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장애인 개인예산제 실시’ 발표를 듣자마자 환호했지만 기대는 곧바로 실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그 방식이 너무 잘못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로야구에서 시즌 초를 많은 기대감으로 보내다가 시즌 중반 잘 안 풀리는 경기 결과를 보며 실망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실망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결국 ‘감독/프런트 나와라’ ‘돌XX(감독 이름)’ 이런 소리가 나오는 속도보다 매우 빠릅니다.
제가 원했던 개인예산제는 제가 필요로 하는 복지서비스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하는 일종의 ‘지원서비스 뷔페’였습니다. 뷔페는 입장료만 내면 얼마든지 주어진 음식 중에서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덜어서 자기 멋대로 먹는 것이 목표인 식당입니다. 심지어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새 그릇을 가져다 먹든 해서 더 먹고 싶은 것을 또 가져가서 먹으면 됩니다. 그곳에서의 문제는 제한시간의 문제 아니면 그릇을 어디에 갖다 놓느냐가 문제일 뿐이니까요.
그런데 정부가 공개한 개인예산제의 초안은 ‘활동지원급여’를 바탕으로 하는, 제겐 사실상 ‘없는 셈’이 된 방식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심지어 발달장애인에게 필요하다는 활동지원서비스 방식도 실질적인 수요가 없는 편입니다. 있다고 해도 그런 신청이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저는 거동 등의 문제는 없지만 대신 가사 관리 등이 필요해서, 가사노동자를 가끔 불러야 한다거나 소위 말하는 ‘집사’ 아니면 ‘비서’ 같은 것이 필요하니까요.
그나마 ‘비서’의 역할은 요즘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웹 시스템 등 IT의 힘을 빌려서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몇몇 문제는 관리 등이 어렵기 때문에 이것도 고역입니다. 가사노동자 수요는 사실 지금 당장은 필요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독립하게 되면 그때 몇몇 업무 등의 이슈에서 가사노동자를 통한 지원이 필요한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2인 1조 수준으로 필요한 업무인 청소나 몇몇 주거관리 같은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일단 시범 시행의 요소가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이럴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장기적으로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이런 방식으로 하면 안 됩니다. 영국이나 호주 등지에서 시행하는 개인예산제 방식, 특히 호주의 국가장애보험(NDIS, National Disability Insurance Scheme) 체계 같은 방식이 더 올바른 의미의 개인예산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NDIS 체계를 예전부터 들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 살짝 읽은 기억도 나고, 에이블뉴스에서도 몇 번 다뤘던 사안이고, 장애청년드림팀의 호주 연수 단원들이 자주 찾아서 가져오는 이야기라서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을 분석해본 결과, 가장 올바른 의미에서의 개인예산제 방식이자 권리예산 집행 방식이라는 점을 파악했습니다. 그런 지원이 올바를 텐데, 한국에서는 이런 것을 시행하려면 장애인 지원 체계를 거의 다 갈아엎어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 슬픈 사실입니다.
제가 지금 발달장애인지원센터의 개인별지원계획 규정을 적용받고 있습니다만, 좋은 지원 사안이 잘 오지 않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안정적인 고용 또는 직장 유지 지원과 직업 역량개발, 상향 이직, 독립 지원 이런 것인데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서 가끔 문자메시지나 메일로 오는 지원 정보는 대체로 ‘돌봄 지원’이라든지 ‘가족 휴식 지원’ 등 별 의미 없는 사안들 위주입니다.
가족 휴식 지원은 더 말이 안 되는 것이 국내 여행비용을 지원한다고 해도 가족들이 다 같이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 가족은 같은 집에 살아도 생활 방식이나 일정 구조가 전혀 다른 특성이 있어서, 심지어 부모님도 문학야구장에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정작 일정 통일이 너무 안 되어있고 겨우 일정을 맞춰보려고 해도 그때는 원정경기 또는 페넌트레이스(프로야구의 정규리그) 기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학야구장이 닫혀있습니다. 사소한 야구장에 놀러 가는 것이 이럴 정도인데, 가족 휴식 지원을 줘도 가족들 일정 맞추기가 고역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지원과 정부의 지원정책은 상당 부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일종의 ‘엇박자’가 일상인 상황입니다. 맞춤형 복지니 이용자 중심이니 그런 것에 앞서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정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을 지원할 예산 분배방식까지도 그렇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것 상당수는 내게 필요하지 않거나 적은 내용이 많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는 부분이 더 큽니다.
하다못해 장애인 고용 정책조차 제가 원하는 것은 대기업이나 공공분야에서 특별 규정 등을 통해 지원받으면서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인데, 정작 장애인 고용은 대부분 중소기업, 사회적 기업, 복지일자리, 끽해야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이런 것에다 수입 자체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이다 보니 오죽하면 예전부터 보고 있었다면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더니만 ‘그게 언제꺼에요’라고 인터넷 친구가 예전에 제게 해줬던 말이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좋은 대접 받으며 일한 기억이 먼 옛날의 일입니다.
앞으로도 정부의 정책과 제 욕구는 평행선을 그을 전망입니다. 계속 ‘엇박자’가 날 것입니다. 개인예산제로 이런 ‘엇박자’를 극복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정작 실현되는 것은 딴판이니 이렇게 자꾸만 ‘엇박자’만 보입니다. 장애인 권리예산을 떠들기 전에 일단 장애인에 대한 예산 분배방식부터 바꾸기 위한 개인예산제는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를 지지할 것이지만, 정부가 제시한 방법은 ‘거절’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는 장애인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떼주는 것보다 호주의 NDIS처럼 내가 직접 편성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뷔페처럼 찾아서 먹는 ‘복지 뷔페’일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개인예산제’라는 ‘장애인 복지 뷔페’에 어서 빨리 초청받고 싶습니다. 뷔페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내가 알아서 찾아 먹을 수 있듯이, ‘개인예산제’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나 지원 사안을 내가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선택권이나 편성권은 당사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나저나 제가 최근에 뷔페에 간 것이 지난 1월의 일이었네요. 이번 도쿄 휴가 프로젝트인 ‘리얼 코로넷’을 진행할 때는 호텔 뷔페에서 맛있게 식사하고 여행 일정을 보냈으면 좋겠네요! 그 이전이라도 누가 예식장이나 호텔 뷔페에 초청하면 아마 저도 잘 먹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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