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간의 여름방학을 끝내고, 우리 재민이가 등교한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우당탕탕 보냈던 여름방학의 흔적이 아직도 집안 곳곳에 남아 있어서 한가롭게 누굴 만나 차 마시며 여름방학이 이랬노라고 대화를 할 겨를도 없이 허둥지둥 집안 정리를 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곧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담임선생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먼저 든 생각은 ‘아이가 개학하고 적응을 하지 못했나?’였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호흡을 가다듬고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늘 그렇듯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는 침착하고 따뜻했습니다.
“어머니, 오늘 2학기 학급 임원 선거가 있었어요. 재민이도 후보가 될 자격이 있었고, 재민이가 회장이 되고 싶다고 나왔어요. 그래서 투표를 했는데 당선이 되었어요.”

재민이가 동생의 귀를 잡고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 ©이민선
‘앗, 이게 무슨 소리지?’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오만가지 변수들이 떠올랐습니다.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상황이라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아, 선생님이 곤란한 상황이시구나!’였습니다.
“어머, 선생님,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제가 재민이에게 잘 이야기를 해볼게요. 생각해 보니 회장직을 잘하지 못할 거 같아서 다시 투표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도록 할게요.”
저는 당황한 마음을 감추고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은 뜻밖의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이 직접 투표를 했고요, 이건 지켜져야 하는 약속입니다. 재민이는 6학년 1반의 2학기 회장입니다.”
이어서 선생님을 말씀을 이으셨다.
“강력했던 후보가 있었던 것도 맞습니다. 처음 투표결과가 나오고, 1~2분 정도 정적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저도 처음엔 아이들이 혹시 재민이를 놀리려고 장난으로 투표에 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재민이에게 표를 줬을 법한 아이들을 불러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한 아이는 ‘재민이가 회장이 되면 잘할 수 있다고 했으니 지켜보고 싶어요. 그러면 선생님께도 좋은 일인 거 같아서요’라고 말했고, 또 다른 친구는 ‘재민이는 초등학교 6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해봤겠지만 학급회장은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 같아서 이런 경험도 해봤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어요. 우리가 도와주면 할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되레 선생님에게 “선생님의 질문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께서도 재민이가 잘하지 못할 것 같아서 물으시는 거잖아요. 저는 우리가 도와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반문했더랍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의 반응을 전하며, 이렇게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을 듣고 저는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반은 다 재민이가 회장이 맞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니 어머니께서도 제가 난처해진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재민이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해요. 당선되고 나서 재민이가 정말 좋아했어요. 행복누리실(재민이가 좋아하는 상담실, 재민이는 그곳을 책 읽는 곳이라고 좋아합니다.) 선생님과 도움반 선생님에게도 가서 자랑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담임선생과 긴긴 통화를 마치고 나서도 이게 맞는 건가 곰곰이 생각을 했습니다. 이윽고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온 재민이가 당선 소식을 전하자 저는 축하 인사를 해주었습니다.
“재민아, 정말 축하해. 그렇게 표를 많이 받았어? 우아~, 대단하다. 그런데 회장은 무슨 일을 하는 거야?”
“회장은 음악실, 과학실 갈 때 앞에 서서 친구들을 데리고 가요. 선생님 심부름도 해요. 교무실도 가고, 6학년 5반도 가고 그래요. 그리고 친구들한테 나눠줘요.”
선생님 심부름으로 교무실도 가고, 다른 반도 가고, 교육자료를 친구들한테 나눠준다는 말일 테지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 ‘그래, 해보자, 재민아!’ 하고 생각했어요. 선거할 때 대통령도 그렇고 국회의원도 그렇고 공약이라는 걸 내세우는데, 누구는 할 수 있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직 당선이 목표라 거짓과 과장을 섞어서 하지요. 그런데 재민이는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은 확실히 하고, 못하는 것은 도움을 청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4년 8월 26일 월요일. 개교 44년 역사상 처음으로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그렇게 첫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재민이가 친구들과 체육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이민선
그 이후 전교 임원회의에 참석하고(친구와 함께 참석해서, 그 친구가 기억해주고 메모해 주면 다음 주 월요일에 메모를 보면서 재민이가 반 친구들에게 전달했답니다), 체육 시간엔 앞에 서서 몸풀기 체조를 했습니다. 학교 홍보 주간에는 일찍 등교를 해서 피켓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환영해 주기도 하고, 하고 싶었던 대로 음악실, 과학실 등으로 이동수업을 할 때면 앞장서서 이끌고 다녔다고 해요.
재민이는 한번 싫다고 하면 그 고집을 여간해서는 꺾을 줄 모르는데 “회장님!”이 앞에 붙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참여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지난 2월 14일 재민이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반 아이들이 롤링페이퍼에 짧은 편지를 적었고, 선생님께서 그것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주셨습니다. 그 짧은 편지들을 보며 전 눈물이 났습니다. 재민이네 반에선 재민이가 그냥 이런 친구로 있었더라고요. 장애를 가졌으니 도와줘야 하는 친구가 아니라, 그냥 우리 반 3번 고재민!
저는 재민이의 6학년 2학기를 보면서 통합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통합교육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일단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시선이 있어야 하고, 의지가 담긴 말과 행동도 있어야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을 받아 함께 해 줄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선이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들께서 통합교육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말 한마디, 시선 한 번에 얼마나 큰 힘이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지시는 분들이잖아요. 그 미래에는 발달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있는 거고요. 말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이해력이 부족하고 신체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게 아니니까요.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도 선생님의 영향으로 지식을 넘어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자라는 선생님의 제자이지요.
우리는 학교가 온전히 지식 학습만을 위한 장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교는 작은 사회이고, 그 사회 안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이지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우는 살아있는 현장이지요. 발달장애를 가진 많은 아이들이 좁은 치료실이나 교육실 안에서 한정된 사회생활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비장애 아이들은 겨우 일 년에 한번, 장애인권교육을 받습니다. 그것만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막연하고 힘든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와 비장애로 구분 짓지 않고 그냥 이런 친구, 저런 친구로 자연스럽게 지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저는 재민이가 경험한 이 기적 같은 일을 다른 친구들도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회장 당선이 아닌, 회장을 할 수 있게 한 이 환경이요.
그 모든 것이 6학년 1반에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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