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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동 사전투표소 사직동행정복지센터. ©에이블뉴스

【에이블뉴스 백민 기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9일.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전투표소인 사직동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한 발달장애인들은 투표보조를 거부당한 채 투표소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투표소 앞에서 투표보조가 필요하다고 사직동행정복지센터 담당자인 사전투표관리관에게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기표용구시험용지’와 ‘손 떨림 혹은 손의 소근육 장애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들과 동행한 한국피플퍼스트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이하 장추련)의 활동가들은 “이것은 발달장애와 관련이 없는 신체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발달장애인들은 발달장애로 인한 투표보조가 필요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투표용지 규격과도 너무도 다른 기표용구시험용지로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장애여부를 판단하려는 것인지 물었다.

사전투표관리관은 매뉴얼을 보며 “발달장애만으로는 투표보조를 지원할 수 없기에 신체장애에 다시 한 번 여쭤본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사전투표관리관이 제공한 기표용구시험용지. ©에이블뉴스

이날 한국피플퍼스트와 장추련이 발달장애인과 동행해 사직동 사전투표소에서 투표를 할 것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도 알고 있어 전날인 28일 중앙선관위로부터 연락까지 온 상황이었다.

장추련 이승헌 사무국장은 “중앙선관위에서 전화가 왔다. 물론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위해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지원해야 할지 물으려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전투표소에서 소란을 피우면 문제가 되니 주의하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동행한 활동가들은 “중앙선관위가 발달장애인이 사전투표에 참여할 것을 인지하고 있으니 사직동 사전투표소에서는 발달장애인분들이 무난하게 투표보조를 받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혹시 중앙선관위와 소통이 되지 않은 것이 아닌지 생각한 사람들은 사전투표관리관에게 선관위 관계자와 이야기 할 수 있는지 물었으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관위 관계자도 사전투표관리관과 마찬가지로 매뉴얼을 보며 손 떨림이나 손의 소근육 장애가 있는지 물을 뿐이었다.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피켓을 들고 있는 활동가들. ©에이블뉴스

결국 ‘발달장애’만으로는 투표보조를 거부당한 것. 7명 중 5명의 발달장애인은 “너무너무 기분이 나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냐.”라고 속상해하며 투표를 포기했다.

투표보조를 지원 받은 것은 손 떨림이 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단 한 사람뿐이었다.

사전투표소에서 발달장애인들의 투표보조를 거부한 것은 현재 공직선거법상 시각 및 신체장애로 인해 기표행위가 어려울 때만 투표보조 동반을 허용하고 있고,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는 2018년까지 지원받을 수 있었지만 중앙선관위가 2020년 지침을 삭제해 버려 신체·시각장애를 동반한 중복발달장애인이 아닌 경우 투표보조를 지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공직선거에서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2024년 10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선거 또는 국민투표에서 발달장애인들에게 발달장애인의 가족 또는 그들이 지명하는 2명에 의해 투표 보조를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한 관련 매뉴얼에서 투표 보조를 허용하는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기표를 할 수 없는 선거인에 발달장애인으로 인해 투표 보조가 필요한 선거인도 포함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중앙선관위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으며,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9일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진행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박지은 씨.
29일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 진행된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피플퍼스트 성북센터 박지은 씨. ©에이블뉴스

발달장애 당사자 박지은 씨는 혼자 도전해보겠다면서 투표소로 들어갔다. 투표를 마치고 사전투표소 밖 동료들에게 돌아온 박지은 씨는 ‘투표 잘 하고 왔니’라는 질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투표소에 혼자 들어가 불안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무서웠다는 것.

그녀는 사전투표 전 발달장애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낯선 환경에 있으면 어렵고 불안하다. 재촉하면 무섭기도 하다. 딱 한번 투표를 한 적이 있는데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말한 바 있어 주변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투표보조를 거부당해 투표를 포기한 박연지 씨는 “너무나 기분이 나쁘고 내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우리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책자만 보고 매뉴얼을 읊는 것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고 토로했다.

마찬가지로 투표를 하지 않은 김기백 씨는 “투표하러 갔는데 입구부터 막은 것도 처음이고 기표용구시험용지를 내미는 것이 나를 시험하려는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면서 “내일 그리고 본투표일까지 투표보조를 계속 요청할 예정이다. 계속 거부당한다면 투표에 참여할지 안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밝혔다.

한국피플퍼스트 관계자는 “이렇게 전면적으로 투표보조를 거부당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많이 당혹스럽다. 많은 취재진분들이 오셨는데 오늘 이 이야기가 공론화되고 널리 알려서 앞으로 있을 대선 투표에서 발달장애인분들이 거부당하고 차별당하지 않고 투표보조를 받고 투표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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