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센터 복지시설화, 기로에 선 장애인자립생활운동 ①

지난 1월 26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장애인복지법상의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장애계의 오랜 갈등을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다. 현재 이 개정안에 대해 장애인자립생활운동 진영은 찬반으로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비마이너는 두 차례에 걸쳐 개정안과 관련한 쟁점사안을 보도한다. 개정안은 지난 4월 27일 상임위를 통과해 현재 법사위 심사를 앞두고 있다.

- ‘IL센터 관리‧감독 안 된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의 실체

2000년대 초반 이동권 투쟁,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 투쟁과 함께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 시작되면서 지역사회에 장애인자립생활센터(Center for Independent Living, 아래 IL센터)가 설립됐다. IL센터에 대한 국고 지원이 시작된 것은 2005년 보건복지부가 ‘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중증장애인의 사회참여 증진, 사회적 관계의 변화, 생산적 참여자로서의 역할 찾기 등을 시범사업 목적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IL센터는 기존 장애인복지시설과 달리 장애인 당사자가 IL센터 소장을 맡고, 직원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에 관한 법적 근거는 2007년 장애인복지법이 전부개정되면서 만들어졌다. 이때의 개정으로 장애인자립생활을 명시한 ‘제4장 자립생활의 지원’이 새로 생기고 그 안에 4개의 조항(53~56조)이 신설됐다. IL센터에 대한 예산 지원은 54조에 근거한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이처럼 기존에 독립된 조항으로 존재하는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58조)로 편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장애인복지시설에는 장애인거주시설, 지역사회재활시설, 직업재활시설, 의료재활시설 등이 있다. 개정안대로라면 IL센터는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거주시설과 같은 우산 아래 있게 된다.

한 장애인 활동가가 “4월 26일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의 거짓 주장과 날치기 통과 규탄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 장애인 활동가가 “4월 26일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의 거짓 주장과 날치기 통과 규탄한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개정안 발의 이유에 대해 이종성 의원은 IL센터에 대한 관리·감독이 잘 되고 있지 않아 이를 강화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의원은 “IL센터는 장애인의 자립생활 실현을 위해 필요한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로 장애인복지시설의 성격을 띠고 있음에도 이 법에 따른 장애인복지시설에 해당하지 않아 회계 및 감사 등의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면서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로 포함함으로써 IL센터의 관리 투명성 및 서비스 질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근배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는 “IL센터는 보조금 관련 법과 지침에 따라 모든 점검과 관리를 받고 있다”면서 “IL센터가 관리·감독이 안된다는 주장은 보조금 사업 수행기관이라면 당연히 받는 관리·감독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반박했다.

현재 IL센터는 장애인복지사업 중 하나인 ‘장애인자립생활지원사업’이라는 명칭의 공모 사업을 통해 운영비를 지원받는다. 이를 통해 IL센터의 기본사업 네 가지(권익옹호, 동료상담, 개인별 자립지원, 탈시설 자립지원)를 수행한다. 장애인복지시설처럼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보조금을 받는 것이 아닌 수행기관이 3년마다 공모사업에 참여해 지원받을 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운영은 불안정하다.

그러나 관리·감독은 모든 보조금 사업과 동일하게 이뤄진다. 공모사업을 통해 국고보조금을 받는 IL센터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따라 연 1회 보조금 집행에 대한 지도점검을 받는다. 연 4회 분기별로 보조금 정산을 보고하고, 연말에는 1년간 사용한 보조금에 대한 연간 정산보고서를 별도 제출한다. 그 외에 IL센터가 활동지원서비스, 자립생활주택, 응급안전서비스 등의 사업을 추가로 민간위탁 받아 운영한다면 이에 대한 관리·감독도 별도로 받게 된다.

지난 5월 9일 오전 8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복지법 개악 및 장애인자립생활운동 퇴행 저지 긴급 투쟁단’을 꾸리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퇴행시키는 개악안’이라며 긴급 투쟁을 선포했다. 사진 강혜민
지난 5월 9일 오전 8시,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는 ‘장애인복지법 개악 및 장애인자립생활운동 퇴행 저지 긴급 투쟁단’을 꾸리고 국회의사당역 승강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이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을 퇴행시키는 개악안’이라며 긴급 투쟁을 선포했다. 사진 강혜민

- 활동지원사업 수수료 사용이 ‘IL센터 관리 부실’의 근거?

