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리스트 김민. ⓒ김민주
3세 때 동요 연주
1999년생인 민주는 태어나면서부터 그녀의 눈에 시력이 없었다. 빛을 모르는 채로 오로지 소리에 의존하여 세상을 알아 가고 있던 어느 날 그녀는 사촌 언니 집에 갔을 때 그곳 에서 처음으로 피아노라는 것을 접했다. 작은 전자 피아노였는데 사촌 언니는 건반을 눌러 쳐준 동요를 세 살배기 민주가 그대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어른들을 불렀다.
“저기 보세요. 민주가 동요를 연주해요!”
어른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천재라고 칭찬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민주가 피아노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민주 6세 때 성북시각장 애인복지관에서 피아노 교육을 실시하여 찾아갔었는데, 그때 피아노 선생이 당시는 대학원생 이던 김예지 현재 국회의원이다. 김예지 선생님은 후배들을 위해 복지관 음악교육 프로그램 교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다.
김예지 선생님은 항상 안내견과 함께 있었는데 민주가 안내견을 무서워하자 안내견은 착한 시각장애인의 동반자라고 설명해 주면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소리 내어 인사할 때 김예지 선생님은 ‘찬미도 민주에게 인사해. 안녕하세요.’라고 안내견에게 인사를 시키면서 민주랑 친해지도록 하였다. 민주도 안내견이 말을 잘 듣고 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빛맹학교 초등부 3학년 때 빛소리중창단과 뷰티플마인드가 홍콩 공연에 갔었는데 그때 뷰티플마인드에서 음악 지도를 해 주시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관현악과 배일환 교수님을 처음 뵈었다.
문화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음악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 2009년에 입학하면서 첼로를 시작하였는데 전국장애인예술경진대회 최우수상, 전국장애인 예술제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하며 연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뷰티플마인드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전문적인 레슨을 받으며 김민주의 음악 인생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연주자 엘리트 코스
초‧중학교는 한빛맹학교를 다녔고, 고등학교는 서울예고로 입학했다. 예술을 하는 학생들은 예중과 예고에서 공부를 해야 제대로 예술 공부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장애 학생들에게는 그 코스가 쉽지 않은 교육과정이다.
민주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뷰티플마인드 배일한 교수님이 ‘한번 예고시험 보는 게 어때?’라고 조언해 주셔서 용기를 갖고 도전하였다. 예고는 지정곡이 2곡 나오는데 그해 지정곡이 김민주에게 잘 맞는 곡이었다.
지정곡이 7월 말쯤 발표되고 시험은 11월이라서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기에 지정곡이 합격과 불합격에 큰 영향을 준다. 그때는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도전이 목표였기에 시험에 대한 부담이 적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를 한 것이 2015년 서울예고 최초의 시각장애 학생 합격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맹학교를 다니다가 일반학교로 가니까 처음에는 정신이 없었다. 애들이 너무 많아서 한마디 씩만 해도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들려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수업 방식도 항상 뭔가를 칠판에 PPT로 자료를 띄워 줘서 시각장애가 있는 민주로서는 수업 내용을 알 수가 없기에 공부하기가 어려웠다.
점자 교과서를 만들어 주셔서 교과서를 보기는 했는데 교과서 외의 다른 자료들이 워낙 많아 점자로 만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파일이 있으면 음성지원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공부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파일을 보내 주셨다.
서울예고에서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약칭 한예종)에 바로 입학했다. 한예종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보다 장애인들이 합격하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민주는 한번에 합격을 하였다.
대학원은 2022년 배일환 교수님이 계시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원 관현악 전공으로 입학하였는데 지난해 연주가 많아서 1년 휴학을 하여 졸업까지 한 학기가 남아 있다.
유학에 대한 로망은 없다. 외국으로 연주를 갈 때마다 한국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 국내파이 다. 물론 공부하고 싶은 좋은 학교도 많지만 첼로는 악기가 크고, 혼자서 이동하는데 제한이 있다 보니 여러 가지 고려할 점이 너무 많아서 유학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는 것이 민주의 속마음이다. 마침 2021년 졸업할 때 코로나19

공연 모습. ⓒ김민주
2019년 6월 UN 뉴욕본부에서 열린 ‘제12차 UN 장애인권리협약 당사국회의’ 부대행사에 첼리스트 김민주가 무대에 섰다. 당시 스무 살이었다. 문화외교 자선단체 뷰티플마인드가 외교부를 통해 초청받아 이루어졌다.
뷰티플마인드에서 단원들의 음악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뷰티플 마인드>를 상영하고 김민주와 발달장애 클래식 기타리스트 심환이 연주를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본 연주를 하고 마지막 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아리랑>은 준비된 곡이 아니었고, 출국 며칠 전에 지도 선생님이 갑자기 한국을 알리려면 <아리랑>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급하게 준비해서 갔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이 기립하여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원더풀!’을 외쳤다. 민주는 그날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독주회는 2021년과 2023년 두 번 있었다. 첫 번째 독주회는 졸업 연주회였다. 그때 코로나 19로 관객을 7명밖에 초대를 못했다. 뷰티플마인드 금손프로젝트로 실시된 것이었고, 두 번째 독주회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장애예술창작지원사업’ 공모를 통해 마련되었다.
