면 '장애인 주차 구역'이 특혜가 아닌 생존, 필수이다!

수차례 건의 후, 장애인 주차 구역을 늘렸지만, 역시 내가 주차할 곳은 없어지고 있다. © Unsplash
수차례 건의 후, 장애인 주차 구역을 늘렸지만, 역시 내가 주차할 곳은 없어지고 있다. © Unsplash

영상 속 이 남자 분과 실랑이를 하다 시설과에 수없이 건의를 해서 장애인 주차 구역을 4개로 늘려 주셨다. 처음 늘렸을 때는 자리가 남아 도는 것 같았다. 나의 주차 자리도 확보되는 듯 했다. 해결이 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장애인 주차 가능 마크를 부착한 새로 보는 차량들이 주차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다시 내가 주차할 공간이 없을 때가 많이 생겼다.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한 차주를 목격할 때가 있었다. 딱 한 분만 목발을 짚으시고 거동이 많이 불편하신 분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도대체 어디에 장애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분들이었다.

​앞으로 예전과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땅덩이도 좁은 나라에서 장애인 주차 구역만 늘리는 게 해결책일까? 사람들의 인식과 법이 바뀌지 않는 한, 나같은 사람은 솔직히 살아갈 수가 없다. 이동을 위해 어디를 가서도 주차하고 내리고 탈 수가 없으니까 말이다. 출근해서 사무실에 올라가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도 진료를 받지 못하고... 앞으로 도대체 어디에 갈 수가 있을까?​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도대체 나처럼 보행이 전혀 안되는 사람은 어디에 주차할 수 있을까? © Unsplash
도대체 나처럼 보행이 전혀 안되는 사람은 어디에 주차할 수 있을까? © Unsplash

제발 장애인 주차 구역이 정말 필수불가결하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공간이 되길 간절히 호소한다! 장애인 주차 가능 표지를 발급하는 기준과 규정, 법령이 제대로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꼭 재정비되어야 한다! 필수불가결하게 그 공간이 필요한 사람만 양심적으로 주차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올바른 인식이 정립되길 진심으로 희망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