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한 사람이 세상과 작별할 때,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 

많은 이들이 작별하는 과정에서 "사는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참 감사했습니다" 라는 말을 전하곤 한다. 그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든 없든 우리 사회가 움직이고 발전하는데 기여한 어른에 대한 예의를 담아서. 

사람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경우도 없고, 받기만 하는 경우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는 과연 '발달장애인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는가?'  그들을 세상에 기여하는 존재로 바라보고 그들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는지. 한 명의 발달장애인이 세상을 등질 때 그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수고했음을 인정하는 인사를 제대로 전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는가? ©픽사베이
우리는 발달장애인의 기여를 인정하고 있는가? ©픽사베이

발달장애인의 죽음준비를 위해 지원자, 부모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은 '당사자들이 세상과 작별할 때 그들의 수고와 기여를 인정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하자' 는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사는 동안 발휘했던 혹은 내재되어 있던 강점과 재능을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우리는 그들 덕에 쉬운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우리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들을 짊어지고 살며, 다수의 편의만 고려하는 불공정한 세상에 살고 있는 지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기여한 바가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화분을 잘 키우는 당사자에게 화분관리 노하우를 전수받고, 순수하고 맑은 시를 쓰는 당사자에게 글쓰는 마음을 배운다. 당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평소 내가 얼마나 불필요한 전문용어를 남발했는지 반성하며 쉽고 일상적 용어를 쓰려 노력한다. 이것만으로도 그들은 내게 기여한 바가 큰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중들은 그들이 어떤 '사람' 인지를 알려하기 보다 '발달장애인' 이라는 프레임에 가둔 채 그들의 강점과 기여를 보지 못한다. 

얼마 전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와 '기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중, "우리 아들이 할머니한테 꼬박꼬박 연락하라고 재촉하는 바람에 제가 좋은 며느리 된거잖아요."

"제가 우리 아들이랑 대화하면서 쉬운말로 표현하기, 상대방 말 끝까지 들어주기 달인이 됐어요. 이거 다 우리 아이가 저를 그렇게 만들어준거예요." 

아들 덕에 둥근 사람이 된 어머니의 이야기는 듣는 우리를 미소짓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당사자를 다시 보게끔 만들었다. 관계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가 자녀에게 일방적인 돌봄과 사랑을 쏟아붓는 것 같아도, 자녀 또한 어머니를 돌보고 성장시켜주는 게 관계의 속성이다. 

그들이 생의 마지막에 보통의 어른들처럼 "사는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라는 말을 듣고 떠날 수 있게 해주자. 이미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기여하고 있다. 우리가 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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