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주차장에 마련된 장애인전용주차구역(기사와 무관). ©에이블뉴스DB
전동휠체어를 타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덩치 큰 녀석을 데리고 다닐 수 없어서 차를 바꿨다. 차에 슬로프를 설치하자니 편해졌지만 고속도로 감면 혜택을 포기해야 했다. 당시 쓰던 하이패스 단말기를 옮겨 달려고 주민센터를 방문했더니 2,000cc 이상이라 감면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렇게 6년을 그냥 다녔다.
한데 우연히 내 차도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는 걸 알았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라고 혹시나 몰라 한국도로공사에 문의를 했다. '원래' 지원 대상인데 주민센터에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있었다. 순간 화가 났지만 꼼꼼히 알아보지 못한 내 잘못도 있으니 단전에 힘 빡 주고 참았다.
다시 하이패스 감면 좀 받아 보자고 주민센터에서 한국도로공사 영업소, 지정 은행까지 두루 돌아다녔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쫓아 다니자니 진이 빠졌다. 이 정도면 통행료 감면받아서 집 살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은행을 들렸다. 전에도 와본 적이 있는 건물인데 지하 주차장이 좁아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지상 주차장에 딱 한 칸 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비어있는 게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우아한 핸들링으로 주차를 하는데 남자가 다가와 창문을 거칠게 두드리며 봉을 흔들어 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문을 내리는데 그새를 못 참고 다짜고짜 여기에 주차를 하면 안 되니 지하로 내려가라고 큰 소리를 낸다. 아하! 이 아저씨 열심히 일하네 싶어 미소를 띤 채로 장애인 차량임을 알렸다.
한데 이 남자 내 미소에 화답은 커녕 미간에 주름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 지하 주차장에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있으니 그리로 내려가라며 막무가내다. 계속 흔들어 대는 봉을 뺏어서 때려주고 싶을 만큼 불쾌했다.
나 역시 미간에 주름 잡으려 비어 있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인데 뭐가 문제냐, 나는 휠체어도 내려야 해서 그곳은 주차하기 쉽지 않다. 여기 주차하겠다 항변했다. 여기는 택배 차량이나 짐차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짐을 내리는 곳이니 주차가 안 된다, 다들 지하로 내려가는데 당신만 왜 그러냐며 있는 대로 짜증을 냈다.
평소 같으면 비켜줄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말을 듣지 않는 무뢰배처럼 대하는 남자의 태도에 화가 났다. 게다가 어깨를 다쳐 재활 치료를 받는 중이기도 해서 좁은 지하 주차장은 애를 먹을게 뻔해서 나도 주차를 고집했다. 남자가 차를 막는 바람에 실랑이가 길어지자 아내가 나섰다.
보자 보자 하니까 못 참겠네! 아저씨 자꾸 이러면 민원 넣을 거예요!
아내 격분에 남자는 "하려면 해"라면서 입을 씰룩대더니 은근슬쩍 꼬리를 감췄다. 물건을 싣고 나르는데 방해가 된다고 버젓이 비어있는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이 애물단지 취급을 하는 남자를 보면서 속이 상했다.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주차를 방해하는 차량이나 물건 적재는 분명 위법한데도 남자는 막무가내로 주차를 막았다.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 해도 장애인전용주차구역에 장애인 차량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다 어쩌면 장애인 차량에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이 탑승한 경우를 보지 못해서는 아닐까 싶었다. 장애인 차량이라는 표지는 있지만 정작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보행이 불편한 사람이 아닌 경우가 허다한 게 현실 아닌가.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보행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라는 걸 모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자신의 편의를 위해 표지 뒤에 양심을 묻는 사람들이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 표지를 발급하는 주민센터에서 별도의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늘 일을 생각하다가 속상한 일을 당했는데도 나로 인해 장애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남자에게 심어준 건 아닐까 염려스러워하는 내 모습에 더 속상해졌다. 이 사회는 언제까지 이럴 텐가.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