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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최국화. ⓒ최국화

앵커, 모델, 라디오 DJ, 강사… 최국화의 활동을 보고 사람들은 장애가 있어서 부족하다는 편견을 던져 버린다. 어떤 역할을 해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차분한 톤으로 안정감을 주는 프로다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활달한 그녀에게 스물여섯에 찾아온 불청객

사고 전 중국유학 중에. ⓒ최국화
사고 전 중국유학 중에. ⓒ최국화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를 돌아다 니는 여행가나 승무원이 되고 싶었던 최국화는 대학교에서 유아 교육과 호텔경영을 복수전공하고 졸업했다. 일을 하다가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25세에 중국 유학을 선택했다. 우선 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전공을 살려 한국학교의 저학년 교사로 일을 했다.

중국에서의 유학 생활을 이어 가던 2006년 12월 27일. 그날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서게 되었다. 급한 마음에 계단을 두 칸 세 칸 뛰어 내려갔고 그러다 그만 계단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아픈 허리를 매만지며 일어나려 했지만 두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뒤 의식을 잃게 되었고, 며칠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중국에서 수술을 받고 한국으로 귀국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중국에서 다쳤기 때문에 누운 상태로 한국 병원으로 이송을 해야 해서 한국 병원에서 발급하는 의사 소견서와 안전상의 문제를 책임져 줄 보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사고 두 달 만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고였고, 수술을 두 번이나 했으니 당연히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와 달리 두 다리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다. 2007년, 허망하게도 허리 부분의 척수 손상으로 인해 하반신마비장애 판정을 받았다.

처음엔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일어서려고 다리에 힘을 줘 보았지만 다리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하반신이 마비되니 배변 기능도 조절이 힘들어졌다.

갑자기 생활하는 방식이 바뀌니까 막막했다. ‘내가 꿈을 꿀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무서워서 한동안 밖에 나오질 못했다. 비장애인일 때 장애인을 바라보던 시선이 모두 비수가 돼 돌아왔다. 그 전엔 장애인들을 불쌍한 대상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9년 마지막으로 입원했던 국립재활원에서 주치의 선생님이 국립재활원에서 장애인 관련 교육 사업을 시작하는데 함께하지 않겠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퇴원하기도 전에 장애 인식개선 교육, 안전사고 예방 교육에 참여하였다.

“사실 처음 강사 일을 다시 시작할 땐 두려웠어요. 제 눈높이가 낮아져 사람을 쳐다보는 게 무서웠고, 무슨 말을 들어도 다 상처로 다가왔어요. 시간이 지나자 하길 잘했다 싶었어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그 이후에도 계속 망설였을 것이고 사회 복귀도 늦어졌을 테니까요. 돈을 벌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쓰일 수 있는 곳에서 쓰임 받고 싶단 생각뿐이었어요.”

인생을 리셋하며

사고 후 패션화보 촬영 중에. ⓒ최국화
사고 후 패션화보 촬영 중에. ⓒ최국화

장애인이 되었어도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기에 그녀는 공부를 시작했다. 장애와 관련된 강연은 무조건 찾아가고, 관련 책을 사서 읽었다. 10년 만에 다시 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학업을 이어갔다. 2021년도에는 대구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애학 수업을 수강하러 토요일마다 대구까지 갔다.

“강사 시절 초반에 유치원생 교육을 간 적이 있어요. 아이는 성인과 달리 속마음을 숨기지 않아서 제가 상처받을까 걱정을 많이 했죠. 우려 속에서 교육을 마쳤는데 한 아이가 따라 나오더니 저를 만나 행복하다며 다음에 또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다는 거예요. 제가 갖고 있던 선입견을 떨치는 계기가 되면서 이 일의 사명감이 무엇인지 처음 느꼈어요. 이것이 제가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유예요.”

국립재활원에서 처음 시작한 장애 인식개선 교육 강사 활동이 지금은 국가인권위원회, 한국 장애인고용공단, 한국장애인개발원 등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꾸준히 섭외가 들어오는 인기 강사가 되었다. 지금은 후배 강사들을 양성하는 지도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열여덟 어른(만 18세로 보육원에서 퇴소해 홀로 생계를 꾸리는 보호종료 아동)’ 대상 강연 요청이 왔어요. 연애와 사랑에 대한 내용도 부탁하셔서 속으로 놀랐어요. 장애인들은 무성의 존재로 취급 받거나 연애 시장에서 번외로 분류되기도 하거든요. 저도 누군가 날 이성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자리했었구요. 연애 강연은 색다르고 좋은 경험이었어요.”

