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디다 칼럼니스트】 "필라테스를 할 수 있을까요?" 척수손상 장애를 겪은 많은 분들이 가장 처음으로 꺼내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할 수 있습니다. 단, 시작점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척수손상의 정도와 시기, 현재의 신체 조건에 따라 맞춤형 접근이 필요합니다. 필라테스는 단순한 재활 운동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동작을 통해 몸을 안정적으로 조율하고, 삶의 리듬을 회복하는 방법입니다.

척수손상 장애인이 배리어프리 필라테스를 할 수 있나요? ©이디다
1. 척수손상 시기(연령)에 따라 접근이 달라야 합니다
척수손상을 겪은 시기와 연령에 따라 운동 접근법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이는 단순히 기능적 상태의 차이를 넘어서, 신체 인지, 생활 습관, 심리적 태도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성인기에 척수손상을 겪은 경우, 이전의 움직임 기억이 존재합니다. 운동할 때도 “예전엔 이렇게 움직였는데…” 하는 기준점이 있기 때문에, 변화된 몸에 대한 수용과 적응 과정이 심리적으로 더디거나, 자책감이 함께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근력 회복을 넘어서, ‘몸의 재구성’을 돕는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전의 몸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몸으로 새롭게 조율하고 적응하는 것. 이 과정에서 필라테스는 큰 도움이 됩니다. 호흡을 기반으로 한 필라테스 동작은 몸을 안전하게 인지하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탁월합니다.
아동기나 성장기에 척수손상을 겪은 경우, 상황은 다릅니다. 이들은 애초에 움직임의 기준점이 다르기 때문에, '기억에 있던 내 몸'이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오랜 기간동안 현재의 몸에 적응해왔고, 일상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신체의 불균형이나 근육의 과사용 문제, 그리고 심리적 위축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필라테스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신체의 균형과 자존감을 키우는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는 운동 회원을 ‘환자’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체육센터에서는 ‘운동하는 사람’입니다.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병원처럼 사고 경위나 손상 시점을 캐묻는다면, 그 순간부터 벽이 생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회원과 함께 알아간다’는 태도로,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몸과 삶을 이해해 나가야 합니다.
2.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범위를 명확히 하기
척수손상 회원이 운동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트랜스퍼(휠체어에서 운동기구로의 이동)를 혼자 할 수 있는지, 혼자 할 수 있다면 어떤 높이까지 가능한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정보는 단순한 동작 보조 차원을 넘어, 안전한 운동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핵심 데이터가 됩니다.
어떤 분들은 평소에는 스스로 트랜스퍼가 가능하지만, 피로도가 높은 날이나 공간의 구조가 익숙하지 않을 경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 상담 때는 단순히 “할 수 있어요”가 아니라, “어떨 때 가능하고, 어떨 때는 어려운지”를 구체적으로 나눠야 합니다. 그래야 강사도 적절한 준비와 지원을 할 수 있고, 운동 진행 중 예기치 못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역할과 필요를 명확히 알고 나면, 훨씬 자유롭고 편안한 운동 시간이 됩니다. 스스로를 잘 아는 것이야말로 안전의 첫걸음이자, 운동의 지속 가능성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3. 내 몸의 무게중심 파악하기
필라테스는 몸의 중심(Core) 을 다루는 운동입니다. 하지만 척수손상을 겪은 몸은 대개 좌우 비대칭, 상하 체중 분포의 변화, 감각의 차이 등으로 인해 중심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휠체어 생활을 오래 한 경우, 상체의 일부 근육이 과하게 발달해 있고, 반면 하체는 사용이 줄어들어 위축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중심이 흐트러진 상태에서는 작은 동작 하나도 피로감이 크고, 호흡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척수손상 장애인이 필라테스를 시작할 때는 반드시 몸의 무게중심을 다시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운동의 출발점을 설정하는 작업입니다. 예를 들어,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 양쪽에 체중을 얼마나 실을 수 있는지, 척추가 어느 정도로 세워질 수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보고, 그 위에서 호흡과 간단한 움직임을 연습합니다.
이 과정은 느리고 지루해 보일 수 있지만, 정확한 중심 인식이야말로 모든 움직임의 근간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체력 기르기’도 이 중심을 기반으로 해야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4. 트랜스퍼, 지지 방법 등은 운동 전에 강사와 충분히 소통할 것
운동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트랜스퍼 방법과 하체 지지 방법에 대해 강사와 충분히 이야기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단순히 강사가 도와주는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움직임 패턴을 공유하고, 예기치 못한 위험을 예방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회원은 휠체어에서 기구로 이동할 때 손의 지지 위치가 중요하고, 다른 회원은 고관절에 힘을 실어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처럼 개인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사가 회원의 이동 방식이나 지지 포인트를 모르고 보조하게 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동 전에 반드시, “나는 이렇게 옮겨요. 여기 손잡이가 있으면 좋아요. 이쪽 다리는 감각이 없어요.” 와 같은 상세한 정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동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협업입니다. 그 협업이 시작되는 첫 순간이 바로 이 대화입니다.
5. 몸의 균형 유지와 심리적 안정도 운동의 일부입니다
척수손상 장애인이 필라테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단순히 근력 향상이나 유연성 회복에만 있지 않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오히려 몸의 균형감과 심리적 안정감에서 나타납니다.
필라테스는 기본적으로 호흡과 함께 진행되는 운동입니다. 이 호흡은 단순히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몸에 집중하는 ‘내면화된 움직임’을 돕습니다. 특히 척수손상 장애인처럼 몸의 일부 감각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의식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신체 감각이 깨어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운동 중에는 “숨이 차지 않도록”, “몸의 느낌에 집중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운동의 강도를 낮추라는 의미가 아니라, 내 몸의 상태를 스스로 인지하고, 그날그날에 맞게 조절하는 능력을 기르자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스스로의 몸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고, 그것이 곧 삶의 안정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마치며
척수손상 장애인도 필라테스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출발점이 조금 다를 뿐, 목적지는 모두 같습니다. 자신의 몸을 더 잘 알고, 스스로 움직이며, 일상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 운동은 단지 땀을 흘리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다시 채워나가는 과정입니다.
지금의 몸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필라테스는 그 몸을 존중하고, 함께 걸어가는 운동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 호흡부터 다시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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