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은 횡단보도 건너는 시간이 부족해요
‘15분 도시’ 안에 장애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부산시가 15분 내 일상생활이 가능한 생활권을 조성한다면서 ‘15분 도시’를 선포했다. ‘15분 도시’란 15분 이내에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에 접근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 시민의 행복 지수를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생활 편의시설을 근거리에 공급하고 시민의 일상과 스마트 기술을 접목해 삶의 질을 높이며 탄소중립 전환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도시환경을 바꾸어 나가는 15분 도시 부산을 조성할 것이라고 했다.
15분 도시(15-minute city)란 프랑스 소르본 대학의 카를로스 모레노 교수가 제안한 개념으로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범위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그 후 파리를 시작으로 세계의 각 도시가 너도나도 ‘15분 도시’를 주장하고 부산도 여기에 편승하고 있다. 그런데 ‘15분 도시’에는 장애인도 살고 있을까.
얼마 전 한 장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산진이나 부산역 부근은 8차선인데 횡단보도를 다 못 건너간다면서 방법을 좀 마련해 달란다. 아무리 애를 써 봐도 5차선에서 6차선 쯤 지나면 보행신호가 끝난다는 것이다. 필자가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글쎄요, 어떤 방법이 있는데요?”
“두 가지 방법이 있겠는데, 하나는 횡단보도의 보행자 신호 시간을 늘이는 것과 중간에 보행섬을 만드는 거예요.”
그 장애인은 어떤 방법이든지 해결을 좀 해달라고 했다. 이 문제로 평소 편의시설 관련으로 고민하는 장애인 전문가(?)에게 문의했다.
“육교를 설치하는 것은 어떨까요?”
필자로서는 육교는 반대다, 횡단보도에 금하나 그으면 될 일을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육교를 왜 설치해야 하는가 말이다.
십여 년 전 어느 구에서 경사로 육교를 처음 설치하면서 장애인을 위해서 7~8억을 들여 설치했다는 뉴스가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그 기사를 쓴 기자가 아무리 장애인복지에 무지하기로서니 경사로 육교가 장애인을 위해서 그 많은 돈을 들인 구청장을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는가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사로 육교를 가장 잘 이용하는 사람은 배달 오토바이다. 물론 현재는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도 있어서 경사로 육교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장애인도 있기는 하지만.
횡단보도의 보행 시간이 정해져 있느냐고 부산시 경찰청 관계자에게 문의했다. 보행 시간은 연동제로 운영된다고 했다. 횡단보도 보행자 신호 시간은 기본적으로 보행 진입시간 7초에 횡단보도 1m당 1초를 원칙으로 하는데, 예외적으로 어린이, 장애인 등 교통약자 이동이 많아 배려가 필요한 장소에는 더 긴 보행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산역 앞 횡단보도는 진입시간 7초 후에 30초 불이 들어오므로 횡단보도 길이가 30m쯤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가 아니고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은 30초 안에 30m쯤 되는 8차선 도로를 다 건너가지 못한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 시간을 더 늘려달라고 해야 하나?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하면 현재 서면 광무교에서 충무동까지 BRT 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BRT(Bus rapid transit)는 간선급행버스체계라고 되어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버스 중앙 차선이다. 서면 등 일부에서는 이미 BRT가 시행되고 있고 광무교에서 충무동까지 현재 공사 중이다.
BRT가 시행되면 횡단보도 사이에 보행섬이 생기기 때문이다. 자성대에서 충무동까지 중앙대로는 대체로 8차선이다. 이미 BRT가 시행되고 있는 서면에 가 보았더니 횡단보도에는 2차선마다 보행섬이 있어서 횡단보도 하나에 보행섬이 두 개씩이나 있었다.
8차선 횡당보도에서 보행자 신호 시간을 늘려달라는 장애인에게 BRT가 시행되면 보행섬이 만들어질 테니 그동안만 좀 양해하라고 했더니, 보행섬에는 의자도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2차선을 어렵게 건너 왔는데 차가 지나가는 몇 분 동안을 어떻게 멍하니 서서 기다리겠느냐고 한탄했다.
보행섬에 의자를 갖다 놓으라고?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보행섬에 의자를 갖다 놓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런데 부산시경의 또 다른 관계자는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에게 편리하라고 만들어 놓은 보행섬으로 인해서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보행섬이 생기니까 차선의 넓이가 짧아져서 무단횡단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교통법규는 법이자 제도이고 사회적 합의인데 편리하다고 만든 법이 또 다른 범법자를 양산하다니 안 될 말이다.
무단횡단은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교통사고는 100% 과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무단횡단으로 발생한 교통사고는 100% 보행자 과실로 처벌해야 한다. BRT 시행지역뿐 아니라 모든 도로에 무단횡단은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특히 새벽기도 다니는 어르신들이 무단횡단을 많이 하는 바람에 택시 기사들이 깜짝깜짝 놀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15분 도시’란 일상 생활권 내에 시민이 필요로 하는 체육·문화·편의시설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이 다 모여 있는 지역 공동체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부디 ‘15분 도시’ 안에 장애인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만에 하나 장애를 이유로 내세워서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무단횡단하는 사람은 단연코 없겠지만,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도 있으므로 누구든지 보행섬이 있다고 해서 무단횡단을 해서는 안 된다.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란 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다. 빨리빨리 그리고 자동차가 중심이 된 사회에서 이제 사람을 위한 도시로 거듭나기를 당부한다. 모두의 편의를 위해서 ‘15분 도시’도 생기고 BRT도 생기는데 행여 이를 악용해서 무단횡단으로 뛰어가다가 교통사고를 유발해서 장애인이 되는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