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일 간의 휠챠녀 가족 해외여행 이야기
거리 확인 못해 좌충우돌 10시간 만에 도착한 LA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9-05
처음 계획을 짤 때는 내가 같이 번갈아 운전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이 날은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라스베이거스를 거쳐 LA로 가야 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그랜드캐니언에서 LA까지의 거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안은 게 실수였다.
쉬지 않고 렌터카로 달려도 장장 7시간30분을 가야 하는 거리였다. 아마도 하루종일 차에서 보내야 할지 몰랐다. 하루종일 운전할 남편은 한숨을 푹 쉬었고, 나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쨌든 그랜드캐니언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와 LA의 숙소를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어떻게 건물이나 가게, 심지어 주유소조차도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 있을까 싶은 길을 온종일 달리게 되었다. 보이는 것은 나무와 풀밭, 그리고 자동차도로뿐이었다. 설마 이런 길을 7시간30분 이상 가야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설마가 사람잡을 뻔했다. 정말 몇 시간을 달려도 아무것도 없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 때문에 내비게이션에 만만한 ‘맥OOO’를 검색해 보는 것 말고는 식당을 찾을 수도 없었다.
가던 길에서 빠져나와 가까운 맥OOO에 들러서 아침도 맥O겟, 점심도 맥O겟으로 때웠다. 미국의 햄버거는 너무 크고 짜고 입맛에 맞지 않아서 피치 못할 맥O겟 데이였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갑자기 둘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덩달아 첫째도 오줌이 마렵다고 했다. 처리할 시설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정말 난감했다.
급하다고 보채고 징징대는 애들을 어르고 달래서 20분쯤 달렸을 때, 겨우 조그만 가게를 하나 발견했다. 휠체어를 빼어야 하는 내가 내리기는 힘드니 남편에게 들어가서 어떻게든 해결하고 오라고 애들과 함께 보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애들이 막 깔깔거리며 남편과 돌아왔다. 그러면서 애들이 하는 말이 “엄마, 아빠가 베이비 쉬~ 베이비 쉬~~~ 했어~”라고 했다.
나는 정말 빵 터졌고, 남편은 “봐~ 영어 못해도 다 되지? 베이비 쉬 하니 다 알아듣더라~” 하며 머쓱해하다 으쓱거렸다. 너무 웃기기도 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게 해결하고 온 남편이 대견했다.
게다가 가다가 보니 기름이 거의 떨어져 갔지만, 주유소가 없어서 왔던 길을 다시 한참 돌아가서 기름을 넣고 오기도 했다. 모두가 힘들게 거의 10시간 만에 LA 시내에 도착했다. 저녁도 코리아타운에서 파는 통닭을 포장해 가서 숙소에서 먹을 생각이었다.
이런 여행의 우여곡절은 계속 이어졌다. 숙소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아뿔싸! 렌터카 뒷타이어가 터진 것이다.
자동차 정비소 몇 군데를 가 봤지만, 다 문을 닫은 후였다. 렌터카 영업소도 이미 문을 닫은 게 분명했다. 결국, 렌터카 영업소는 내일 가 보기로 하고, 모두가 지쳐서 숙소로 그냥 왔다.
사실 이날은 마흔이 되는 내 생일날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생일이 되었다. 온종일을 차에서 보낸 것도 그렇고, 아침, 점심, 저녁까지 입에서 닭 냄새가 나도록 닭고기만 먹은 것도 그랬다.
저녁거리를 사러 가는 길도, 숙소로 오는 길도 찾느라 헤맸을뿐더러 마지막에는 렌터카 타이어까지 터지는 것으로 마무리한 하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의 어록 '베이비 쉬~'는 나에게 그 어떤 유머보다 최고로 큰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숙소에 와서 통닭을 먹으며 생일 축하 노래 선물을 받고, 아이들이 전해 준, 삐뚤빼뚤 쓴 사랑의 쪽지는 내게 감동을 주었다.
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마흔 생일날, 여행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난 정말 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