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근로지원인 주객전도 악용 심각
취지 벗어나 주 업무 강요, 작업장 매출 담당?
장애특성 맞는 인력 배치, 부정수급 적극 대응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11-29
부산시 소재 중소제조업체 A회사는 근로지원인을 월평균 30명 정도 사용하는 발달장애인 중심의 표준사업장으로, 근로자 대부분 제조 라인에 투입된다. 그런데 장애인 근로자가 라벨 붙이기 등 부수적 업무를 수행할 뿐, 근로지원인이 제품 생산 등의 주 업무를 맡고 있다. 거기에 회사 측은 장애인을 퇴근시키고 근로지원인만 남겨 반복적으로 잔업을 시키기도 한다고.
근로지원인 B씨는“우리는 이중의 노동에 시달린다. 이 회사 정직원처럼 일해야 하고, 거기다 장애인 이용자를 도와주고 챙기는 일까지 해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증장애인 근로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해 마련된 근로지원인서비스가 시행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예산 부족으로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이 이용하지 못하는 피해는 물론, 사업 취지에서 벗어나 근로지원인이 오히려 근로자의 주 업무를 도맡아 해야 하는 ‘주객전도’ 행태가 심각한 것.
굿잡자립생활센터 등이 모인 UN CRPD 확산 공동사업 추진단은 29일 온라인을 통해 “UN CRPD 노동권에 기반한 근로지원인 사업의 발전방향 모색” 토론회를 열었다.
근로지원인 사업은 ‘중증장애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생활에서 장애인이 수행하는 직무 중 핵심 업무를 제외한 부수적인 업무를 근로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서비스다. 2006년 민간에서 시작된 이래 계속 발전해온 사업은 올해 기준 장애인근로자 약 1만5136명(추정)이 이용하고 있으며, 근로지원인도 1만4686명에 이른다.
서비스 영역은 장애유형, 정도, 욕구 등에 따라 각각 다르다. 특히 2019년부터 지원 대상에 발달장애인이 포함되며, 57.9%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 수행기관도 2021년 기준 145개소다.
▲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이상진 사무총장(사진 왼쪽)과 전국근로지원인서비스 수행기관 협의체 이순희 간사(오른쪽).ⓒ굿잡튜브 ■예산 없어 대기자 속출, 장애특성 미고려
그러나 현장에선 근로지원인서비스를 둘러싼 처우 개선과 예산확보 문제가 시급하다고 했다.
한국장애인복지관협회 이상진 사무총장은 근로지원인 처우 개선 문제와 수요를 고려한 예산확보 부분을 짚었다.
이 사무총장은 “근로지원인 근무 기간이 짧은 이유는 처우가 좋은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라면서 “처우 개선을 통해 일자리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안정적 수급과 서비스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교육콘텐츠 개발 등 교육의 질 향상도 함께 언급했다.
이와 더불어 ’예산‘ 문제도 함께 제기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근로지원인 사업 1년 예산이 2020년 948억원, 2021년 1552억원, 2022년 2047억으로 해마다 증가하지만, 예산 소진 속도가 빨라 대기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
이 사무총장은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근로지원인 서비스 대기 인원과 근로지원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라면서 “어렵게 취직했지만 대기자가 많아 퇴직을 고민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충분한 예산확보와 근로지원인 사업의 안정화를 통해 중증장애인에 대한 시의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근로지원인서비스 수행기관 협의체 이순희 간사는 근로지원인 서비스의 문제점으로 장애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문제를 꼬집었다. 2019년 발달장애인이 근로지원인 이용대상에 포함되면서 악용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
이 간사는 "근로자가 주직무를 하며 직접 부수적 업무를 지시하며 노동자성 인정받는 것이 목표인데 근로지원인을 쓰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부정수급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장애특성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발달장애인이 주직무를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직무직도원 역할을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강조했다.
서비스 수행기관 측면에서도 모든 서비스의 책임을 기관에 전가하는 점, 노동관계법을 감당하기 어려운 운영비 지원, 전산시스템 낙후로 인한 업무 과중 등을 짚었다.
■근로지원인은 작업장 매출 실적 담당?
희망을심는나무 사회적협동조합 배양희 사무국장은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발달장애인 근로자의 근로지원인 실태를 조명하며, 문제점을 제시했다.
배 국장에 따르면, 보호작업장에서 단순업무를 하는 발달장애인은 하루 7시간(주 35시간)일하며 월 최대 3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는데, 작업량을 늘리기 위해 근로지원인이 직접 생산일을 하는 현실이다. 근로지원인의 높은 이직률은 물론 역할에 대한 혼돈과 회의감까지 온다고.
배 국장은 “근로지원인서비스가 발달장애인의 업무 능력 향상과 경제적 자립을 위한 서비스가 아닌 단순히 작업장의 매출과 실적을 담당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라면서 “생산성이 낮은 장애인을 고용해서 경영이 힘들다는 이유로 근로지원인서비스가 보호작업장의 수익증대를 위한 노동력제공을 하게 된다면 근로지원인서비스의 본연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저임금적용 제외 작업장은 근로지원인 서비스가 아니라 발달장애인에게 직업적응훈련 및 직업훈련프로그램을 단단하게 제공할 수 있는 전문인력의 배치가 시급하다”고도 강조했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윤삼호 사무국장도 수행기관 입장에서 근로지원인이 발달장애인 근로자의 주 업무를 대신 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장애인 근로자와 근로지원인이 사업 취지에 맞게 업무를 수행하도록 부정수급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위탁기관이 모니터링하고 위반 시 공단이 제재를 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 사무국장은 “표준사업장의 경우 근로지원인 회사인 센터보다 파워가 훨씬 세다. 이 구조적 문제를 공단에서 잘 제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사실상 업체가 근로지원인을 선발해 두고 교육도 받지 않은 채 근무부터 하는 방식이어서 근로지원인의 소속감과 정체성이 매우 혼란한 상태이고, 이로 인해 자기직무,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성취감이 매우 낮은 상태”라고 설명하며, 근로지원인 “선교육 후배치” 계획의 철저한 준수를 주문했다.
한편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근로지원부 김의호 부장은 이 같은 현장에서의 지적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면서 방향성을 갖고 있으나 속도감이나 체감하는 부분이 충분히 만족감 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김 부장은 “2019년 이후 제도가 따라가기 어려울만큼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과도기적 상황”이라면서 “사업 목적과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순기능이 효과적으로 작용될 수 있도록 정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장애유형이 다양하다보니 사업에 대한 오해나 불만이 많이 생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합의나 소통의 장이 필요할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