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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장애등록’은 단순히 신분을 구분하는 절차가 아니다. 이는 개인이 국가로부터 어떠한 권리를 인정받고, 어떤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문이다. 장애등록 여부에 따라 장애연금, 각종 수당, 활동지원서비스, 교통·교육·고용 등 다방면의 권리가 달라진다. 따라서 장애등록 심사가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야되며 이것은 장애인의 삶에 직결되는 문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다. 왜 이 중요한 업무를 보건복지부나 보건소가 아니라, 연금을 다루는 기관인 국민연금공단이 맡고 있는가?

과거의 문제: 의사의 개인적 판단과 해석 중심의 장애등록

과거에는 장애등록 업무가 보건소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신청자가 의사의 진단서를 제출하면, 이를 행정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등급을 판정했다. 절차는 단순했으나 문제는 명확했다.

첫째, 일관성 부족이다.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신청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랐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서는 2급으로 판정된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는 3급으로 판정되기도 했다. 의사의 개인적 판단과 보건소의 해석이 다르다 보니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못한 것이다.

둘째, 부정 등록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에서는 허술한 심사 과정을 악용해 거짓으로 장애등록을 시도하거나, 실제 장애 정도보다 과장된 서류를 제출하는 사례가 있었다. 국가 재정은 한정돼 있는데, 잘못된 등록으로 인해 필요한 이들이 제때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셋째, 전문성의 한계다. 장애의학적 평가를 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전문의가 아닌 단순 행정처리로 장애 진단이 이루어지면서, 장애인의 복잡한 의학적 상태와 생활상의 어려움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정부는 장애등록 심사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높일 방안을 모색했고, 그 결과 국민연금공단으로의 이관이 추진되었다.

국민연금공단으로의 이관 배경

국민연금공단이 장애등록 심사를 맡게 된 것은 2011년부터다. 이후 단계적으로 확대되어 2013년부터는 전국적으로 공단이 장애심사를 전담하게 되었다. 왜 하필 국민연금공단이었을까?

첫째, 기존의 장애연금 심사 경험이 있었다. 국민연금공단은 이미 장애연금 지급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장애심사센터와 의료자문위원단을 운영해왔다. 수많은 의학적 자료를 검토하고, 전문의 의견을 수렴해 심사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관을 만들기보다 기존 역량을 가진 기관을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둘째, 전국 단위 조직망과 전산 시스템이 있었다. 공단은 전국 지사를 갖추고 있어, 어디서 신청하든 동일한 기준과 절차를 적용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보건소 심사에서 지적된 ‘지역 편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장점이었다.

셋째, 행정 효율성이다. 장애등록과 장애연금은 긴밀히 연결된다. 장애등록을 통해 일정 등급이 인정되어야만 장애연금 수급 자격도 생긴다. 따라서 두 절차를 한 기관에서 처리하면 중복 행정을 줄이고 국민 입장에서도 절차가 단순해진다.

결국 국민연금공단이 맡게 된 배경은 전문성, 전국적 통일성, 행정 효율성이라는 세 가지 이유로 요약할 수 있다.

‘장애인 눈물 외면하는 장애등록 절차 개선하라’ 손피켓을 든 모습. ⓒ에이블뉴스DB
‘장애인 눈물 외면하는 장애등록 절차 개선하라’ 손피켓을 든 모습. ⓒ에이블뉴스DB

현행 제도의 장점과 한계

현재 국민연금공단은 의무적으로 전문의 자문을 거쳐 심사를 진행한다. 한 명의 의사가 아닌 다수의 자문의가 참여해 심사의 공정성을 높이고, 객관적인 의학적 자료를 기반으로 판정한다. 덕분에 과거 보건소 시절보다 신뢰도와 일관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첫째, 의학 중심의 평가에 치우친다는 비판이다. 장애인의 삶의 어려움은 단순히 손상 정도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같은 지체장애인이라도 장애인 콜택시가 잘 운영되는 도시와 대중교통 접근성이 열악한 농촌 지역에서의 삶의 질은 크게 다르다. 그러나 현재 심사 체계는 이런 사회적 요인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둘째, 심사 과정의 거리감이다. 국민연금공단은 행정기관 성격이 강해, 신청자와 직접 대면 상담이나 생활 여건 조사를 깊이 있게 수행하기는 어렵다. 신청자는 때때로 심사가 ‘차갑고 기계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셋째, 기관 성격의 불일치 문제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본래 사회보험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다. 반면 장애등록은 복지 행정의 성격이 짙다. 연금 제도와 복지 제도가 한 기관 안에서 충돌할 때, 연금적 관점이 지나치게 우선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앞으로의 개선 과제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첫째, 사회적 모델을 반영한 심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의학적 손상 모델’에 기초해 장애를 판정했지만, 국제적으로는 ‘사회적 장애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즉, 장애는 개인의 손상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장벽이 결합될 때 발생한다는 관점이다. 한국의 장애등록 심사도 이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둘째, 다층적 심사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 국민연금공단이 의학적 심사를 담당하되, 지자체나 복지기관이 생활환경 평가를 병행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개인의 실제 생활상의 어려움과 사회적 지원 필요성을 더 입체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셋째, 심사 과정의 투명성과 소통 강화가 요구된다. 현재는 결과 통보가 일방적이라 신청자가 왜 탈락했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알기 어렵다. 충분한 설명과 이의 제기 절차, 상담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

넷째, 장애인의 참여 확대가 필요하다. 심사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이나 제도 개선 논의에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그래야 제도가 실제 삶의 필요와 부합할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장애등록 심사를 맡은 것은 제도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과거 보건소 중심의 허술했던 심사 체계를 벗어나,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준과 전문성을 갖춘 체계가 마련된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동시에 장애등록이 단순히 ‘연금 수급 자격’을 판단하는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장애등록은 곧 권리를 선언하는 과정이며, 한 사람의 삶을 국가가 어떻게 인정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 이제는 국민연금공단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의학적 손상 정도를 넘어 장애인의 사회적 현실까지 담아낼 수 있는 제도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장애등록 심사가 장애인의 권리 보장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본래 목적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김양희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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