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정현석 칼럼니스트】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영등포역에 나갔다. 언제나처럼 교통약자 전용 창구에서 미리 발권한 승차권을 제시하고 역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의 안내를 받아 열차 타는 곳으로 나가니 다른 직원이 “일행이세요?”라고 물었다. 그 말에 옆을 바라보니 나 말고도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내가 목적지가 동일하기에 일행 여부를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여기까지는 열차를 이용하다 보면 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목적지에 열차가 멈추고 승강장에 휠체어가 도착하던 순간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 목소리를 듣자 함께 목적지에서 내리던 그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네 다리로 걸을 수 있는데 (휠체어를 타고) 이렇게 가니 좋아? 비가 좀 온다고 해도 걸어 나와야지 이걸 타면 어떡하냐? 너는 몸이 장애가 아니라 생각하는 게 장애가 있어서 큰일이야. 퇴근하고 네 집에 가서도 이렇게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있는 거지? 운동 좀 하라니까?”
알고 보니 그렇게 이야기한 사람은 방금 전까지 나와 같은 열차에 타고 있었던 승객의 아버지였다. 금요일 오후여서 역 승강장에는 사람이 제법 많은 편이었지만 결코 작지 않았던 그 아버지의 목소리에 아들인 그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타인인 나도 그 소리가 듣기 싫어 피하고 싶었지만 역 내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는 불편한 그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짧지만 전혀 짧게 느껴지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지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다른 승객들이 많아 잠시 더 기다려야 했는데 그 순간에도 잔소리는 이어졌다. 내용은 달랐지만 걸을 수 있는데 왜 휠체어를 타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가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
“옆에 분은 다리 근육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왜 이거(휠체어)를 타신 거에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한 질문 치고는 예의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소리를 질러가며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사실만 말해주기로 했다.
“역에서 장애인 승객을 도와주는 것은 시각장애인 안내 아니면 전동이나 수동을 탄 사람 아니면 원칙적으로 도와주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뒤에 계신 분에게 한번 확인해 보시죠.”
뒤에서 휠체어를 밀어주고 있던 사회복무요원에게 다시 동일한 질문을 한 후 그때서야 자신의 아들과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방금전까지 자신의 아들에게 생각이 장애라고 말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휠체어를 타냐고 물었던 그는 아들과 내가 “걷기 싫어서 일부로 휠체어를 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남이기 때문에 짜증 한번 내며 지나가면 그만이라고 해도 독립까지 한 처지에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아들의 심정은 어떨지 짐작이 간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그 아버지와 아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그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 승강장에 올라왔다. 그러면서 방금전 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 보았다.
아버지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그 사람은 장애가 있지만 회사를 다니며 가족과 떨어진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립했다는 말일 터다. 그리고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장애를 감안 하고서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생활하면서 신체적으로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를 가족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며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장애인에게 불편함이 생긴다는 것은 곧 비용으로도 연결되니 말이다.
만약 가족 내에서 그의 발언권이 좀 있었다면 조금 전과 같은 상황에서도 가만히 있었을까? 다른 사람이 설명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그 상황을 풀어갔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아버지도 “생각이 장애라고 할 것이 아니라 무슨 일로 휠체어를 타고 왔냐”라고 질문 내용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가 장애인 아들이 아닌 장애는 있지만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된 아들로 인정받아 가정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 부자를 만났던 기차역에 내릴 때마다 그들이 생각날 것 같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