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시아 홈팬들의 인종차별에 항변하며 이들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오른쪽)와 이런 그를 제지하는 동료 선수(왼쪽)의 모습. ⓒFourFourTwo Youtube 영상 캡처
유럽은 프로축구 시장이 성행하는 곳이다. 그중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라리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로리그이다. 토트넘의 손흥민, 울버햄튼의 황희찬, 마요르카의 이강인 등이 소속팀에서 열심히 활약하는 모습에 많은 축구 팬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이들을 응원한다.
그런데 얼마 전 라리가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었다. 라리가의 명문인 레알 마드리드와 이강인의 친정팀이었던 발렌시아 CF가 라리가 35라운드 경기를 했는데, 레알로선 원정 경기였다. 홈팀인 발렌시아 CF 팀의 관중들이 레알 마드리드의 브라질 출신 공격수인 비니시우스 주니오르에게 흑인을 비하하는 말인 모모(스페인어로 원숭이)라는 단어를 경기 내내 쉴새 없이 불러댔다.
비니시우스의 주의를 끌기 위해 관중들은 원숭이 흉내를 종종 냈고, 그런 모습을 그는 정면으로 목격했다. 이전에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작년 시즌 첫 대결에서 상대 팀의 팬들로부터 ‘비니시우스는 원숭이다’, ‘비니시우스 죽어라!’ 등의 혐오 발언을 들었기에, 그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라리가에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지난 10월 바르셀로나와의 엘 클라시코(라리가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와의 시합이란 뜻)에선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집단 인종차별을 당해 바르셀로나 검찰청에 고소했지만, 가해자 행위 미확인이란 이유로 기각당했다. 라리가 팀인 레알 바야돌리드 CF와의 원정 경기에서도 홈팬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했고, 결국 바야돌리드 CF는 징계위원회 구성해 조사한 끝에 12명의 서포터들에게 홈구장 출입금지 징계를 3년 반 동안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발렌시아 홈팬들로부터 인종차별 모습을 목격하니 그는 참다못해 감정이 폭발한 나머지 관중석에 다가가 발렌시아 CF 홈팬들에게 격한 분노를 쏟아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조롱과 야유뿐이었고, ‘비니시우스 죽어라!’ 등의 혐오가 홈팬들로부터 쏟아졌다. 도를 넘은 차별 구호에 그는 눈물을 보였고, 10분 동안 경기 중단 후 겨우 경기가 재개됐다.
경기 종료 직전엔 한 발렌시아 선수가 비니시우스의 목을 조르고, 이에 그는 목 조른 상대팀 선수의 얼굴을 가격했다, 하지만 레드카드(퇴장이란 뜻)는 비니시우스만의 몫이었다. 발렌시아 팬들의 야유 속에 경기장을 떠나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는 손바닥으로 2를 관중들에게 보이더니 발렌시아팀의 2부리그 강등을 바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경기 결과는 1-0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패했다.
인종차별로 야유하는 발렌시아 팬들에게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수인 비니시우스 주니오르가 2라는 숫자를 보이더니(왼쪽). 이후 2라는 표시의 손가락을 내려 발렌시아팀의 2부리그 강등을 바라는 모습(오른쪽). ⓒ스포츠머그 Youtube 동영상 캡처
자신이 소속된 팀은 패배하고 자신은 인종차별을 당했지만, 애써 팬서비스를 했는데, 도중 누군가로부터 ‘발렌시아 팬들에게 사과할 겁니까?’란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비니시우스는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격앙된 감정을 잠시 쏟아낸 후 다시 팬서비스에 응했다. 이후 그는 이런 인종차별은 두세 번 당한 게 아니라 라리가에서 일상이 됐다며, 라리가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장악당했고, 이를 동의하지 않는 스페인인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스페인은 브라질에겐 인종차별 국가로 알려져 있다며 신랄하게 라리가를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레알 마드리드의 안첼로티 감독은 인종차별 때문에, 비니시우스를 빼야 한다며 격분했고,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그라운드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열심히 뛰는 선수가 학대를 당하는 건 불공정하며 파시즘을 허용할 수 없기에, 국제축구연맹 FIFA와 라리가, 유럽의 다른 리그 등이 가장 강력한 처벌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니시우스의 인종차별 소식이 알려지자 브라질의 네이마르,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였던 리오 퍼디난드 등도 비니시우스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라리가 회장이란 작자는 인종차별에 대해 당신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당신은 요청한 자리에 두 번이나 불참했기에 라리가를 모욕·비판하기 전 적절한 정보를 받을 필요가 있다며 비니시우스를 꾸짖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인종차별은 비니시우스뿐만이 아니다. 마요르카에서 뛰고 있는 이강인의 경우엔 소속팀 사령탑인 멕시코 출신의 하비에르 아기레 감독이 이강인을 향해 ‘중국인 뭐해?’라고 외쳤단다, ‘중국인’은 남미와 북중미에서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이기에, 인종차별적 발언인 것이다.
이외에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손흥민의 경우엔 얼마 전 크리스탈 팰리스 팀과의 홈경기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후반 44분 교체돼서 나올 때, 원정 팬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손가락으로 양쪽 눈을 찢는 동작을 했는데, 이는 동양인을 비하하는 의미다. 이게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공유되며, 인종차별 논란이 일었는데, 이와 관련돼 이 남성의 신원이 밝혀지면 크리스탈 팰리스 클럽 차원에서 제재한다고 하니 앞으로 사건 추이를 지켜봐야겠다.
