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전남 장애학생체육대회 전경. ©김최환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을 인식하는 태도나 방식이 부정적이고 차별적이고 배타적인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그동안 우리 국가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시각과 처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장애인과 어울려 보지도 못했고 함께 활동한 경험이 없어서 장애인 하면 불쌍하게 생각하며 동정적으로 시혜를 배풀고 복지적 측면에서만 장애인을 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 교회에서 예배가 끝난 후 MZ세대 학생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면서 학교에서 장애 학생과 함께 수업이나 체육활동을 해 보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자기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을 만난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반 학생 중에 중간에 교통사고로 신체장애를 입은 학생이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장애인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장애인들과는 함께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다고 한다. 그 옆에 있는 50대 초반 그 학생의 엄마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는데, 역시 같은 대답이었다. 동네에서 한 가정에 장애인이 살고는 있었지만 그와 함께 어울리거나 같이 지내본 경험은 없었고 그녀가 학교에 다닐 때에도 장애학생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니 장애인을 만나면 무언가 불편한 것 같고 어색하기도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애 학생은 특수학교에서, 중증장애인들은 장애인 시설에서, 재가 장애인들은 장애인 복지관이나 장애인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생활하다 보니 비장애인들과 함께 어울릴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 아이들을 일찍부터 일반사회에서 분리하여 장애인 특수시설에 수용하고 특수학교에서 공부하게 하고 장애인 체육활동을 시키면서 비장애인들과 함께, 동네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본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식 교육이나 장애 체험 교실 등에 참가해 보지 않고서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주변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소풍도 가고 함께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곤 했다. 목발 사용 지체장애인, 듣지도 말하지 못해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청각장애인(농인)이 있었지만 그들을 장애인이라고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고 그냥 같은 동네 후배로, 친구로 지내면서 일상을 함께 지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러 다른 장애인 문학가, 자립생활 실천가 등을 만나고 사귀면서도 장애인 인식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몇몇 장애인(지체, 청각, 뇌병변)들과 함께 운동도 하고 지적장애 시인과 가끔 만나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기도 한다. 상대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어떤 편의를 제공해 주거나 차별하여 대하거나 어떤 일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들 역시 나와 함께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사회를 이루고 있다.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어릴 때부터 장애 인식 교육을 따로 받은 적도 일상에서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문화라는 것이다. 또한 비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 중에는 소수의 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통합학교(ILB School)에 아이를 보내기도 하는데 그것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공존하며 생활하는 법을 배우길 원해서”라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네덜란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스포츠교육을 받는다. 특히 장애 어린이와 청소년은 비장애인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학급에서 공부하며 같은 스포츠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도를 극복하며 스포츠에 도전하고 즐기는 것은 장애 유무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의 권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럴 통해 장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바꾸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차별 없는 통합 사회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일반 학교 통합학급에서의 체육수업 모습. ©김최환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장애인 학교체육’은 어떠한가?
앞서 MZ세대의 학생이나 그의 엄마 세대에서는 장애 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는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필자가 학교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학급 체육 시간에는 ‘혼자 교실에 남아 있다든지 한쪽 구석에 앉아서 멍때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특히 그때에는 특수학교나 일반 학교에서도 통합학급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시대에도 그런 것 같다. 학교체육을 담당하는 부서에선 장애인이 소외되고, 특수교육을 담당하는 부서에선 체육이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체육은 으레 비장애인이 대상이기 때문에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에선 ‘장애인 학교체육’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시피 한다. 이렇듯 아주 보통의 장애 학생들이 겪는 학교체육에서 소외되는 문제는 2023년의 대한민국 교실에서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2022년 2월부터 시행 중인 스포츠 기본법 제4조는 ‘모든 국민은 스포츠 및 신체활동에서 차별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스포츠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향유할 권리(스포츠권)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모두의 스포츠’라는 법의 취지처럼 모든 장애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와 신체활동에서 차별받지 않고 자유롭게 스포츠활동에 참여하며, 스포츠를 누릴 수 있는 교육부와 학교체육의 정책 변화가 시급하다. 비장애인, 장애인을 막론하고 미래 세대와 학교체육은 ‘희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발표된 110개의 국정과제 중 체육 관련 정책은 60번째 ‘모두를 위한 스포츠, 촘촘한 스포츠 복지 실현’으로, 해당 과제 아래 ‘스포츠 기본권 보장’, ‘전문체육 환경 개선’, ‘스포츠를 통한 지역 균형 발전’ 등을 내세우며 장애인체육과 관련해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사회통합형 체육 환경 구축’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장애인체육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장애인의 문화예술, 체육, 관광 환경이 좋아지면 비장애인의 환경도 좋아진다”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어울림’ 환경조성을 위한 정책 마련의 의지를 표했다. 특히 장애인 정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장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몸으로 함께, 서로를 통해 배우는 어울림 통합체육을 활성화시켜야 할 것이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 통합학급의 경우, 체육수업은 통합수업에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장애, 비장애 학생이 스포츠를 통해 한 팀이 되고, 같은 목표 의식 속에 함께 성취감을 맛보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다. 무엇보다 장애 학생들이 학교 체육 시간에 소외되지 않도록, 더이상 ‘깍두기’가 되지 않도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장애인에게 좋은 일은 비장애인에게도 좋은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통과 통합이 대세다. 장애와 비장애, 일반체육, 특수체육을 구분 짓고 선을 긋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섞으면 즐거워지고, 섞으면 새로워진다.
통합체육 교육은 누가 누구를 배려하고, 일방적으로 배우는 교육이 아니다. 몸으로 부딪치고 함께 땀 흘리며 어울려 운동할 때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된다. 서로의 다름을 공유하고 나누며 함께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지 않아도 장애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아도 통합체육으로 함께 어울려 운동하다보면 아이들 스스로 몸으로 배우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식 교육을 따로 하지 않아도, 장애인체험 프로그램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장애-비장애에 대한 장벽도 구분도 없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상대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어떤 편의를 제공해 주거나 차별하여 대하거나 어떤 일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없이 일상생활 속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많아질 때 배리어프리 스포츠 사회는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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