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예의 대상을 받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연 배우 박은빈의 수상소감 모습. ⓒ백상예술대상 Youtube 동영상 캡처, JTBC
작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세간의 화두였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자폐성 장애인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선 판타지인 드라마라, 숱한 화제를 뿌렸다. 아스퍼거 증후군, 자폐증이 아닌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소개하고,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고, 장애인에게도 배울 게 있다는 점은 드라마의 긍정적 측면이었다.
반면,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 천재만 있다는 자폐성 장애인 서사가 그대로 유지된 점, 장애의 희화화 논란에 여전히 휩싸인 것 등은 아쉬운 측면으로 남았다. 자폐성 장애인 우영우의 일상적인 삶을 전반적으로 담담하게 그리고 묘사하는 등 인간 우영우 모습을 보여주기보단 사건 중심으로 그녀의 천재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군다나 우영우와 관련해 자폐성 장애인 부모의 양육 부담만을 소재로 다룬 게 대부분이었던 KBS의 ‘시사직격’이란 프로그램에선, 자폐인을 권리 주체 아닌 돌봄 객체로 묘사했기에 공영방송에서 수신료의 가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가소롭기까지 했다. 우영우란 드라마를 계기로 필자를 포함한 자폐성 장애인 삶에 언론, 법조계 등이 관심을 가지는 듯했지만, 반짝 관심에 그치는 것 또한 여전했다.
그렇게 우영우가 우리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지려 할 때 지난주 금요일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있었다. 학교폭력이 이슈였던 ‘더 글로리’를 포함, 자폐성 장애인 변호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이 후보작으로 오른 만큼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시상식 최고의 영예인 대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연기한 배우 박은빈에게 돌아갔다.
이 배우는 수상소감에서 우영우를 마주하기로 마음먹기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우영우를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사람으로 다가가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겐 매우 큰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하며 많이 두려웠단다. 그래서 자폐인에 대한 생각들이 자신이 모르게 가진 편견으로 기인한 건 아닌가 매 순간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자신의 한계를 맞닥뜨릴 때가 있었기에, 거기서 오는 좌절들을 딛고 마침내 끝낼 수 있어 다행인 작품이었다고 하며, 수상의 모든 영예를 작품을 촬영해주는데 힘쓴 스태프와 동료 배우들, 시청자들, 그리고 가족들과 팬들에게 돌렸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라고 한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에서 주인공 우영우(박은빈 분, 우측)과 주연인 이준호(좌측, 강태오 분)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모습. ⓒENA Youtube 동영상 캡처
수상소감을 들으며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신중하고 장애인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감수성에 소감도 품격이 느껴져 축하하려는 마음이 생긴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복잡해졌다. 자폐성 장애인이 발음이 샐 것 같기에 배우 박은빈이라는 비장애인 배우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주인공으로 낙점한 이유라는 제작자 측의 입장이 떠올라서였다.
우리나라 대학 연극영화과엔 지금은 어느 정도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선배에게 얼차려를 당하면서 연기를 배우는 학생들이 아직도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들이 연기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까? 더군다나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는 장애인들이 거의 없다는 일각의 목소리도 접했다.
더군다나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은 복지관이란 공간을 통해 문화예술교육을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거기서 하는 문화예술 교육이란 창의성을 키우기보단 치유 중심의 교육에 중점을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예술강사와 복지관 사이에 의견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창의성을 키우는 게 상당히 쉽지 않다,
여기에 이들이 연극영화과로 갈 수 있는 등 고등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심지어 연극영화과로 간다손 치더라도, 연기를 잘할 수 있도록 이들에게 지원하는 합리적 조정(정당한 편의)이 권리로 인식되지 않기에 미제공되는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배우의 길을 기꺼이 즐기고 정진하는 건 쉽지 않을 터이다.
자폐성 장애인의 삶을 배우 박은빈이 살아본 건 아니기에, 그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편견을 제거해 우영우를 표현하려고 노력했지만, 조금은 어색하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그러기에 제작진 측 입장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 평등을 그토록 좋아하지만, 능력에 대해선 차별을 정당화하고 편견에 기반한 능력주의가 떠올랐다. 능력주의는 장애인차별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상식을 보는 내내 축하하고 싶다가도, 축하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나쁜 장애인으로 볼 것 같다. 그런 시선이라면 기꺼이 받겠다. 하지만 능력주의는 장애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인천 장애인 수영선수 상습폭행 사건과 관련해 피해 장애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일관적으로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감독과 코치는 이를 부인했으나, 법원은 신빙성 있다며, 감독, 코치에게 실형을 선고했다.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 수영선수를 대상으로 폭행을 저지른 감독과 코치 등이 경찰에 구속되었다는 뉴스 속에 나온 인천 미추홀 경찰서 모습 ⓒ연합뉴스 Youtube 동영상 캡처
이와 관련해 피해를 받은 자폐성 장애인 A씨는 수영을 못해서 막대기로 맞았고, 병원에 가서 상처 부위에 약 부르고 꼬맸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로 지적장애가 있는 B씨는 배영을 잘 하라고 코치가 슬리퍼로 머리를 세 번이나 때렸으며,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5분간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를 받았다고 했다. 이들은 인천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면담과 수사 과정에서 이 사실을 제대로 잘 진술했단다.
판결에선 전 감독에게 징역 2년, 전직 코치들에게 각각 징역 3년이나 8개월을 선고했는데 처벌은 당연하나, 솜방망이고, 기간도 너무 짧다. 그리고, 수영을 못해서, 배영을 잘하라고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건 장애인 선수들이 이들의 기대보다 낮은 능력을 보였기에 그런 것도 있을 터이다. 이들이 보기엔 이 선수들의 신체 능력이 부족해 폭력을 행사했단 거다.
