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지난 4월 1일 개최된 자폐인의 날 행사 전경. ⓒ이원무
우리나라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권리 주체가 아닌 치료 대상으로 전락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녀의 자폐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부모들은 오늘도 병원, 클리닉 등을 찾아다닌다.
병원, 클리닉 등에선 자폐를 고칠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이들은 부모들 심리를 이용해 부모들을 병원, 클리닉 등으로 유인하며 치료라는 명목으로 치료프로그램을 행한다. 치료행위 대부분은 비급여라, 민영병원이 대부분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폐성 장애인은 병원 측에선 수익의 마중물인 것이다. 이런 웃지 못할 현실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일만은 아니고, 해외에서도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해 ‘왜 자폐를 치료하지 못해 안달이냐?’란 답답함이 밀려오게 된다. 이와 관련해, 자조모임의 어느 동료가 한 이론을 소개했는데, 어렵지만, 내용을 들으니 그 이론이 자폐를 치료 관점으로 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자폐를 치료 관점으로 보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과 이를 비판하려 한 이중 공감 이론(Double Empathy Theory)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마음 이론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 이론 소개 시 윤은호 논문(재활복지, 2022)의 일부 내용을 참조·인용했음을 먼저 밝혀두겠다.
마음 이론이란 말은 프레맥과 우드러프(Premack and Woodruff)란 학자가 침팬지의 사회 인식 연구를 위해 생겨났다고 한다. 마음 이론은 틀린 믿음 과제(false belief task)라는 말로 다니엘 데닛(Daniel Dennett)이란 철학자가 다듬었고, 이후 자폐성 장애인의 ‘마음-없음’ 또는 ‘마음이론 실패’ 설명을 위해 사이먼 배런-코헨(Simon Baron-Cohen) 연구팀의 연구(Baron-Cohen, Lesile and Frith, 1985)에서 이 과제를 적용하면서 자폐 특성과 긴밀한 연관을 맺게 된다(Fletcher-Watson and Happe, 2019:85-86).
1985년 배런-코헨은 자신의 저서인 마음맹(MindBlindness)에서 마음 이론을 제안한다, 그 이론의 모델은 지향성 탐지기, 시선탐지기, 주의공유 기제, 마음 이론 기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그는 시선탐지기가 자폐성 장애인에게 미비하기에 마음 이론 구성에 실패한다고 주장한다.
시간이 지나, 2005년 배런-코헨은 자신의 모델에 감정탐지체(The Emotion Detector), 공감화 체계(The Emphatising System)를 추가해 마음 이론 모델을 확정 지은 다음, E-S 이론인 공감화-체계화 이론(Empathising-Systemising Theory)을 마음 이론에 반영한다. 그는 E-S이론을 설명하는 개론 논문(Baron-Cohen, 2009)을 공감화가 아닌 체계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Baron-Cohen, 2005a).
2005년판 배런-코헨의 마음 이론 도표. ⓒ재활복지, Baron-Cohen
그에 따르면, 체계화는 ‘체계를 분석하거나 구축하려는 경향’으로 자폐 특성과 ‘아스퍼거 증후군’은 그의 세계에선 ‘온전하거나 심지어 흔치 않은 강력한 체계화’를 지닌 존재다. 그는 실지로, ‘전통적 자폐’가 지닌 체계화 현상을 13가지로 분류해 제시하고, 공감화-체계화 사이에 5단계 척도(극단공감(EE), 공감(E), 균형(B), 체계(S), 극단체계(ES))를 설정 후, 자폐인 당사자를 극단적으로 체계적 두뇌를 가진 존재로 호명하기에 이른다(Baron-Cohen, 2005b).
E-S 이론은 기호학적 차원에서 ‘여성-남성’, ‘감성-이성’, ‘공감-비공감’, ‘비자폐-자폐’란 네 가지 이항대립 속에서 형성되며, 이 이항대립을 설정할 시 전자의 지배소들은 신경 규범적 체계, 대항소들은 자폐스러움을 목적으로 한다. 결국, 이 이항대립 속에 자폐는 비질서인 disorder에 속하며, 정상으로 돌아와야 할 무언가에 속하는 거다.
여기서 배론-코헨의 E-S 이론은 자신의 개정된 마음 이론 모델로 회귀하는데, 마음 이론과 E-S 이론을 설명하는 그의 서로 다른 논고는 정확하게 마음맹 이론부터 E-S 이론에 이르는 경로를 그대로 설명한다는 점을 비춰볼 때, 이는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의 열등함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된다. 여기까지가 논문에서 마음 이론에 관한 일부 내용을 참조·인용한 것이다.
필자는 시선탐지기가 없어 자폐 당사자가 마음 이론 구성에 실패한다는 말에서부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보통 자폐성 장애인 하면 눈 맞추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면서 눈을 맞추라고 시선 훈련을 시키고, 자폐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치료를 시킨다.
하지만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자폐성 장애인이 시선을 계속 맞추지 못하는 건 장애특성에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장애란 치료가 되지 않는 것인데, 억지로 시선을 맞춰 장애를 치료하려는 시도야말로 자폐성 장애인을 차별하는 것일 터이다.