김민주는 두 번째 독주회에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한 3번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특징인 슈트라우스 첼로 소나타를 연주하여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제 음악을 듣고 사람들의 마음에 힐링이 되었으면 좋겠고, 시각장애인 첼리스트가 아니라 그냥 첼리스트 김민주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민주는 독주회의 의미와 자신의 음악 인생의 목표를 밝혔다.
2024년에 체코와 오스트리아 연주회에 참여했는데 대공연장이라서 규모가 어마어마한 데다 관객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기억에 남는다. 각 나라 대사들이 부부 동반으로 관람했고, 한국 교민들도 많이 왔다. 연주가 끝나자 모두 기립 박수로 환호해 주었다.
이 공연은 한빛맹학교 트리오로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로 구성됐는데 관객들이 장애음악인 연주회가 아닌 그냥 연주회로 받아들이는 인식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좋은 관객이 좋은 연주 자를 만든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술인으로 살려면
민주는 현재 뷰티플마인드와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에 참여하고 있다.
하트는 공연이 많고, 뷰티플마인드는 취업 프로그램으로 연주자를 기업과 연결해 주어 장학금을 받도록 지원해 준다. 그러니까 직업으로 취업이 된 상태인데 연주 활동을 하는데 기본적인 활동비가 마련되어 큰도움이 된다. 김민주는 현재 (주)메리츠캐피탈 소속 아티스트이다.
공연을 하려면 무대 의상이 필요한데 엄마와 인터넷에서 고르거나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고 선택한다. 구매보다는 대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민주는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아서 언니랑 같이 메이크업을 하고 엄마도 도와준다.
가끔 아주 가끔 엄마 아시는 분들이 결혼식 같은 축하연에 연주해 달라고 갑자기 부탁을 하기도 하고, 알고 지내던 음악가가 자기 콘서트에서 같이 연주했으면 좋겠다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첼로는 혼자 연주하는 것보다 반주자가 있으면 조금 더 화려한 연주가 된다. 연주 의뢰가 왔을 때 반주자가 없어서 김민주가 데리고 갈 경우 반주자 출연료가 책정되어 있지 않아서 곤란할 때가 있다. 그래서 반주자에 대한 협의가 필요한데 주최 측이 음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는 소통이 잘 안 된다.
또 어떤 경우는 반주자가 있으니 그냥 오라고 하는데 한 번도 함께해 보지 않은 분과 연주를 하려면 미리 맞춰 봐야 한다. 보통 연주 당일 리허설에서 한번 맞춰 보게 되는데 당일에 맞추 기가 어려울 때도 있다. 김민주 입장에서는 함께 연습을 했던 연주자가 가장 좋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많아서 반주자 신경 안 쓰고 자기 연주에만 신경을 쓰면 되기에 다행이 다. 시각장애로 점자 악보를 통해 곡을 익히고 악보를 모두 외워서 연주해야 하는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런 노력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김민주이다.
멋진 첼리스트가 되기 위해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시상식에서. ⓒ김민주
김민주는 그동안 본인이 교육을 받아 온 뷰티플마인드 뮤직아카데미에서 후배 단원들에게 첼로 지도를 하고 있다.
“연습하는 파트 부분을 가르치는 것뿐인데도 쉽지 않아요. 저를 지도해 주신 선생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요. 보람을 느끼기도 하구요.”
김민주는 누군가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강한 의무감을 갖고 있다.
이런 다양한 활동으로 2024년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우수상(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였는데 뷰티블마인드 노재헌 대표가 시상식에 참여하여 단원인 김민주의 수상을 축하해 주어 눈길을 끌었다. 그해 12월 뷰티플마인드 송년 콘서트에서 김민주는 연주를 한 후 ‘지금은 우수상을 받았지만 앞으로 대상을 받고 싶다.’고 하여 관객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박사과정인 연주자과정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현장에서 연주를 계속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대학이 있는지 알아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연주자과정은 연주의 기량을 키울 수 있는 전문 연주자 코스로 2년 또는 3년 과정으로 운영된다.
“피아노 선생님이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처음에는 신기했어요. 이제 저희한테 길이 좀 더 열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시각장애인으로 성공하신 분들이 많지만 제가 알던 분이 멋진 성공을 이룬 것을 보니까 느낌이 확실히 새롭긴 했어요. 꿈과 함께 도전 의식이 생겼습니다.”
김민주의 스승인 배일환 교수는 ‘첼로는 미묘한 손가락의 움직임에도 음정 차이가 많이 나서 시각장애인이 연주하기에 고도의 기술과 집중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악기’라며 ‘장애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 진정한 연주자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하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