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이력서에 장애 상태 및 정도를 기입한 부분. 장애 사실에 대해 매우 복잡한 설명을 붙여야 할 정도이다. ⓒ장지용
제 장애등록 서류에는 ‘자폐성장애 중증’으로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지금 저는 대단히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법과 현실이 너무 안 맞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득불 ‘자폐성장애 중증은 법적인 것임, 실제로는 경증임’이라고 이력서에 적어놔야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직을 가면 은근히 차별을 최근 많이 받기도 합니다. 특히 실제 장애상태를 적을 수 없는 경우에는 더 심각해서 단순히 ‘자폐성장애 중증’이라고 적었다는 이유로 탈락하는 사례도 최근 발생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모순된 상황입니다. 게다가 몇몇 기업체 지원서에는 실제 장애 상태나 특성 등에 관한 서술을 할 수 없도록 한 경우도 있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장애 상태와 특성에 관해 설명도 못 하고 단순히 정도로만 판단하는 것은 이제 없어져야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심지어 저를 잘 아는 장애인고용공단 직원마저 ‘제도가 낳은 문제점’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직원의 설명은 장애인 고용은 경증 위주인데 저 같은 사례에서는 법으로는 중증이고 실제로는 경증인 경우이니 대단히 복잡한 셈법에 놓인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중증/경증 이분법으로 장애등급제를 개편해도 소용없는 것은 실제 장애상태를 객관적으로 증빙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더 세밀했던 예전 등급제가 나았을 것이라는 웃지 못할 우스갯소리를 해야 할 지경입니다. 과거에 장애등급 구조를 알았던 이들은 등급을 보고서도 ‘아, 이 정도면 실제로는 경증이구나’라는 객관적 짐작이 가능했는데 말입니다.
장애등급제가 처음부터 잘못 설계되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애등급제가 또 이원화하는 것까지도 결과적으로 실패작이라고 봅니다. 너무 기계적으로 중증/경증을 이원화한 것이 아닐까 싶은 심정이 들기도 합니다. 과거 장애 정도 개념 도입 시 실제 장애인등급 설계 방식 이런 것을 무시하고, 또 각자의 실제 장애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장애정도를 판단한 앞뒤 안 맞는 문제가 이렇게 발생한 것입니다.
장애등급제도 실패했지만 장애정도를 이렇게 이원화한 것도 이렇게 결과적으로 실패입니다. 장애 상태를 다시 이원화해도 결국 손해 보는 집단이 가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발달장애 집단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많이 보는 집단 중 하나인데, 경증 발달장애라는 장애정도 체계에는 존재하지 않아 실제 경증 발달장애 집단은 의외의 피해가 생겼습니다.
장애정도 체계도 조금은 변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장애정도 개념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슨 거창하게 의학적 모델 폐기 이런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발달장애 경증 규정을 신설하는 등 뭔가 빠져있는 것을 보충해야 할 시점입니다.
한편으로는 복지 체계에서 중증/경증 이분법적인 규정도 장기적으로 등록장애인 전체로 변화를 주는 등 복지 체제에서도 소외되지 않게끔 하는 정책도 필요할 것입니다. 국내의 장애인 지원 정책이 아직도 등급제의 잔재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것을 개혁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러한 장애정도 개념, 특히 발달장애=중증장애 틀에 가둔 것은 앞으로의 발달장애 문제에서도 결국 실패할 개념이자 장기적으로 위험해지는 그 지점이 다가올 것입니다. 발달장애 관점에서는 중증장애라는 틀에 가둔 결과가 발달장애인의 스펙트럼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차이점이 매우 두드러진 집단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발달장애의 정도 판정 규정으로는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전혀 반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발달장애=중증’ 이 공식 때문에 피해를 볼 ‘경증 발달장애인’의 고충이 커질 전망입니다. 특히 자폐성장애는 경증 자폐성장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 아직 법적 등록 인정 수준이 대단히 까다롭고 실제 자폐상태라고 할 수 있는 비중이 등록 인구수의 거의 배 이상을 차지하는 특성도 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경증 발달장애’ 개념을 신설하는 것은 일차적인 과제이고, 장기적으로는 장애정도 개념까지도 완전히 없어지고 복지 지원 수준 이런 정도나 아니면 등록장애인이면 보편적으로 누리는 복지 체계로 장기적 전환을 모색할 시점입니다. 안 그래도 현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영 내놓지 않는데, 그렇게 노래를 하시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무자비한 ‘야당 대표 수사’(搜査)가 아닌 새로운 정책 구호를 담은 ‘새 정책 구호를 담은 수사’(修辭)를 더 많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구직시즌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자폐성장애 중증’이라고 적는 지원서를 또 써야 합니다. 실제 장애상태는 ‘거의 자폐성장애는 거의 특이한 성격 수준’이라는 세평이 있을 정도의 저 같은 경우에도 자폐성장애 중증이라고 써서 실제 장애상태와 법률 용어가 만든 장애상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계속 웅변해야 하는 슬픔이 있습니다.
일단, 저는 이렇게 또 법률에 따라 중증 줄에 서야 하는지, 실제 상태인 경증 줄에 서야 하는지 영 모르는 상태로 오늘도 회사 지원서를 또 씁니다. 제가 이제 구직에 나서면 제 취업 캐치프레이즈를 ‘현실판 우영우’라는 수식어를 요즘 갖다 붙여서 써도 되는 시점이 되었음에도 말이죠! ‘현실판 우영우’는 법적으로 중증장애라서 슬픕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 때문에 말입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