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023년에는 시민의 권리를 나누어주시길 바랍니다.”
새해 첫 출근길인 2일 오전 8시 30분경, 서울 4호선 삼각지역 승차장(숙대입구역 방향 1-1)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시민들을 향해 세배했다. 척수장애인인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바닥에 엎드려 호소문을 읽어나갔다.
즉각 삼각지역장은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광고물 배포 행위, 연설 행위, 철도종사자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철도안전법상 금지하고 있다’면서 역사 밖으로 퇴거할 것을 요청하는 경고 방송으로 맞대응했다. 이에 전장연 활동가들도 큰소리로 호소문을 읽어나가자, 서로의 목소리가 뒤섞이며 이내 아수라장이 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가 ‘법원의 조정내용을 존중하여 5분 이내 탑승하는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겠다’면서 시계를 들어올리고 있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표 새해인사, 경찰 방패에 막혔다
지난 2022년 한 해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외치며 지하철 투쟁을 진행한 전장연이 2023년 새해 첫인사를 ‘지하철 행동’으로 대신했다.
전장연이 정부와 국회에 요구했던 장애인권리예산 총 1조 3000여억 원 중 106억 원가량인 0.8%만 최종 반영된 것에 대한 투쟁을 올해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전장연은 지난 2021년 12월 3일 처음 지하철을 탄 뒤, 252일의 ‘지하철선전전’과 141일, 177명의 ‘삭발 투쟁’, 47차례의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등을 이어온 바 있다.
전장연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1년 내내 출근길 지하철에서 비장애인이면 누구나 누리는 이동하고 교육받고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요구해왔지만 0.8%만 최종 반영됐다”면서 “2023년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나눠달라”고 말했다.
1시간여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9시 10분경 전장연은 ‘5분 이내 탑승하는’ 지하철선전전을 진행하려 했지만, 열차 탑승을 거부당했다. 오세훈 시장의 강경 대응 입장에 대한 제지로 풀이된다.
지난 1일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에 출연한 오세훈 서울시장.ⓒ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
■법원 조정안, 오세훈 “비합리적” 전장연 “수용”
전날(1일) 오세훈 시장은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시사스페셜)’에 출연해 서울교통공사가 전장연을 상대로 낸 열차 지연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해 법원의 조정안 수용을 공식 거부했다.
조정안 내용은 교통공사 측에는 ‘2024년까지 19개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를, 전장연 측에는 ‘열차 운행을 5분 초과해 지연시키는 시위를 할 경우 1회당 500만 원을 공사에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같은 조정안을 두고 오 시장은 “비합리적”이라면서 “민‧형사적 대안을 모두 동원하는 무관용”을 내세우며 조정을 거부했다. 조정기한은 오는 4일까지다.
경찰에 가로막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은 지하철을 타기 전,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하며 “1시간 이상 연착됐던 48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은 유보하고, 5분 이내로 안전하게 타는 선전전을 진행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결국 경찰들과 공사 직원에게 가로막혔다.
“지하철을 타게 해주세요. 법원의 조정안을 수용하십시오.” 전장연 활동가들은 목이 터져라 스크린도어 앞에서 외쳤지만, 경찰의 방패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이곳에서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공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탑승 자체를 막았다. 관치 폭력”이라고 울분을 토하며, “오 시장과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법원의 조정안은 서로가 조정할 수 있는 수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오 시장의 조정안 수용을 다시금 요청했다.
'2023년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함께 나누어 주십시오!' 피켓을 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절규 VS 삼각지역장 경고방송 ‘아수라장’
“‘지하철행동’은 ‘세상에서 목소리가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지 않는 세상, 들으려 하지 않는 세상을 향한 실천이자 저항입니다’. 비장애인만 타는 ‘시민권 열차’에 ‘탑승’시켜주십시오.”
지하철 탑승을 저지당한 전장연 활동가들은 결국 스크린도어 앞에서 호소문을 함께 읽으며 경찰과의 대치를 이어갔다.
오후 2시 결의대회 진행을 위한 현수막을 펼치는 것조차 힘겨웠다. 발언을 이어가는 활동가들의 목소리 또한 계속 이어지는 삼각지역장의 ‘철도안전법 위반’이라면서 시위 중단 및 퇴거 요청 방송에 묻혔다.
전장연 권달주 상임공동대표는 “21년 동안 외쳤던 목소리를 오세훈 시장은 바로 공권력을 동원해서 장애인들을 협박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시장이냐”고 절규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은 "우리의 2022년도 투쟁의 성과는 0.8%였지만, 2023년도에는 힘차게 힘 모아서 투쟁할 것"이라면서 "이동, 교육, 노동하고 싶다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기본적인 외침이 꼭 보장됐으면 좋겠다. 우리 함께 지하철을 타자”고 결의를 다졌다.
2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서울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했지만 경찰에 의해 저지당했다. 괴로워하는 박경석 상임공동대표.ⓒ전장연 페이스북 생중계 캡쳐
전장연은 결의대회가 끝난 오후 2시 50분께 다시금 지하철 탑승을 시도했지만, 또다시 강경 대응에 저지당했다.
전장연은 오는 3일까지 삼각지역에서 1박 2일 투쟁을 이어간다. 이날 오후 7시 우동민열사 추모제가 예정돼 있으며, 다음날인 3일 오전 8시 출근길 선전전에 이어 10시 30분 해단식을 끝으로 1박 2일 농성 ‘1차 지하철 행동’을 마감할 예정이다.
한편,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 반영과 장애인권리 4대 제정법안(장애인평생교육법, 중증장애인고용촉진특별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요구하며, 한덕수 총리, 기획재정부 추경호 장관 등 각 부처 장관에게 면담요청서를 전송한 상태다.
전장연은 “3월 22일까지 면담 답변을 요청한다”면서 “답변이 없을 시 3월 23~24일 2차 지하철 행동을 진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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