또한, 공감과는 거리가 먼 극단적으로 체계적 두뇌를 가진 존재로 배런-코헨이 자폐성 장애인을 호명했음을 상기하면, 그는 자폐인을 비인간으로 보았던 거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만들려면 중재가 필요할 거고, 이는 역시 극단적인 경우엔 행동 치료로까지 이어지는 등 인권침해로도 갈 여지가 농후한 기반까지 만들어주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마음 이론은 자폐성 장애인을 차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이론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학계에선 비장애인이라 불리는 신경 전형인과 자폐성 장애인의 상호작용 어려움을 자폐인의 사회성 부재 탓으로 오인하도록 이 이론이 부추기고 있지 않냐는 의문이 제기될 정도였다. 따라서 마음 이론은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는 거리가 먼 의료적 모델에 기반한 이론이다.
Double Empathy Problem을 간략하게 설명한 그림. ⓒNeuroscience
이런 이론에 대항하기 위해, 자폐 연구자들과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은 이중 공감 이론이란 새 대안을 제시한다. 그래서 이 이론을 잠깐 소개하고자 하는데, 마음 이론 때 했던 경우와 마찬가지로 Damian Milton 외 학자 4명이 쓴 논문(Neuroscience, 2021)과 Damian Milton의 단독 논문(Disability and Society, 2012)의 일부 내용을 참조·인용한다는 점을 밝혀두고 소개하겠다.
이중 공감 이론에선 자폐인과 비자폐인과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사회적/의사소통적 문제를 설명하는 것이다. 자폐인은 비자폐인의 소통방식을 이해하는 게 힘들고 혼란스러우며, 비자폐인도 자폐인이 주위에 있을 때 자신의 일상적 소통방식이 잘 작동되지 않아 불편함을 느낀다.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의 사회적 기대와 경험 간 불일치로 인해 이들 간에 의사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게 어려워, 이런 경우 공감과 이해를 “이중 문제”로 묘사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 자폐인과 비자폐인인 신경 전형인 사이의 의사소통 장벽, 또는 신경학적 차이가 이들 사이의 경험 공유 및 공감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마음 이론에서 암시하듯, 자폐성 장애인이 사회적 상호작용이 떨어진다면, 두 자폐인들 간의 상호작용은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 상호작용과 마찬가지로 여러 문제가 생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폐인들 서로 간의 상호작용 질은 비자폐인들 둘 간과 마찬가지로 강력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폐인들끼리 정보 공유를 더 많이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자폐인이 비자폐인들보단 다른 자폐인들과 이야기하며 이들 옆에 앉거나 이들과 가까이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들도 있다. 그만큼 자폐인 대 신경전형인의 관계보다 자폐인 대 자폐인 간의 관계가 더 쉽고 친밀하게 연결됨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메시지 속삭이고, 메시지를 전달받은 그 사람이 옆 사람에게 메시지를 속삭이는 과정을 계속 거쳐, 마지막 사람이 메시지를 크게 말하는 것을 통해 첫 번째 사람과 마지막 사람 간에 메시지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아보는 최근 ‘전화’ 게임 연구에선, 자폐성 장애인들로 이뤄진 그룹들이 비자폐인 그룹만큼 정보를 정확히 공유하며, 자폐인과 비자폐인 혼합 그룹의 경우엔 두 그룹에 비해 정보가 덜 정확하게 전달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외에도 자폐인은 신경 전형인의 인식 및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만 이와 동등하게 신경 전형인도 자폐성 장애인의 마음과 문화에 대한 이해 역시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는 거다. 아울러 신경 전형인 중심의 문화에서 자폐성 장애인이 생존해야 할 필요가 있고, 또한 신경 전형인은 어떤 식으로든 자폐인과 긴밀하게 사회적으로 관련되지 않는 한은 자폐성 장애인의 마음을 이해할 지속적 필요가 없기에 자폐인의 신경 전형인 사회에 대한 이해 수준이 더 높다는 거다.
Autism Awareness Puzzle. ⓒPixabay
물론 비자폐 아동이 비자페 성인보다 자폐성 장애인에게 상호작용이 더 긍정적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지적장애가 없는 고인지 자폐인만이 포함되는 이중 공감 이론에 의하면, 지적장애 있는 자폐인과 비자폐인 사이의 이중 공감 문제는 더욱 커져야 할 것인데, 이게 사실인지가 아직도 검증되지 않아 이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자폐성 장애 여부에 상관없이 서로의 관계 친밀도가 이중 공감 문제를 줄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늘릴 수도 있다는 최근 연구결과도 있어 이에 대한 검증 역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자폐성 장애인이 다른 자폐인들과 효과적으로, 편하게 의사소통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이런 의사소통 과정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해 이를 밝히는 과정도 필요하다. 여기까지가 이중 공감 이론에 대한 일부 내용을 참조·인용한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는 이중 공감 이론이지만, 이 이론에선 자폐인과 비자폐인 간의 소통 문제가 자폐인의 개인 문제가 아닌 서로 간 상호작용에서 오는 점이라는 걸 보며 마음 이론이 기반한 장애의 의료적 모델에서 탈피했다는 느낌이 확연히 들었다. 또한, 이해에서 신경 전형인 사회에 대한 자폐인의 이해 수준이 더 높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폐인이 사회성이 낮은 게 아니란 점도 고무적이었다.
