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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5일 충청북도 청주장애인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제41회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네일아트(중증) 직종에 참가한 선수가 네일아트 꾸미기에 열중하고 있다.ⓒ한국장애인고용공단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장애인 기능인들의 축제 ‘제42회 강원특별자치도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가 오는 16일부터 19일까지 강원 강릉시에서 열린다.

고용노동부와 강원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총 40개 직종, 465명의 참가자가 출전한다.

직종은 전산응용기계제도(CAD), CNC선반 등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직업기능인 정규직종 19개 직종와 3D프린팅 등의 시범직종 12개, e-스포츠 등 레저 및 생활 기술경기 9개 직종 등으로 나뉜다. 대회에 나서는 이색 도전자 4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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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기능경기대회 바리스타 직종에 나서는 주대섭씨.ⓒ한국장애인고용공단


“암도 장애도 커피 앞에선 멈췄다”

항암 치료와 장애, 그 끝에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찾은 사람이 있다. 바리스타 주대섭(남·55)씨는 구인두암과 지체장애라는 이중의 시련 속에서 커피를 만나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 최근 2025년 강원도장애인기능경기대회 바리스타 부문 금상을 받은 그는 이제 더 큰 무대인 전국대회를 앞두고 있다.

“처음엔 절망의 시간이 계속됐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제 인생을 바꿔놨어요.” 2년 전, 암 진단과 치료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던 중 우연히 본 현수막 하나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장애인 바리스타 훈련과정 수강생 모집’. 망설이던 그는 마지막 한자리에 간신히 이름을 올렸고, 수업을 들으며 자신도 몰랐던 열정을 발견했다.

“커피머신 앞에만 서면 손이 떨리고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매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커피가 기다려지고, 더 배우고 싶어졌죠. 그때 처음 알았어요. 장애는 한계가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걸.” 그의 회복은 의료진도 놀라워할 정도였다. 커피는 그에게 최고의 항암제였다.

그는 바리스타 선생님의 권유로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다. 처음엔 극구 사양했지만 “해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나선 지역대회에서 예상치 못한 금상을 받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더 깊이 공부하게 됐고, 기술로 평가받는다는 게 정말 기분 좋았어요. ‘장애인치고 잘했네’가 아니라 ‘기술로 잘했네’라는 말을 듣고 싶었거든요.”

좋아하는 커피를 배운 것에 만족하지 않고 바리스타로서의 삶을 희망하며 나아가는 그의 꿈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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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밍 부문 김영석 씨.ⓒ한국장애인고용공단


“20년 조현병 암흑, 이제는 컴퓨터 코드로 세상과 연결됩니다”

“늘 무기력하게 흘러가던 하루였는데, 이제는 제 손으로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처음으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정신장애 판정을 받고 20년 가까이 조현병을 앓아온 김영석(남·39) 씨는 2025년 경기도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안정적인 직업생활을 꾸준히 이어가기 어려워 기초 수급비 외에는 별다른 수입이 없던 그에게 이번 수상은 단순한 경력을 넘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경기도 일산직업능력개발원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받으면서 작은 성취를 쌓아가는 경험은 큰 자극이 되었다.

금상을 수상하자 주변 반응도 달라졌다. 특히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 친구들은 “조현병을 앓으면서도 무언가를 배워서 금상을 탔다는 건 꾸준함과 성실함의 결과”라며 그의 노력을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서 대회에 나간다는 말도 못 했는데 막상 결과가 나오니 따뜻한 격려가 이어졌다.

부모님 역시 아들이 집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던 시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번 수상을 누구보다도 기쁘게 받아들였다. “금상을 타고 나서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셨어요. 저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죠.”

그는 이번 경험이 자신뿐 아니라 다른 조현병 환자나 정신장애인들에게도 희망이 되길 바라고 있다. 아직 사회는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차별적인 시선도 많지만 김 씨는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대회 수상을 목표로 하는 그는 장기적으로는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일자리를 찾아 자립을 실현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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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시간을 지나 워드프로세서 삶을 다시 쓰다”

2025년 대구장애인기능경기대회 워드프로세서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준영(남·31) 씨는 뇌병변 중증장애인이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고모 부부 집에서 성장한 그는 초·중·고를 모두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20살이 되면서 본격적인 재활 치료를 시작했지만, 병원의 치료 방식이 맞지 않아 경산장애인복지관을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처음 컴퓨터와 워드프로세서를 접했다. 이후 컴퓨터활용능력시험, ITQ 등 각종 자격증 시험과 대회에 도전하면서 기술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웠다. 하지만 22살 자신을 엄마처럼 돌봐주던 고모가 세상을 떠났고 낙심한 그는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인생의 전환점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 모 씨를 만나면서 시작됐다. 중증장애인이지만 활발히 대회에 참가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던 이 씨는 준영 씨의 집에 직접 찾아와 야외활동을 권하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거울을 봤는데 너무 말라 있고 볼품없었어요. 이 모습을 고모님이 보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더라고요. 그날 이후로 고모부와 일부러 밖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재 낮에는 일자리 사업을 통해 장애인 주차단속 업무를 하고, 근무 후에는 복지관에서 재활운동과 컴퓨터 연습을 병행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전국대회 우승과 함께 컴퓨터를 활용한 직업을 목표로 기술을 연마하겠다는 그는 “기술은 나를 세상에 설명하는 또 다른 언어”라며, “앞으로 도전을 계속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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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제빵 부문 김예진씨.ⓒ한국장애인고용공단



“빵이 부풀 때마다 제 꿈도 함께 부풀어요”

“계량하고 반죽하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차분하고 즐거운 순간이에요. 빵이 부풀어 오를 때마다 제 꿈도 함께 부풀어요.”

지적장애를 가진 김예진(여·18)양은 2025년 충남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서 제과제빵 부문에 도전한 후, 충청남도 대표가 되어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앞두고 있다.

김 양의 진로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한 편의 베이킹 유튜브 영상이 계기가 됐다. “밀가루가 마들렌으로 바뀌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건 마법이라고 생각했죠.”

성격상 호기심은 많지만 쉽게 싫증을 내던 김 양은 유년 시절, 목회자인 아버지 덕분에 홈스쿨링으로 다양한 활동을 접하며 손기술을 익혔다. 그중에서도 베이킹은 달랐다. 반복되는 공정 속에서 안정감을 느꼈고, 조용하고 섬세한 과정이 자신의 리듬과 잘 맞았다.

이후 김 양은 제과제빵을 전문으로 배우는 특성화 특수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다. 그리고 학교의 권유로 처음 기능경기대회 참가를 고민하게 됐다. 고등학생이 성인과 겨루는 현실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이 서자 기숙사에 돌아와서도 밤늦게까지 케이크 사진을 찾아보고 관련 영상을 보며 자신을 다그쳤다.

결과 발표 후 학교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기능대회 참가자들을 위해 레드카펫을 준비했고, 전교생은 박수로 맞아주었다.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한 그녀는 이제 더 큰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전국장애인기능경기대회를 통해 자신의 꿈이 더 크게 부풀어 오르길 기대하며 김예진 양은 오늘도 빵을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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