그의 커리어는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2012년엔 복지TV의 여행프로그램 MC로 활동했다. 한국관광공사와 협업해 배리어프리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행 프로그램을 찍을 땐 전국 곳곳을 휠체어로 다녀야 했는데, 도저히 휠체어로 접근이 안 되는 곳은 PD등에 업혀서 이동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여행지의 현실을 소개했다.

2014년 4월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프로야구단 기아 타이거즈가 주최한 행사에서 시타자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주위의 지인들이 틈날 때마다 앵커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추천했다. 그런 응원을 듣다 보니 ‘나도 할 수 있나?’ 싶어 조용히 앵커 응모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고 2021년 KBS 장애인앵커 모집에 지원했다. 장애인앵커는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걸 보여 주는 자리인데 그동안 그녀가 해 온 활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합격을 했다.

KBS앵커로 더 넓은 세상을

kbs 9시뉴스 진행. ⓒ최국화
kbs 9시뉴스 진행. ⓒ최국화

2021년 3월 많은 언론에서 KBS 제6기 장애인앵커 최국화 선발을 알리면서 앞으로 <KBS 뉴스12>의 ‘생활뉴스’ 코너를 맡아 진행하게 된다는 것을 알렸고,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 앵커의 방송 영역을 넓혀 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KBS 장애인앵커 선발제도는 공영방송으로서 차별과 편견 없는 사회를 목표로 지난 2011년 한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당시 시각장애인 이창훈 앵커가 1기로 활약했고, 이후 2기 홍서윤, 3기 임세은, 4기 이석현, 5기 임현우 앵커가 뒤를 이었다.

최국화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변화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뉴스’를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스튜디오를 벗어나 직접 현장 취재를 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 는 의욕을 보였었다.

그녀는 5분 남짓의 생방송 뉴스를 위해 앵커 멘트를 하루에 수십 번씩 써 보고, 자신이 한 뉴스 방송을 100번 이상 반복해서 보면서 자기 방송에 스스로 모니터했다. 오전 6시 방송 첫 뉴스부터 자정뉴스까지 뉴스란 뉴스는 빠짐없이 챙겨 볼 정도로 방송을 철저히 준비하며 실력을 쌓아 갔다.

최국화는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처럼 2020도쿄패럴림픽 뉴스를 취재하여 전한 국내 최초의 장애인앵커이다. 코로나19로 1년 후인 2021년 8월 24일에 2020도쿄패럴림픽 개막부터 폐막까지 그녀는 출전 선수 못지않은 주목을 받았다. KBS 메인 뉴스인 ‘뉴스9’에서 패럴림픽 소식을 전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앵커에게 관심을 보였다.

선수들에게 패럴림픽이 꿈의 무대이듯 그녀에게도 9시 뉴스가 꿈이었다. 장애인앵커로서 잘해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컸다. 실제로 TV를 통해 그녀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됐다는 시청자 후기가 줄을 이었다.

“2022년 3월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취재를 다녀왔어요. 강원도 강릉, 횡성 등 훈련 장소를 돌면서 선수들과 인터뷰했는데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영하 25℃의 추운 날씨에 강행군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수들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저도 다시 도전 정신을 충전시킬 수 있었지요.”

하계와 동계장애인올림픽 모두 최국화가 취재를 하며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로서는 큰 행운이었다. KBS 앵커로 넓은 세상을 경험하며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가족과 주변의 지지가 필요해

서울관광재단 촬영. ⓒ최국화
서울관광재단 촬영. ⓒ최국화

두 살 아래 동생은 최국화가 사고를 당한 후 언니를 위해 헌신한 그녀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대기업에 다니던 동생은 언니 간병을 위해 회사도 그만두고 언니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다. 동생은 망설이는 언니에게 ‘일단 해 봐. 우리 해 보자!’라고 항상 힘을 북돋아 주었다. 동생 말을 듣고 나면 ‘장애 까짓것 뭐라고!’ 하면서 강해질 수 있었다.

“어머니 소원이 장애를 가진 딸이 남에게 무시당하고 살지 않을 만큼 돈을 벌어다 주는 거였어요. 자식이 장애를 가지면 부모는 죄인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 요. 동네 모임을 하다가도 제가 뉴스 할 시간이 되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드신대요. 본방 사수하려구요. 딸이 방송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주변의 지지가 없으면 활동이 가능한데도 시설로 보내지는 장애인을 보면서 최국화는 장애인복지가 장애인의 자립 생활에 맞춰 세밀하게 짜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가 나고 처음 입원했던 병원에서 낙심해하고 있는 제게 좋은 말을 많이 해 주던 같은 병실 언니가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전해 들었어요. 환경이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죠.”

