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2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 1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 ©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 백민 기자】 “다이어트 약 중독 문제가 있다며 스스로 병원을 찾아 치료를 위해 입원한 아이입니다. 전문의가 있는 병원이라면 아이를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병원은 고통의 외침을 외면하고 생명을 빼앗아 갔습니다.”
부천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이 발생한 지 1년. 피해자 박 모 씨를 기리기 위한 추모제가 2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유가족과 정신장애인 및 정신질환자 단체, 정신질환자 가족 단체 등 많은 이들이 참여해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했으나 격리·강박된 채 사망한 고인을 추모하고 기억했다.
또한 여전히 지지부진한 정부의 후속조치와 미온적인 수사를 규탄하며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함께 싸우고 연대하겠다고 마음을 모았다.

W진병원에서 격리·강박된 모습이 담긴 피켓. ©에이블뉴스
지난 2024년 5월 27일 부천 W진병원에서 다이어트 약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한 30대 여성 박 모 씨는 입원 후 17일 만에 숨졌다. 사건 당시 피해자는 복통을 호소하며 배가 심하게 부풀었으나 병원에서는 당사자에게 진정제를 먹이고 결박했다.
병원 측은 뒤늦게 응급조치를 했으나 당사자는 결국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가성 장폐색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후 유가족들은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이하 한정연)는 정신장애 연대단체와 연대해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진행하는 등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는 2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 1주기 추모제’를 진행했다. ©에이블뉴스
하지만 한정연은 보건복지부와 경찰 모두 제대로 된 후속조치와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규탄했다.
부천 원미경찰서에서는 대한의사협회에 의뢰한 감정 결과가 아직 오지 않았다며 수사를 중단한 바 있다. 이에 당사자 단체에서는 수사 중단을 규탄하고 즉각 수사를 재개할 것을 요구했고, 그제야 경기남부경찰청에서 사건을 이첩 받고 형사기동대에서 수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보건복지부 또한 사건이 발생한지 약 1년이 지난 이달 초에서야 대해 W진병원이 인증 요건을 지키고 있는지 조사에 나섰다.
이처럼 피해자가 사망한지 1년이 지났음에도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와 법적 처벌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한정연은 토로했다. 수사가 미뤄지는 동안 피해자 유가족은 슬픔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W진병원은 유가족에게 어떤 사과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운영되고 있고 있다는 것.

2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 1주기 추모제’에서 추모하는 모습©에이블뉴스
박 모 씨의 어머니는 “저는 1년 전 딸을 병원에 보냈다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만든 엄마입니다”라고 자책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딸은 누구보다 따뜻했던 아이입니다. 미국 뉴욕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공부를 이어가던 딸입니다. 정신질환과 중독 문제에 깊은 이해와 사명을 가지고 누군가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했던 아이입니다. 딸아이는 자신의 다이어트 약 중독이 문제가 된다고 스스로 판단해서 병원을 찾았고 치료를 받으러 간다는 말만 믿고 병원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단 17일 만에 딸을 싸늘한 죽음으로 돌려받았습니다. 병원은 딸이 아무리 배가 아프다고 외쳐도 이를 무시한채 아이를 묶고 가둬 사망하게 했습니다. 제 딸은 병원이라는 이름의 감옥 안에서 가장 외롭고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딸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매일 딸에게 ‘잘 있었니?’, ‘오늘은 춥지 않았니?’라며 말을 건넵니다. 오늘은 아이에게 약속을 했습니다. 끝까지 진실을 밝히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진단 없이 약물과 감금으로 생명을 다루는 그 병원과 이 사회가 옳은 것입니까. 딸의 억울함 죽음을 기억해주시고 함께 목소리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7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4번 출구 앞에서 열린 ‘W진병원 격리·강박 사망사건 1주기 추모제’에서 발언하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위은솔 센터장. ©에이블뉴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위은솔 센터장은 “먹먹한 마음을 참을 수 없다. 어머니께서 오늘 딸에게 약속을 했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희 모두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고 책임자가 반드시 처벌받을 수 있도록 목소리 내는 것을 멈추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민주 센터장은 “1년이 지났다. 일상을 흘러가고 계절은 제 몫을 다한다. 봄이 다가와 사람들은 따뜻한 날씨를 이야기하고 주말에 산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봄이 모두에게 찾아오진 않는다. 봄이 오지 않는 이들이 있다. 봄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계절은,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고 배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죽음은 언론의 조명을 받고 사회적 격노를 일으키는 반면 어떤 죽음은 병실의 침묵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어떤 사람의 외침은 사회적 제도가 되지만 어떤 외침은 허공에 흩어져 버린다”고 토로했다.
마지막으로 “현실의 죽음은 평등하지 않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우리는 책임이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한다. 격리·강박을 막고 정신질환과 장애를 이유로 누군가의 고통이 의심받고 존엄이 배제되는 현실을 끝내야 한다. 이제 다시는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우리의 외침에 내일을 바꾸는 힘이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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