사실 나한테는 사회성이 낮다는 꼬리표가 많이 따라다녔다. 비자폐인들이 보기에 이들의 생각과 느낌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있으니,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었다. 물론 맞는 구석도 있긴 하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라는 말들 덕분에 아직까진 비장애인 눈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는 게 조금은 생긴 것 같아 그 말들이 어떤 면에선 고맙기는 하다.
한편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SNS상에서, 때로는 오프라인에서 소통하면서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비자폐인 문화에서 나오는 여러 지식을 배우다 보면 가끔은 나 나름대로 서투르지만 농담하는 게 재미있을 때가 있다. 나도 나 나름대로 비자폐인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긴 하다. 어쩌면 내 사회성이 이전보다 더 높아졌을 수도 있고 낮지 않은 건 분명해 보이지만 말이다. 이런 삶의 과정이 솔직히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눈치를 챙기라는 말을 교회의 아는 동생한테서 계속 들었던 순간들에선 그렇게 하는 게 한계가 있음을 나 자신 스스로 알게 되니 눈치란 말 좀 그만하라고 했을 정도이다. 심지어 그는 경제가 성장하면 장애인 예산은 자연히 늘어날 것이라며, 예산 증대 얘기 좀 하지 말라고 나에게 그랬다. 나로선 기분이 좀 그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장애인 혐오하는 거나 비슷한 말을 한 거다.
이런 걸 보면 내가 그의 생각과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건 어느 정도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가 한 말들도 장애인을 혐오하고 나의 특성을 무시하는 등 나를 힘들게 했다는 점을 몰랐거나 알아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건 그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위에도 자폐 특성 등을 숨기려고 무지 노력하지만, 특성이 어쩔 수 없이 나와 직장에서 마스킹하기 어렵다는 이들의 호소를 많이 보고 듣기도 한다. 워낙 한국 사회가 눈치를 중요시하는 비장애 중심의 고맥락 사회에 있다 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하다. 그럴 때마다 이들의 생각과 느낌이 완전 100%는 아니지만, 많이 공감되면서 같이 분노를 느낄 때도 있다. 물론 나의 경우엔 이젠 사람들 시선이란 이유로 자폐 특성을 더는 숨길 이유도 없고 숨기기도 싫지만 말이다.
이론이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폐인 자체의 문제가 아닌 자폐인과 비자폐인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문제로 인해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이중 공감 이론을 통해 방금 얘기했던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이 살아내는 삶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Diversity. ⓒPixabay
이런 이론이 우리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가진다면 어떨까? 사회가 다양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물론이고, 이를 통해 비장애 중심의 사회성 개념을 자폐성 장애 등의 장애와 성적 지향 등을 포함한 다양성을 포함한 개념으로 전면 수정할 것이라 상상해본다.
그렇게 되면 취업이나 면접 시, 또는 직장 내에서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차별받고 직장근속 유지 기간이 짧은 일들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을 터이다. 다양성이 진정으로 확보된 직장을 통해 직장은 이전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을 통해 매출과 경제적 이익을 장기적으로 더 많이 올리는 데 도움이 될 터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도 진정으로 어울리며 놀기도 하고 함께 배우며 지식을 공유하는 장애인, 성 소수인 등이 많아지는 게 더 이상 꿈이 아니게 되겠지. 꿈만 꿔도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현재는 마음 이론을 위시해 장애 치료 패러다임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또한, 신경다양성 등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척하고, 격심한 자폐(Profound Autism)란 말로 자폐성 장애인에게 낙인을 씌우고, 행동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내용의 작년 란셋(Lancet)지 논문 사태와 같은 치료세력들의 입김도 앞으로 더욱 거셀 걸로 예상된다.
그러기에 전 세계 자폐인들과의 연대 강화는 물론, 치료세력과 이들에 찬동하는 부모들을 설득하고, 정부·지자체에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활동들을 앞으로는 자폐 당사자들이 용기를 갖고 더욱 많이 해야 하는 게 과제일 듯싶다.
이 과제를 차근차근 이행하고, 국가도 자폐성 장애인 등의 공식적 정책·사회 참여 통로를 마련할 때, 이중 공감 이론 포함한, 아니 이 이론보다 인권적 모델 요소를 더욱 많이 반영한 이론들이 우리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쥘 환경들이 마련되겠지. 자폐인들이 사람대접을 받는 건 덤으로 따라오겠지.
그러니 1년 365일 자폐인이 권리의 객체인 사회에서, 매년 4월 2일 자폐인의 날을 축하한답시고 그날만 자폐인을 기념하는 식이나 마찬가지인 가증스런 행태는 이젠 그만하자. 그 대신 자폐 특성이 다양성으로 존중받는 사회, 자폐가 다양성인 패러다임의 사회를 감히 꿈꾸련다. 자폐성 장애인이 진정 원하는 건 자폐 치료가 아닌 자유와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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