그런데 지적장애나 자폐 친화적이지 않은 문화에 이들의 장애 특성을 고려해 훈련에 필요한 합리적 조정이 이뤄지지 않았기에 이들이 훈련하기 힘들었던 사정을 코치와 감독이 생각했다면 이런 폭력이 발생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합리적 조정을 우리 사회에선 권리로 인식하지 않으니 이런 일이 발생할 여지가 농후했겠지. 신체 능력이 부족해 폭력을 행사했다니, 결국,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본질은 능력주의에 기반한 장애인차별이라는 거다.
2달 전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주최로 ‘느린 학습자의 신경다양성을 통한 자립지원 방안’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있었다. 주로 지적·자폐성 장애인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들의 ‘증상’ 대신 ‘독특함’, ‘강점’, ‘재능’ 등을 본다면 직장에서 일을 잘하고 자립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듣기엔 상당히 고무적으로 들렸다.
그런데 회사 내에 지적장애, 자폐 친화적인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문화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는 합리적 조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것 등을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이들의 강점만을 강조하고 이들이 직업을 가졌다 치자. 만약 자폐성 장애인이 자폐 특성을 보인다면 회사에선 어떻게 할 것인가? 자폐 친화적이지 않은 문화가 있는 직장 내에선 자폐인들을 배제할 분위기가 많아질 것이다.
그러기에 자폐성 장애인들의 경우 특히 지적장애가 동반되지 않지만, 자폐 특성이 있는 경우 자신이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이들은 자신의 특성을 감추는 마스킹(Masking)이라는 걸 한다. 마스킹도 비장애 중심 사회에선 암묵적으로 능력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스킹을 하다 보면 정체성 부정은 물론 오래 지속될 때 자폐인의 정신건강엔 악영향을 미치며 직장생활에 좋지 않다.
지난 2월 24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과 (사) 청소년과가족의좋은친구들이란 단체에서 ‘느린 학습자의 신경다양성을 통한 자립지원 방안’이란 제목으로 토론회를 한 전경. ⓒ이원
결국, 자폐는 물론 지적장애 특성 등이 고려되어 이런 특성들에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 방법을 고민하지 않을 경우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강점만을 강조한다면, 결과적으로는 특성을 감추는 능력이란 요인이 중요하게 되니, 자칫 잘못하면 능력주의로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거다. 결국 능력주의에 기반한 차별이 발생할 소지가 농후하게 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선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이 왕따, 갑질, 업무차별을 당하기 쉽다. 이와 관련해 2020년 2월 말에 발표한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 근로자의 근무환경’과 관련해 임금차별·업무차별·왕따·갑질 등 직장 내 각종 애로사항이 39.8%(51건)로 가장 많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외에도 공동생활가정, 즉 그룹홈에선 지역사회에서 자립하기 위해 자립에 대해 엄하게 가르치고, 가정에서 나오고 싶지만 나오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란 한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도 접했다. 그룹홈은 시설의 특성이 나타나기에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이를 아예 시설로 본다.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공동생활가정에서 장애인의 자립능력에 대해 엄격하게 평가한다는 느낌이 든다. 탈시설은 권리인데, 이 권리를 자립생활 능력 평가를 통해 제한한다는 건 능력주의에 기반한 장애인차별이라는 걸 알고 있으려나? 그래서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37호의 일부에선 능력주의를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탈시설 과정은 장애인의 존엄성 회복 및 이들의 다양성 인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손상을 기반으로 한 자립생활 능력 평가는 차별적이며 개인별 요구사항 및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 장벽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기본방향 ⓒ보건복지부
결국, 능력주의를 경계하지 않는다면 극단적인 경우엔 인권유린까지 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장애인이 능력 없다고 짐작하는 것은 또한 편견에 기반한 차별이다. 그래서 능력주의를 경계하면서 인권적인 방법으로 장애인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의 능력과 상관없이 장애인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 자신도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프로포절을 잘 쓰지 못해 능력 없다는 죄책감과 열등감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는 다른 능력이 있고, 설령 능력 없어도 나라는 사람 자체는 그냥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말이다, 물론 삶을 살면서 그런 생각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고 수시로 생각이 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는 소중하다고 말이다.
장애인이 능력에 상관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한 능력주의로 인한 장애인차별은 장애인에게 정체성 부정은 물론 정신건강까지 악화되는 등 장애 여부에 상관없는 사회통합이란 숭고한 가치를 한낮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하게 만들 것이다. 능력주의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에 관해 고민하며, 이젠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 구체적 방안을 찾아 나설 때이다.
그나저나 호주에선 자폐성 장애인인 클로에 헤이든(Chloe Hayden)이 Heartbreak High이란 시리즈 드라마에서 퀴니 역을 맡아 자신의 자폐 정체성을 밝히며 자폐인의 삶을 제대로 정확하게 연기해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2층짜리 빌딩에 이 배우의 모습을 그린 그림까지 보인다. 배우를 꿈꾸는 자폐성 장애인에게 그런 날은 언제 올까?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울러 대상을 받은 배우 박은빈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Netflix 드라마 Heartbreak High 포스터(좌측), Heartbreak High에서 Quinni 역으로 열연하는 Chloe Hayden(맨 우측)과 그 동료들 모습. ⓒImdb 사이트, Netflix Asia Youtube 동영상 캡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개최된 ‘All about women 2023’이란 행사에 클로에 헤이든(Chloe Hayden, 우측)이 나와 자폐인은 인생에 걸쳐 연기하기에, 영상산업에 최적화된 사람이라고 말하는 모습. ⓒSydney Opera House Youtube 동영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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