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이정주 칼럼니스트】 아일랜드 근대사는 엄청난 전염병(감자잎마름병) 팬데믹으로 매우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른바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 1845~1849)이라고 하는데 100만명의 국민이 아사했고, 100만~200만 명은 살기위해 미국·캐나다·호주를 향해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떠났다.

인구는 급감했다. 1841년 약 820만 명이었던 인구는 1851년 약 650만 명으로 약 200만명 이상이 갑작스럽게 줄었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줄어든 인구는 아직도 500만명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식민지 아일랜드가 굶어 죽어가는 동안 지배국 영국은 돕기는커녕 사상 유례없는 봉쇄령을 내렸다. 그 어느 누구도 아일랜드를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게 철저히 막아버린 것이다.

아일랜드에게 있어 영원한 강국이지 종주국 영국은 팬데믹을 막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그 잔인한 결과는 지금도 아일랜드 국민의 가슴속에 사무치는 슬픔과 분노로 남았다. 그래서 일까, 20세기를 맞이한 아일랜드는 절치부심 이를 악물고 국가를 경영했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며 승리의 현대사를 쓰기 시작했다. 억울한 죽음을 기려내는 검소하고 성실한 아일랜드 국민은 똘똘 뭉쳐 산업화 물결을 지나치지 않았다.

마침내 1인당 GDP 106,059달러(2024년 세계 2위)의 세계적인 부국이 되었다. 자신들을 봉쇄했던 영국에 보란 듯이 1인당 GDP가 영국의 2배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다. 명실상부한 유럽의 대표적인 강소국으로 우뚝 서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미국 최대기업의 유럽본부는 모두 아일랜드에 두고 있을 정도이니 서유럽을 대표하는 부국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복지영역에 있어서는 다른 서유럽 국가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특히 장애인 고용률은 매우 낮다. 2020년 통계 기준 아일랜드 장애인고용률은 32.65%로 EU 평균 51.3%에 비해서도 매우 낮고, 2022년 경제활동인구(16세이상-65세미만) 통계로 보아도 장애인고용률은 49.3%에 불과하다. 자국 내 비장애인 고용률에 70.8%에 비하면 많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2025년도에는 더 격차가 벌어졌다. 장애인 고용률은 41%로 더 떨어졌다. 비장애인 고용률에 비하면 거의 절반 수준에 가깝고, OECD 전체 평균 52%에는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 비장애인 고용률과 격차가 가장 큰 국가가 되었다.

이를 두고 아일랜드 장애인연합(Disabiliy Federation of Ireland)은 문제의 핵심을 장애인이 일할 경우 기존의 복지 혜택(의료비, 교통비 등) 사라지는 사회보장과 사회서비스 정책의 모순된 구조에서 찾는다. 장애인 단체 등은 오히려 장애인이 일하기 힘든 고용환경 속에서 장애인이 일자리를 갖기보다는 차라리 사회보장적 성격의 수당이 지금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들은 유연근무제, 사무보조기구 및 가전제품, 편의시설이 확보된 근무환경을 선호하면서 적절한 편의제공(affirmative accommodation)이 지금 보다 훨씬 나아져야 장애인 고용이 확대될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룬다. 장애인이 직업을 갖는 순간 많은 혜택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사회보장정책의 개선을 중요한 이슈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는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업주를 위해 '임금보조제도(WSS, Wage Subsidy Scheme)'를 개선하여 고용주에게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했다. 예컨대 기본보조금은 시간당 6.30유로이며, 주당 39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고용주에게 지급되는 연간 최대 보조금은 12.776유로이며 이는 매주 약 245.69유로에 해당된다. 이때 장애인 직원 주당 최소 15시간 이상 일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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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임금보조제도(WSS, Wage Subsidy Scheme)’ 6가지 방향. ©이정주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가 WSS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18세 이상 장애인이면서 장애수당, 시각장애인연금, 장애연금, 질병급여 등을 받고 있는 것으로 장애인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위와 같은 증명서가 없다면 본인이 장애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의사 진단서도 가능하다. 다만, 이미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 경우는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고, 현재 아일랜드 전체 1,500개 사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민간차원에서 아일랜드 자폐증자선단체(AsIAm)와 아일랜드 보험(Insurance Ireland)이 협력해 2025년 8월부터 자폐성 장애인의 일자리를 위한 새로운 캠페인(Autism Accessible Employer Charter)을 시작했다.

아일랜드의 자폐성 장애인의 85%는 실업 상태이거나 불완전 고용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해 장애인의 채용을 지원하고, 직장적응훈련, 승진 등 보상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고용주 파트너십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을 교육 시키는 기관은 자폐증자선단체(AsIAm)가 되고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의 90%를 아일랜드 보험이 지불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 장애인고용률은 크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강력하게 소득을 지원해주는 안정된 사회보장 제도는 장애인을 근로 현장으로 유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직장에 고용되어 임금을 받는 순간 본인에게 주어진 ‘장애수당’이 줄어드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구직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이점이 아일랜드의 장애인고용률 낮은 결정적 이유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사회보장(기초수당) 현금지원이 부족한 나라는 의무고용제도를 활용해 어떻게든 임금을 받아야 살아가기 때문에 장애인고용률은 상대적으로 높은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가급적 일을 안하고 수당을 받을 수 있다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도덕적 해이(Moral Hezard)가 아일랜드 장애인고용의 최대의 적으로 보여진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