불빛이 꺼진 리우데자네이루의 검은 예수상을 비니시우스 자신의 트위터에 개제한 모습.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Twitter 캡처
이런 뉴스들을 들으며 나로선 분노가 상당히 많이 들었다. 비니시우스의 경우 홈팀인 발렌시아 CF팬들에게 아유 들으면 심리적으로 위축될 터이다. 원정을 나가면 이런 일은 늘상 있을 터이니 그렇다 쳐도, 여기에 흑인을 비하하는 구호까지 듣는다면 선수 자신에겐 수치심과 상당한 트라우마, 상처가 되며 극단적인 경우엔 경기력 저하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팬들의 행위는 라리가의 명성을 훼손하는 건 물론 표현의 자유를 넘은 극악무도한 범죄다!!
더군다나 가해자인 발렌시아 팬들에게 사과할 거냐는 누군가의 질문엔 나라도 항변했을 것 같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사과하는 건 상당히 억울하고 치욕스러운 일이기에, 격앙된 감정을 쏟아내며 항변하는 건 선수이기 이전에 사람이면 누구나 느낄 인지상정이리라. 더군다나 ‘비니시우스 죽어라’는 말을 여러번 계속 들으니 저걸 경험하는 당사자의 마음은 굴욕감이 자연스러울 터이지.
라리가 회장의 반응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잘못한 건 발렌시아 팬들인데 오히려 비니시우스를 꾸짖으니, 인종차별은 라리가에선 관행이니 비니시우스가 참아야 한다고 팬들에게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는 결과만 초래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다행히도, 얼마 전 인종차별을 한 발렌시아 팬들을 스페인 경찰이 붙잡았다고 하니, 조금 안도감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스페인 축구협회와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도 인종차별은 심각한 문제라며 강력대응을 한다고 한다.
이번 인종차별을 한 발렌시아 CF 구단은 이강인의 전 소속팀인데, 2019~2020시즌엔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았고, 그다음 시즌에선 선발출전 기회가 늘었지만, 구단에서 매각 대상으로 그를 올리며 마요르카로 공짜 이적시켰다. 이강인 대신 데려온 선수는 활약이 저조하고 발렌시아 CF 팀은 올 시즌 강등권 전전하다 겨우 강등권을 벗어났다. 하지만 발렌시아 CF가 인종차별을 한 것과 이강인에게 한 행위를 생각하면 비니시우스 바람처럼 언젠가는 강등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이런 인종차별을 보며 장애인 비하·혐오가 떠오르게 된다. 디씨인사이드 같은 사이트에서 철스퍼거(철도를 좋아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 버스퍼거(버스를 좋아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라는 말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무수히 많은 내용이 나오는데, 전부 다 고인지 자폐성 장애인을 비하·혐오하는 내용이다. 철스퍼거 등은 자폐성 장애인을 비하·혐오하는 말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이트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이런 말들을 쓰기에, 자폐성 장애인 비하·혐오 표현은 확산되기 쉽다. 하지만 이런 비하·혐오 표현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사실상 대책을 수립하지 않아 자폐성 장애인 혐오는 인터넷을 포함한 온라인상에서 더욱 확산돼 일상이 되어 간다.
1년 전 ‘국회는 장애비하 장애차별 재발방지 대책 마련하라', '법원은 우리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피켓을 든 소송 원고들의 모습 ⓒ에이블뉴스
정치권도 상대 진영의 기를 죽이고 유리한 위치를 점할 목적으로, 정치인들을 비난하려는 의도를 갖고 국회의원들이 ‘절름발이’, ‘외눈박이 정책’, ‘자폐적’이란 말 등 무분별한 장애 비하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이에 한 장애인단체가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에선 장애 비하·혐오 표현이 수치심을 유발하는 등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란 점을 인정하고도, 표현의 자유란 이유로 청구를 기각했다. 이런 법원의 감수성 없는 적절치 못한 처신으로 인해 장애 비하 발언은 일상화되어 간다. 물론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제기한 단체는 항소를 제기했지만 말이다.
국가, 지자체에서 장애인 비하·혐오에 대해 어떤 대책도 취하지 않거나, 법원의 장애 감수성 없는 태도로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해 한국의 장애인 비하·혐오는 일상화돼 간다. 라리가에서 기존 폭력방지위원회에서 심사했지만, 실질적 징계가 부재하거나 인종차별 두둔 발언을 하거나, 인종차별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거나, 검찰청에서 가해자 행위 미확인됐다는 허점 등으로 인해 역시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하기에 라리가 인종차별 또한 일상화돼 간다.
형태는 다를지 몰라도, 가해자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했기에 일상화되고, 피해자의 정서적 학대는 물론 피부색이나 장애 등 다양성이란 가치를 외면하고 말살한다는 점에서 이번 라리가 인종차별과 한국의 장애인 비하·혐오는 참 많이 닮았다. 인종차별, 장애인 비하·혐오 전부 다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한 범죄임을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번 밝혀둔다.
이번 라리가 인종차별을 계기로 유럽의 축구 리그들과 FIFA,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연대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울러 많은 점이 닮아 있는 대한민국 장애인 비하·혐오에 대해서도 이를 근절할 국가 차원의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행동계획이 나오도록 시민사회, 장애인 당사자들의 연대를 통해 이들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되길 바라는 바다.
그나저나 이번 사태에 대해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선수는 인종차별에 대해 고통을 견디며 싸우겠다는 의지를 SNS를 통해 천명했다. 나도 자폐성 장애인 등 장애인 비하 표현과 말, 시도에 대해 고통을 견디며 동료들과 함께 싸우련다. 물론 장애인 비하·혐오 공간이 많아 차별이 만연하기에 차별 종식의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현실이라 좀 답답하긴 하지만 말이다. 진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언제 이루어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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