2005년 IL센터 시범사업 이후, 자립생활운동 진영은 장애인의 자립생활 지원 정책 확대와 IL센터의 기능강화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현재 국회에 발의된 법안 개정 사유와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보다는 IL센터와 활동지원서비스 중개기관에 대한 불신과 모욕, 특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와 함께하는 IL센터에 대한 편 가르기와 비난만이 난무하고 있다.

4월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이 법안이 상임위에서 어떻게 논의됐는지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다. 이날 이종성 의원과 보건복지부는 IL센터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로 활동지원 중개수수료를 꺼내 들었다.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를 연결해 주는 중개기관이 떼어가는 수수료에 대한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법안 논의 초점이 이종성 의원이 밝힌 개정안 사유와 다소 엇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IL센터’와 ‘활동지원 중개기관’은 엄연히 다르다. IL센터가 활동지원사업을 민간위탁 받아서 운영한다면 ‘활동지원 중개기관’이 되지만 모든 IL센터가 곧 중개기관은 아니다. 따라서 IL센터의 관리‧감독 부실의 근거로 활동지원 중개수수료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과관계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활동지원사업은 IL센터가 민간위탁 받은 여러 사업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날 보건복지부와 이종성 의원은 이 둘을 교묘히 섞어 이야기한다.

“1조 9000(억 원) 정도를 활동보조 사업에 쓰고 있고 활동보조 사업을 쓰는 전달체계가 사실은 이 자립생활센터거든요. (중략) 75%는 활동보조인에게 주고 나머지 25%를 가지고 그중에서 물론 사회보험도 가입해 주고 하지만 거기에서 운영비를 가지고 수익을 하는 그런 기관이거든요. (중략) 그래서 그런 것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관리감독의 범위에 들어가야 되고 (……) 저희도 같은 입장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

이기일 차관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IL센터들이 활동지원사업 전달체계 대부분을 차지한다. 활동지원 예산 1조 9천억 원의 25%(4750억 원)가 IL센터 운영비로 쓰이며, 여기서 수익이 발생하는데 관리‧감독이 안 되고 있다.’

첫 번째 문장부터 검토해 보자. ‘IL센터가 활동지원사업 전달체계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활동지원중개기관 1097곳 중 IL센터는 196곳(17.8%)에 불과하다. 참고로 이중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아래 협의회) 소속 IL센터는 67개소로 전체 중개기관의 6%다.

두 번째 문장을 검토해 보자. 활동지원 예산 1조 9천억 원은 어떻게 쓰일까. 대부분 활동지원사 인건비다. 활동지원서비스를 중개할 경우, 중개기관은 바우처 단가(15,570원)의 75%(11,677원)를 활동지원사 인건비로 지급하고, 25%(3,892원)는 운영비 명목으로 쓰게 된다.

그런데 25%를 중개기관 운영비로 모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돈에 대한 우선순위와 지출범위는 활동지원사업안내 지침에 정해져 있다. 이에 따르면, 활동지원사업에서 발생한 중개기관의 사업비는 ①활동지원인력의 임금 ②기본경비, 관리책임자 및 전담관리인력 인건비 ③활동지원인력 처우개선을 위한 장기근속수당 및 별도 수당 등 ④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장애인복지사업(활동지원 관련 사업 우선)에 우선순위를 두고 집행해야 하며, 이외 사용은 금지하고 있다. 즉, 활동지원사의 주휴수당·연차수당과 같은 법정수당, 4대 보험과 퇴직적립금 등을 ‘25%(3,892원) 안에서’ 지출해야 한다.

‘2023년 활동지원사업안내 지침’ 150쪽에는 ‘활동지원사업에서 발생한 기관의 사업비는 다음의 우선순위에 따라 집행하여야 하며, 목적 외 사용은 금지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2023년 활동지원사업안내 지침’ 150쪽에는 ‘활동지원사업에서 발생한 기관의 사업비는 다음의 우선순위에 따라 집행하여야 하며, 목적 외 사용은 금지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백인혁 협의회 정책국장은 “최저임금으로 잡고 계산해도, 현재 활동지원 바우처 단가에서 ‘법정수당과 4대 보험, 퇴직적금립 등을 포함한 활동지원사 인건비’를 빼고 나면 300원밖에 안 남는다”면서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사업 전담인력 인건비, 통신비 등을 바우처 단가의 3%에 불과한 돈(300원)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애계는 매년 중앙정부에 활동지원 바우처 단가 인상을 요구해 왔지만 수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정부는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를 책정해 그 안에서 민간 중개기관과 활동지원사가 알아서 나누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래야 적은 예산으로 활동지원사에 대한 법정수당, 4대 보험, 퇴직적립금 등에 대한 책임까지 온전히 민간기관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백 정책국장은 “중개기관은 전체 바우처 수입과 지출에 대한 결산서를 매년 공시해야 하며, 자치구 지도점검과 국민연금공단 정기평가를 계속 받는다”면서 관리‧감독이 안 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 복지부 차관, 법안 심사 중 갑자기 ‘전장연’ 언급

