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핵심 추진과제 및 기대효과를 간단 설명하는 자료 중 일부. ⓒ보건복지부
작년부터 장애계 단체들과 학계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관련한 의견을 피력했고, 정부는 이에 기초해 계획을 세우기 위한 절차에 돌입한 후, 올해 1월 말 계획 초안을 내놓았다. 이 초안에 대해 장애인계, 학계 등의 피드백을 받는 시간을 거친 후 지난 9일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을 확정, 발표했다.
정책의 “맞춤형 지원으로 장애인의 자유롭고 평등한 삶을 실현하는 행복사회”이며, ▲복지·서비스 ▲건강 ▲보육·교육 ▲경제활동 ▲체육·관광 ▲이동·편의·안전 등 9대 분야, 30대 중점과제, 74개 세부 추진과제로 구성됐단다. 계획 확정 소식을 접한 후 개략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는지 읽어봤는데, 조금은 우려스러웠다. 이번 글에선 보육·교육과 건강 분야에 대한 의견을 말하겠다.
먼저 영유아 발달 정밀검사 지원기준을 전체 대상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분명 고무적인 변화긴 하지만, 성인기에 자폐 특성을 의심해 이게 있는지 알아보려 정밀검사를 하는 것에 관련된 비용지원에 관한 내용은 없다. 이 경우엔 오롯이 본인 부담이다.
여기에 자폐와 조현병 진단이 비슷하단 이유로, 정신과 의사들이 자폐 진단을 잘 내리지 않는 등 이들의 자폐성 장애 진단 관련 전문성 부족도 큰 문제다. 따라서 자폐성 장애의 경우엔 1, 2차 병원에 자폐 진단에 관련된 정신과 의사들의 전문성 향상 계획이 있어야 하고, 성인기 때 자폐 특성과 관련된 정밀검사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현실에다, 자폐성 장애에 대한 지역사회 혐오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선 미등록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양산되기 쉽다. 정신장애 특성이 있는 미등록도 많다. 미등록에 지적장애가 없는 경우인 고인지 자폐·정신 장애인의 경우엔 비장애 중심의 문화로 인해 자신의 장애 특성을 감추는 마스킹(Masking) 을 하며, 세상 적응에 안간힘을 쓰지만, 도리어 정신건강은 해치게 된다.
따라서 이들뿐만 아니라 정신건강 문제를 겪는 장애인 당사자들에 대한 상담체계가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해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상담은 장애인의 부모에게만 적용되고, 장애 당사자들의 정신적 상담 관련 내용이 거의 없어 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된다.
장애아가족양육지원서비스의 경우엔 2027년 연 1440시간으로 확대하겠다는 거지만, 장애인과 그 가족의 욕구와 선호, 의지에 따른 게 아닌 오로지 예산으로 하는 것은 여전하고, 1일 평균 4시간이라, 부모들이 원하는 평균 8시간 이상과 비교해, 여전히 서비스 총량도 부족하다. 따라서 이들의 욕구, 선호에 따른 제도로 전환하지 않는 한 가족들에겐 체감이 잘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돌봄 요구가 심각한 장애인에게만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계획은 변함없는 등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 역할을 사실상 강요받고 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보건복지부
교육 분야에선 일반교사와 특수교사 간 협력을 통해 장애-비장애 학생 간 통합교육을 강화하도록 ‘정다운 학교’ 운영 확대, 학교장애인식지수 시범적용 및 온라인 검사체계 구축, 적용 확대 등 장애이해교육을 내실화한단다. 그런데 국가 차원의 장애인식개선교육을 보면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함은 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장애 특성이 있지만 그래도 장애인으로 받아준다는 인식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장애 이해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애수용 교육이다. 이 교육이 장애인 인식 제고에 미치는 효과 등이 중장기적으로 연구되고 거기서 나온 장애인 당사자들과 전문가들의 정기적 피드백을 통해 장애의 인권적 모델이 반영된 장애수용 교육과정 수립이 장기적으로 필요한데 여기에 관한 내용이 없다.
더군다나 일반학급에 특수교육 보조인력이 매우 부족한 게 현실이라, 이들에 대한 증원과 함께, 장애학생의 인권과 교육권 보장, 장애 유형별 개별화 지원이 가능하도록 이들이 장애인권리협약을 훈련 수준으로 배우는 계획이 필요함은 물론 통합교육 관련 예산과 인프라 확충계획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국가·지자체 차원의 방안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자폐 당사자 포함한 장애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폭력 일상화, 장애 특성에 대한 혐오는 장애 학생의 일반학교 진입 거부와 아울러 통합교육 저해의 근본적 요인 중 하나다. 따라서 학교와 독립된 조직에서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시행, 장애 학생이 학교폭력을 고백해 드러낼 시 학교 평가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 제거, 학교 내의 반인권적 문화를 부추기는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 등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 나왔어야 하나, 이도 찾아볼 수 없다.
특수교육대상자 교육과정과 연계한 체험형 진로·직업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대학·지역사회와 연계한 전공과 확대 등 졸업 후 지역기반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장애인에 대한 맞춤형 진로·직업교육 지원을 강화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장애학생/장애인 직업교육은 장애인의 욕구, 의지와 선호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지 않고, 대학교육 등 고등교육 받은 장애학생과 장애인은 진로설정에서 제외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의 욕구, 의지 등이 반영된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직업교육이 필요하고, 대학교육을 받은 장애학생과 장애인도 구체적 진로설정 및 지원 방안이 아울러 필요하다.