도전하기 위한 계획

행사와 광고 촬영. ⓒ최국화
행사와 광고 촬영. ⓒ최국화

2023년 3월, 최국화는 2년 임기의 앵커 일을 마무리하였다. 그녀는 아쉬움을 느끼기보단 미래에 대한 계획에 열중했다. 우선 1기 앰배서더로 활동하는 삼성물산 유니버설 브랜드 ‘하티스트(HEARTIST)’의 의복 디자인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2020년 4월 론칭한 하티스트는 휠체어 장애인도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의류를 선보이는 곳이다.

현재 KBS 1라디오 <함께하는 세상>의 고정코너 ‘최국화의 휠체어 전국일주’에서 배리어프리 관광지를 소개하고 있고, KBS 3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토요일 ‘장애청년 DJ쇼’에서 대본, 음악선곡, 진행 등을 직접하고 있다. 그 밖에도 서울관광재단 모델과 아나운서 활동을 하고, BTS가 속한 하이브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안내판의 중국어 번역을 BTS의 ‘아미’이기에 재능 기부로 해 주는 등 번역 일도 할수 있다.

현재 여동생과 함께 ‘오 마이(ohmy) 국화’라는 유튜브 방송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장애인 인식개선을 목적으로 장애가 아무 렇지 않게 느껴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지만 자주 장애인 콜택시와 지하철을 이용한다. 저상버스도 가끔 타 본다. 외출 전에는 항상 내비게이션 거리뷰(도로의 풍경을 보여 주는 서비스)로 동선을 짜면서 길이 울퉁불퉁한지, 경사로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장애인 화장실이나 주차장 여부도 체크해야 한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휠체어가 턱에 걸리는 바람에 휠체어에서 떨어져 대퇴부 골절로 한동안 고생을 하였다. 이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더욱 꼼꼼히 배리어프리 편의시설을 살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최국화는 앵커 경력과 유아교육 전공을 바탕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TV 프로그램 진행을 꿈꾸고 있다.

영국 BBC방송 어린이 프로그램에 새 진행자로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없는 쎄리 버넬이 발탁됐었다. 버넬은 의수를 사용하지도 않고 옷으로 팔을 가리지도 않고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짧은 오른쪽 팔이 눈에 확 들어왔다. 처음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아주 따가웠다. 아이들이 악몽을 꾸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둥 버넬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는 둥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들의 생각이었다. 어린이들은 처음에는 버넬의 팔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었는데 곧 평상시처럼 프로그램을 즐겼다.

이런 일이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아마도 어린이 프로그램 장애인 MC 그 첫번째 주인공은 최국화가 될 것이다. 그에게는 실력과 함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도전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최국화

2024~현재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사 2024~현재 KBS 1라디오(고정출연), KBS 3라디오(DJ) 2021~2023 KBS 보도국 앵커 2021~2023 서울관광재단 광고모델 2020~현재 삼성물산 패션 부문 ‘하티스트’ 앰배서더 2009~현재 국립재활원 장애 인식개선 교육 강사 대표 2018~현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장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강사 2018~현재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 인식개선 교육 지도강사, 자문위원 2018~현재 한국장애인재단 장애 인식개선 교육 지도강사 2016~202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강사 2014 보건복지부 장애인연금 홍보모델 2014 연세대학교 재활스포츠 장애인운동 홍보영상 모델 2014 기아자동차 ‘초록여행’ 아나운서 2013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성폭력예방교육 강사 수료 2013 대한장애인체육회 패럴림픽 메달리스트 강사양성 교육 지도강사 2013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 QoLT그룹 자문위원 2011 한국관광공사 ‘barrier-free’ 홍보모델 2013 문화재청 관광영상 MC 2012~2013 복지TV 아나운서.

2009 국립재활원 우수강사 표창 2013 국립재활원장 우수강사 표창 2013 보건복지부 장관 ‘자랑스러운 활동가상’ 표창 2014 국립재활원 모범 강사 표창 2016 표창원 국회의원 표창 2017 경기도의회 의장 표창 2018 행정안전부 운영기관 성과대회 우수상 2022 KBS ‘이달의 보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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