중개기관의 열악한 상황을 보건복지부 또한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기일 보건복지부 제1차관은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에 참석해 “한자협(협의회를 지칭)은 반대하는 쪽인데 여기가 지금 전장연하고 같이 있는 단체”라면서 “법안에 들어오게 되면 예산은 지원받겠지만 관리·감독이나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성 의원 또한 “(활동지원사업 예산을 집행하는 IL센터들이) 자격 기준도 없이 이렇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며 이 차관의 말에 힘을 실었다. 마치 협의회 소속 IL센터들이 어떠한 관리·감독도 받지 않고 정부 예산을 마음대로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관리·감독을 피하기 위해 반대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단체를 ‘전장연과 같이 있는 단체’라고 콕 집어 언급한 것도 눈여겨 볼만하다. 작년 3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당대표부터 시작해 올해 2월 오세훈 서울시장까지, 이들은 지속해서 ‘활동지원 중개수수료 25%’를 전장연이 편취해 가는 것처럼 호도한다.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전장연을 향한 정치적 공격 수단으로 지속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전국 활동지원중개기관 중 협의회 소속 IL센터는 6%에 불과하며, 협의회와 전장연은 재정구조가 분리된 별도의 조직이다. 정말 ‘활동지원 중개수수료 25%’가 문제라면, 나머지 중개기관 94%에 대해선 왜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 이종성 의원 “협의회, 동의해 놓고 입장 선회” 주장… 거짓말로 상임위 통과?

그럼에도 이 법안은 지난 4월 27일 국회 상임위를 통과했다. 문제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협의회 입장이 이종성 의원에 의해 왜곡됐다는 점이다.

4월 26일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 회의록을 보면, 이종성 의원은 “최근에 합의를 다 해서 한자협(협의회)에서 여기에 동의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막판에 가서 반대하는 걸로 또 입장을 선회했”다고 말한다. 이제까지 협의회가 반대했지만 “어느 정도 의견 조율을” 해서 법안을 대표발의했더니 협의회가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나 협의회는 “이종성 의원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협의회는 ‘IL센터의 복지시설화’에대한 논의가 시작됐던 201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지속해서 반대해 왔으며, IL센터의 독립적인 지원체계로서 제반 제도를 강화할 것을 주장해 왔다”고 반박했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사진 이종성 의원 페이스북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사진 이종성 의원 페이스북

이종성 의원은 5월 11일 비마이너와 한 통화에서 “연합회(법안에 찬성하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를 만났을 때, 협의회와 협의해 오기 전까지는 발의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협의회가) 최혜영 의원(공동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장애인 비례대표)과도 소통했는데, 내가 (협의회를) 직접 만나서 또 이야기 들어봐야 하나”고 불편함을 표했다.

이종성 의원은 협의회를 가리켜 “법안 발의할 때부터 나한테 찾아와 ‘우리는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하던가, 왜 막판에 말을 바꾸냐”고도 했다. ‘지금이라도 만나 소통할 생각이 있는지’ 기자가 묻자 “이제 만나서 뭘 하나. 법사위로 넘어가서 이제 내 소관 아니다. 할 수 있는 거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현장에선 ‘협의회가 개정안에 반대는 안 한다고 이야기했다’는 소문이 떠돈다. 이에 대해 협의회 측에 묻자 박현 조직실장은 “‘협의회가 반대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대체 어디서 나온 건지 오히려 되묻고 싶다. 협의회는 창립 이래 시설화를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철학이 무엇인가. 비장애인 중심주의 사회를 엎고 장애인운동으로 세상을 다시 디자인하자는 게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의 철학인데, IL센터를 시설 시스템으로 집어넣는 것에 결코 찬성할 수 없다.” (박현 협의회 조직실장)

그러나 4월 국회 상임위에서는 협의회가 개정안에 합의했다가 막판에 입장을 선회한 것처럼 전해지면서 개정안은 상임위를 통과했다. 협의회는 이에 반발하며 지난 5월 11일, 국회의사당역에서 ‘장애인복지법 개악 저지’를 위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16일로 농성 36일 차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