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코로나 상황이 계속 심하던 때였다. 한동안 여행을 못 가서 몸이 근질근질 하던 나에게 둘째 아이에 대한 육아휴직 기간이 3개월 남아 있었다. 만 9세가 되기 전에 육아휴직을 써야만 했다. 둘째는 6월생이기 때문에 3~5월을 육아 휴직을 쓰고 여행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코로나19 상황 전부터 내심 계획하고 있었지만,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을 해봤다. 하고 싶었던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자격을 따고, 오랜 버킷리스트였던 책 한 권 쓰기를 어떻게든 시작해보고 싶었다. 3월과 4월은 내가 하려던 것들을 하고, 5월에는 아이들과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장애인 콜택시(두리발)를 타고 김해공항 가는 길 / 제주행 비행기 탑승. ⓒ 박혜정
사실 휠체어를 타고 제주 한 달 살기를 준비하면서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막상 찾아보니 제주에서 예산에 맞게 휠체어를 타고 편하게 한 달을 살 수 있는 숙소, 갈 수 있는 식당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장애인 차량 렌트는 한OO 렌터카 한 군데밖에 없으니 너무 비싸서, 제주에서 이동의 문제도 난감했다. 또 초등 아이들 학교 문제도 굉장히 해결하는 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계속되는 칼럼에서 자세히 쓸 예정)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엄마여서 갈 수 없고, 같이 할 수 없는 게 많더라도 우리 현혜가 엄마와 함께 하는 마음은 가득 느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숙소, 차량, 식당, 아이들 학교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던 제주 한 달 살기 준비. ⓒ 박혜정
준비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드디어~ 휠체어 탄 엄마와 아이들의 제주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휠체어를 타다 보니 숙소는 시설이 편리한 리조트에서 하기로 했다. 마침 그 리조트에서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손님을 끌기 위해 이벤트로 한 달 살기 숙소 가격이 너무 저렴하게 나왔다. 코로나19 상황이 나에게는 너무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제주에서의 한 달이 너무 행복할 것 같았다.
우리의 제주 한 달 살기는 우선 리조트 선택을 너무 잘한 것 같았다. 루프탑에 미온수 4계절 수영장이 있어서 물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은 수시로 놀 수 있었다. 그리고 루프탑에는 포차도 있어서 가끔 맛있는 걸 먹으며 아이들과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정말 친절하고 따뜻한 리조트 직원들은 휠체어 타는 나를 정말 많이 배려해주었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정이 넘치게 대해주었다.
코시국 특가로 가성비 짱! 휠체어 시설도 잘되어 있던 리조트 / 루프탑 미온수 수영장에서 노는 현혜. ⓒ 박혜정
사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남편 없이 휠체어를 타는 나 혼자 아이들 둘과 지내야 하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애들이 많이 커서 나를 도와주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거의 내가 혼자서 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이었다. 걱정을 많이 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어쨌든 독박 양육을 해야 하니 힘이 들겠다고 생각을 했다.
도착을 해서 짐을 방으로 옮기는 것부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는 것도, 리조트 방안에서 애들 밥을 챙겨 먹이는 것 등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힘든 순간마다 어디선가 딱 맞게 나타나셨던 직원분들과 객실 팀장님은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도움을 주셨다.
휠체어를 타고 한 달 살기의 어마어마한 짐을 옮기고 정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 박혜정
리조트 숙소 가격은 2인 조식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거였다. 나와 애들이니 어쩔 수 없이 셋이서 조식 레스토랑에 갔다. 몇 번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그냥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원이 와서 “2인 조식이 기본이고 29박 30일 머무시는 거니까 총 58인분을 전체로 보고 오시는 인원이 몇 명이든 그냥 차감하는 식으로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난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늦잠을 자서 안 먹은 날도 많았는데, 그런 날까지 다 계산 해주는 배려깊은 서비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말에 남편까지 와서 먹어도 눈치 보지 않고 같이 먹을 수 있으니 그런 배려가 너무 감사했다.
랜OO 도넛 가게 할아버지의 친절 / 따뜻한 제주분들 덕분에 공짜로 VR 체험도 하게 되었다. ⓒ 박혜정
한 달 살기 답사 겸 장애인 인식 개선 강사 시험을 보러 4월에 2박 3일을 왔었다. 그때 친해진 리조트 1층의 편의점 직원 분은 나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 애들이 편의점에 가면 너무 따뜻하게 맞아주고, 덤으로 무언가를 많이 주셨다. 쑥떡을 집에서 만들었다며 한가득 주시기도 했다. 언제나 가면 늘 웃으며 말 걸어 주시고 너무 기분 좋게 해주셨다.
그리고 현혜가 가보자고 해서 갔던 유명한 랜OO 도넛 가게에는 대기줄이 엄청 길었다. 그곳에서 대기열을 관리하시는 할아버지가 휠체어 탄 나를 보시더니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긴 대기열의 앞으로 갈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다른 분들께 미안했지만, 할아버지께 너무 감사했다.
지난 주말, 2박 3일 잠깐 제주에 온 남편과 수목원 테마파크에 함께 갔다. VR 체험관의 직원이 가족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아 보인다며, 나와 남편을 공짜로 VR 체험을 하게 해주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어서 쓰게 될 칼럼에도 나는 제주분들께 너무 과분한 친절과 배려,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제주에 와서 많은 분들의 친절, 배려, 사랑, 감사는 내게 큰 기쁨을 주었고, 휠체어 엄마의 힘든 제주 한 달 살기를 버틸 수 있게 힘을 되어 주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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