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소재 청소년 소설 중 많이 알려진 『아몬드』에 나타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고 장애에 대한 관점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려 한다.
소설 『아몬드』는 선천적으로 편도체가 작아 감정표현불능증을 갖고 태어난 소년의 이야기이다.
감정표현불능증을 ‘알렉시티미아’ 라고, 하는데 어렵고 생소한 명칭이다. 사이코패스와 무엇이 다른지는 이 글의 주된 내용이 아니기에 넘어가겠다.
아몬드. ©pixabay.com
장애인은 괴물인가?
주인공 윤재는 16번째 생일, 크리스마스이브에 비현실적인 특이한 사건으로 엄마는 뇌사상태에 빠지고 할머니는 사망한다.
‘혼자가 되자 세상의 편견에 괴물로 낙인찍힌다’라고 책 소개에는 되어 있지만 사실 혼자가 되기 전에 할머니도 손자에게 괴물이라고 불렀다.
“우리 손주는 괴물이야,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괴물.”
물론 사랑스러운 괴물이라고 순화시켜서 표현했지만 남과 다르면 괴물로 보는 작가의 장애인 관이 나타난다. 만약 지체장애인에게 ‘귀여운 괴물’이라고 표현하면 어떤 느낌이 들까? 사랑의 표현도 아니고 놀리는 느낌도 들고 아무리 들어도 이상한 표현이다. 할머니는 주인공을 사랑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하지만 받아들이기 거북하다.
작가가 장애인을 괴물로 보고 있는 확실한 증거는 프롤로그에서도 화자의 생각이 괴물이라는 단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이다.”
괴물은 장애인을 왜곡하는 표현이라 쓰면 쓰지 말아야 한다.
아몬드 표지. ©나무위키
장애인은 침묵해야 하나?
엄마가 감정표현을 못 하는 아들에게 알려주는 교육 방법은 튀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한국인의 고질적인 교육방식인데 남과 다른 천재나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죽이는 전형적인 교육방식이고 군사정권이나 산업화사회에서 가르치던 방식이다.
엄마가 이렇게 생존에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일 수도 있지만 장애인에 대해 인식이 깊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남과 조금만 달라도 견디지 못하고 똑같아지려는 강박관념이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이어진다.
화자의 엄마의 교육이 조금 달랐으면 어땠을까?
예를 들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신의 선물로 여기고 여기에 맞는 직업을 찾아주는 것 말이다. 그런 직업은 생각보다 많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도축업, 장의사 같은 직업.
엄마는 감정에 정답을 정해 놓고 아들에게 알려준다. 인간의 감정은 고유한 것이고 소중한 것인데 감정을 통제하고 조정하려 한다. 그렇게 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런 교육은 고유한 개체의 생존 이유인 미묘한 감정까지 정답을 정해 가르친다는 관점에서 위험하다. 이것은 장애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강압적인 교육이기에 실제 화자에게 가하는 폭력은 큰 것이다. 화자가 느끼지 못한다는 이유로 감정을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때 아주 위험한 교육방식이다.
“화내야 할 때 침묵하면 참을성이 많은 거고, 웃어야 할 때 침묵하면 진중한 거고, 울어야 할 때 침묵하면 강한 거다.”
감정이 없는 화자가 화가 나고 웃는 감정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가지만 참고 견뎌야 미덕이 되는, 침묵이 금인 인간을 칭송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가지 걱정인 것은 화자가 어느 정도 감정이 돌아와도 참기만 하는 아이가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든다.
“'고마워'와 '미안해'는 습관처럼 입에 달고 있어야 했고 그 두 가지 말은 곤란한 상황을 넘겨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이것을 다르게 해석하면 장애인은 무조건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입을 통해 작가의 왜곡된 장애인관이 표현되고 있다.
상식적인 의문들
일러두기에서 이 소설은 사실에 근거하되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썼다고 하지만 상식적인 의문이 들었다.
* 감정을 못 느끼는데 악당을 물리는 TV 만화에 화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나?
* 자동차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인지적 문제인 것 같은데 편도체 문제인지는 깊은 연구를 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것은 동물적 본능에 가까운 것 아닐까. 개도 자동차가 지나가면 피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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