건강과 관련해선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대상을 중증에서 장애인 전체로 확대하고 지역자원 연계, 방문재활서비스 도입 등 거쳐 오는 2025년부터 본사업으로 전환 추진할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장애인 전체로 확대할 필요는 있지만, 사실 의료진들의 장애 인식이 미흡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장애인건강권을 촉구하는 장애인들 모습. ⓒ에이블뉴스DB
의과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장애수용·이해 등 장애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게 되고 관련해 실습할 수 있는 과정이 필수과정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이고, 여기에 보건소 등 1차 의료기관이 엘리베이터 없는 2, 3층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등 물리적 접근성이 열악하다,
또한, 주치의 시범사업 시행 초기에도, 만성질환 관리 케어플랜 서비스 부담금이 128,310원인 등 소득수준 낮은 장애인들은 경제적 부담으로 시범사업 참여를 꺼렸었다. 따라서 의원급 1인의 의사가 장애인의 건강정보 관리 및 2차 장애 예방 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체계를 갖추고 사업참여 자부담 비용 경감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또한, 의료진의 정기적 장애수용교육과 장애에 대해 체계적·정기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필수과정이 의과대학과 대학원에 마련되는 것 등의 장애인식 제고 조치와 비급여로 인해 의료비 지원 필요가 인정되는 자에게까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 보건소 주차구역 단차 제거 등 물리적 접근성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니 장애인 주치의제도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물리적·심리적·경제적 접근성 확보가 전제돼야 하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 대안이 나와야 하는데, 이에 대한 것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설사 주치의제도를 실제로 실시하더라도, 실제 장애인의 건강권 증진으로 이어지기엔 상당히 어려울 것이란 우려를 낳고 있다고 본다.
이외에도 장애인 의료비 지원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과 이에 상응하는 자 등에게만 지원되기에, 비급여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상당해 의료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인정되는 자에게까지 지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런 계획도 찾아볼 수 없어 역시 장애인 건강권 측면에서 우려스럽다.
장애인 보조기기 지원 품목의 경우엔 2023년 38개에서 2027년 46개로 지속 확대하고 보조기기 건강보험 급여 확대도 추진한단다. 구체적으로 점자학습기, 배회감지기 등 이용자 수요 및 전문가 의견수렴 등을 통해 결정할 예정인 것도 계획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보조기기 지원 기간이 내구연한과 비교하면 길기에, 기간 내에 파손이나 고장 시 보조기기가 필요하면 기기를 재구매해야 하는데, 장애인은 대개 소득이 낮기에 기기 재구매할 때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비슷한 보조기기 품목의 경우는 지원 시 중복지원으로 보기에,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장애인 보조기기 급여액 증대는 물론 기기의 내구연한 단축도 필요한 이슈다.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과테말라 출신 로사 알다나 위원이 위치추적기를 통한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의 사생활 침해에 관련해 정부에 질의하는 모습. ⓒUNWebtv 캡처
배회감지기 등 이용자 수요 및 전문가 의견수렴을 통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배회감지기는 위치추적기이며, 장애인의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이 장애인 당사자의 부모 동의만 있어도, 위치추적기가 발부되는 식이다. 국민의힘 엄태영 의원 외 10인이 2년 전 이와 관련된 실종아동법 개정안을 내놓은 적이 있다. 아직 이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개정안은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들과 관련 있으며, 부모를 포함해 우리 사회에서 특히 이들을 이동권 등 권리의 주체가 아닌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환경이라 나오게 된 안이다.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 없는 위치추적기 발부는 장애인권리협약 위반이기에, 이를 알게 된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 장애인권리협약에 부합되게 장애인실종 예방정책 포함한 적절한 조치 취하고, 사생활 존중과 장애인의 동의하에 위치추적기를 발부하란 권고를 내렸다.
그러려면 장애인의 욕구, 의지, 선호를 존중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지원의사결정제도 마련과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를 확인할 수 있는 절차 수립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성년후견제 등의 대체의사결정제도가 만연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하며, 자유롭고 고지된 동의에 따른 구체적 확인절차가 수립되지 않는 한, 설령 장애인의 동의하에 위치추적기를 발부한다 해도, 동의는 자유롭고 고지된 것이 아닌 부모 등의 보호자나 시설 관졔자 등에 의해 강제될 여지가 상당히 높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들이 이 문제 대응과 공론화 위해 머리를 맞대어 전략을 고민, 실행해야 한다고 본다.
보육과 건강 분야만 보더라도,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뿐만 아니라 요구를 반영하기보단 장애인의 삶에 변화가 거의 체감되지 않을 우려가 드는 제공자 중심의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이다. UN 장애인권리협약 권고안을 제대로 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협약을 위반할 소지가 농후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복지를 추구하고 있다.”라고 작년 시정연설에서 밝혔다. 하지만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보면 장애인의 삶에 체감될 정도로 지원하는 게 아니다. 재정 건전화 추진이 담긴 약자복지란 허울뿐이며, 제공자 중심 정책이다. 장애인은 시혜와 동정의 정책대상이고 이를 약자복지란 말로 포장한 것뿐이다.
이런 제공자 중심의 정책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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