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고용, 이와 관련해 독일은 한국보다 선진국이다. 독일이 모든 면에서 우수해서가 아니다. 한국보다 더 일찍 고민하기 시작했고, 더 일찍 다양한 길을 모색했기 때문에 독일은 한국보다 먼저 앞서 걸어가는 나라, 선진국이다. 따라서 독일에는 나름의 노하우도 해결책도 많고 앞으로 남은 숙제도 산적하다. 이에 총 4회에 걸쳐 '장애와 고용, 독일이 걸어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최근 독일의 장애인 고용 현황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해 독일에 우리나라에 어떠한 시사점을 주는지 살펴본다. <필자주>
독일의 노동시장은 통상적으로 일반노동시장(1차노동시장)과 특수노동시장(2차노동시장)으로 구분된다. 특수노동시장은 일반노동시장과 달리 국가보조금으로 고용관계가 성립되는 사업장으로, 대표적으로 장애인작업장이 있다.
일반노동시장에는 중증장애인 의무고용제도가 적용되어, 상시근로자 20명 이상을 둔 고용주는 전체 직원의 5% 이상을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고용률 5%를 충족하지 못한 고용주는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하는데, 이때 고용주가 장애인작업장과 도급 계약을 맺으면 고용부담금의 일정 부분을 감면받을 수 있다. 독일의 저명한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단이다.
독일에는 현재 약 3천개의 장애인작업장에 약 32만명의 장애인이 근무하고 있다. 장애인 일자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독일의 장애인 고용 현실은 어쩌면 이상적으로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장애인작업장을 둘러싼 논쟁이 수 년간 뜨겁다.
장애인작업장 =평생직장
독일에서 장애인작업장은 두 가지 의미에서 '평생직장'이다.
첫째, 장애인작업장에 취업한 사람은 특별한 해고 사유가 없는 한 정년퇴직 때까지 일할 수 있다. 해고보호 뿐만 아니라 유급휴가, 육아휴직, 파트타임근무 요구권 등이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둘째, "장애인작업장에 한 번 발을 디디면 평생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장애인작업장 근로자의 일반노동시장 전이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 장애인작업장에서 일반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케이스는 1%도 안 된다.
장애인작업장, 폐지냐 존속이냐
2015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작업장을 점진적으로 폐쇄해라고 독일에 권고했다. 2021년 유럽의회도 동일한 내용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개선된 점은 없다. 2021년 출범한 새 정부는 장애인작업장 시스템을 사회통합적 방향으로 개선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올해 4월 내각회의에서 의결된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발전을 위한 법률안"에도 장애인작업장과 관련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장애인작업장의 존폐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장애인작업장 옹호론자들은 지금 형태의 일반노동시장이 모든 장애인을 수용할 수 없고, 장애인작업장이 없다면 장애인은 일할 기회조차 없을 것이므로, 장애인작업장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들은 현재 장애인작업장을 사회통합적 노동시장의 일부로 간주하여 계속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다.
반면, 장애인작업장 폐지론자들은 장애인작업장이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에는 장애인작업장과 장애인을 위한 주거시설 및 여가시설이 한 곳에 밀집된 경우가 많다. 즉, 이곳에서 장애인들은 일하고 거주하며 생활한다. 나머지 사회와 분리된 채로 말이다. 장애인작업장과 거주시설이 분리된 경우에도 장애인들은 장애인용 승합차로 출퇴근하고 장애인거주시설로 돌아와 생활한다. 나머지 사회와 분리된 채로 말이다.
또한 장애인작업장 폐지론자들은 장애인작업장이 직업재활훈련기관이라는 원래 취지에 부합하지 못하는 고용현실을 비판한다. 장애인작업장은 수익창출을 해야 하고 그 수익으로 직원들에게 임금을 줘야 하므로 일 잘 하는 직원이 필요하다. 작업능력이 높은 직원은 일반노동시장으로 전이가 가능한 직원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장애인작업장의 수익창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직원, 장애인작업장이 꼭 붙잡아야 하는 직원인 셈이다. 그래서 장애인작업장 근로자의 일반노동시장 전이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장애인작업장의 낮은 임금도 문제이다. 장애인작업장 폐지론자들은 "세상 그 어디에도 장애인작업장만큼 저렴하게 생산하는 곳은 없다", "장애인작업장은 장애인만 제외한 모두가 이득을 보는 시스템이다"라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장애인작업장 근로자의 실태를 강하게 비판한다.
사진 2: 목공소에서 일하는 장애인의 모습. ©Andi Weiland, Gesellschaftsbilder.de
최저임금 적용 vs. 기초수당 도입
독일노동부에 따르면 장애인작업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2022년 기준 220유로로 시간 당 1.46유로(한화 약 2천원)였다. 독일은 지난해 최저시급을 12유로(한화 약 1만 8천원)로 인상했다. 하지만 장애인작업장 근로자는 법적으로 노동자(Arbeitnehmer)가 아니라 노동자와 유사한 법적관계(arbeitnehmerähnliches Rechtsverhältnis)에 있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에게만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도에서 제외된다.
물론 장애인작업장 근로자는 장애인작업장 임금 외에도 사회보험(건강보험, 요양보험, 산재보험, 연금보험)을 보장받고 기초생활급여와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장애인작업장 근무경력이 20년이 되면 근로능력상실 조기연금도 지급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중에 남는 돈이 매달 100유로도 안 되는 가난에 시달리는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일반노동시장에 진출하여 국가 보조 없이 당당히 자립생활을 하고 싶지만 작업장에서 일반노동시장으로 진출하기가 매우 힘든 현실 속에서 좌절하는 젊은 장애인도 많은 실정이다.
장애인작업장 시스템 개선을 위해 어떤 이들은 최저임금제 도입을 주장한다. 장애인작업장 근무 경력이 있는 루카스 크래머 씨는 2021년부터 장애인작업장 최저임금제 도입을 위한 청원서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생계유지에 도움 안 되는 '풀타임 근무'를 사람들은 '사회참여'라고 부른다. 나는 기업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지만, 정작 나의 보상은 나의 노동 그 자체 뿐이다. 장애인작업장 운영자들은, 우리 노동의 대가가 돈이 아니라 사회참여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기업들의 이윤창출을 위해 하루 종일 일하면서 시간 당 1.30유로를 버는 것이 우리가 받아 마땅한 보상이란 말인가?“
크래머 씨의 서명운동 홈페이지에는 올해 5월 초 기준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크래머 씨의 최종 목표는 30만명 서명이다.
크래머 씨의 장애인작업장 최저임금제 도입 서명운동 홈페이지 캡처.©민세리
한편, 독일장애인작업장자문회는 "최저임금 반대! 기초수당 찬성!"(Mindestlohn – Nein! – Basisgeld – Ja!)이라는 슬로건 아래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최저임금도입 대신에 기초수당 도입을 제안한다.
기초수당 모델은 근로능력이 저하된 장애인이 기초생활급여 대신 국가로부터 독일 노동자 평균 임금의 70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는 것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작업장에 근무하는 장애인의 경우 매달 기초수당 1,450유로 + 장애인작업장 임금 180유로 = 1,630유로를 지급받으며, 이 돈으로 월세와 전기, 난방, 식료품, 기타 지출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기초수당이론이다.
이 밖에도 독일은 장애인작업장의 기본임금(장애인작업장의 모든 근로자가 받아야 하는 최소임금으로 현재 126유로에 달한다)과 성과금(근로자의 개별 작업능력에 따라 추가로 받는 금액)을 인상하는 방안 등, 장애인작업장 임금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이 글은 독일에 거주하는 에이블뉴스 독자 민세리님께서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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