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은 생명을 다루는 고도의 전문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에게 높은 지식과 윤리, 판단력과 공감을 모두 기대한다. 그러나 정작 질문해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다. 좋은 의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뛰어난 의학 지식만으로 충분한가? 혹은 경험 많은 현장 훈련이 열쇠인가? 교육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질문은 단순한 ‘교육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의료전문가를 길러내는 제도와 문화, 가치체계의 문제다.

현재 의과대학 교육은 매우 체계적이고 정교하다. 수많은 시험과 임상실습, 전공의 과정을 거쳐 의료 전문성을 쌓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간과되는 것은, ‘어떤 사람’을 의사로 만드는가 하는 질문이다. 시험은 주로 인지적 능력을 측정하며,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집중된다. 그러나 좋은 의사는 단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듣고 이해하며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차이는 교육의 방향이 지식 중심인지, 인간 중심인지에 따라 결정된다.

교육사회학은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평가하느냐가 그 사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반영한다고 말한다. 의대 입시에서부터 ‘스펙’과 성적이 강조되고, 학창시절 내내 경쟁 중심의 서열화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성찰보다는 속도를 강조하는 의료인을 양산하게 된다. 이는 환자와의 관계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바쁜 진료실에서 환자의 말보다 차트와 수치에 집중하게 되는 의료문화는 이러한 교육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한 ‘좋은 의사상’은 단지 교육과정 안에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병원이라는 실천 현장은 강력한 사회화의 공간이다. 선배와 동료, 조직문화와 암묵적 규범은 의사의 언어와 태도, 환자와의 거리까지 규정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나 노인, 정신질환자를 다루는 과목이 단 몇 시간에 그치거나, 실습 중 이들을 진지하게 마주할 기회가 없다면, 해당 환자군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존재’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좋은 의사를 만들기 위한 교육은 단지 ‘의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좋은 의료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토대를 재구성하는 일이다. 협력과 존중의 의료 문화를 만들고, 다양한 환자들의 삶을 이해하려는 감수성을 기르며, 전문가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성찰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의사는 지식 노동자이자 돌봄의 주체이며, 동시에 사회적 권력을 가진 전문직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의사란, 단지 개인의 능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가치와 문화 속에서 의료인을 길러내는지를 반영하는 사회적 산물이다.

좋은 의사를 만들고 싶다면, 좋은 교육을 넘어 사회적 상상력을 길러야 한다. 교육사회학은 그 상상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렌즈가 될 수 있다. 의료가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의사 또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상상력이란, 현재의 제도나 현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의료교육, 병원 문화, 환자-의사 관계, 환자의 범주와 위계 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다르게 될 수 있다’는 상상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이다.

예를 들어, "진료는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의사는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 "비장애인 중심의 시스템이 효율적이다"라는 믿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고정된 관념처럼 굳어졌지만, 이것들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가치이자 선택의 결과다. 사회적 상상력이란 이와 같은 고정관념을 잠시 내려놓고, 의료가 더 협력적이고 평등하며, 다양한 몸과 삶을 환영할 수 있도록 구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다.

교육사회학은 이런 상상력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통찰을 제공한다. 의료인 양성과정을 단지 '기술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와 사람을 이해하는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학생들이 다양한 환자의 삶을 상상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교육과 경험의 장치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곧 좋은 의사를 만들어내는 사회적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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