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툴루즈 중앙역인 마타비우(Matabiau) 역 전경. ⓒ이원무
【에이블뉴스 이원무 칼럼니스트】사막여행 후의 나머지 모로코 여행을 글로 쓴다고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여행 후반부 프랑스 툴루즈, 파리에서 겪은 일들이 생생해서 모로코 여행은 이 글의 다음 글로 미루기로 한다. 이번 글에선 그 경험들을 얘기하고자 한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여행을 전부 마치고 나서 2주 남은 유럽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프랑스, 독일, 스위스가 남았는데, 제일 먼저 프랑스로 여행 가기로 미리 계획을 짜고, 계획대로 9월 2일 스페인 사라고사 델리시야스(Delicias)역에서 렌페(Renfe: 스페인 국영철도회사) 기차를 타고 프랑스 나르본(Narbonne) 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지역철도로 갈아탄 후, 1시간 40분 만에 드디어 툴루즈 마타비우(Matabiau) 역에 도착했다.
내 카드 돈까지 써가며 보니 대략 종이 지폐로 400유로가 남았고 구성을 보면 200유로 2장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퐁뇌프(Pont Neuf) 다리, 98 프랑스 월드컵 경기장으로 쓰였던 스타드 뮤니시바(Stade Municipal) 등을 본다는 기대감에 200유로짜리 1장을 50유로 4장으로 교환하려고 환전소에 갔다.
하지만 여러 환전소에서 한다는 말이 우리 환전소에서 같은 유로로 지폐를 교환하는 일을 할 수 없다, 대개의 사람들이 200유로 같은 큰돈 지폐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우리한테는 그런 큰돈 지폐 권종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나의 요구를 거절했다. 같은 유로로 바꾸려면 어디로 가면 되냐고 화장품, 초콜릿 가게들 등에 갔더니 환전소, 은행을 소개해주는 직원들이 있었다.
은행에서도 우리는 그렇게 큰돈 없다 등의 이유로 나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렇게 돌아다녔지만, 거절을 계속 겪으니, 마음은 지쳐만 갔다. 거절을 또 겪다 보니 내 입에서 여행하고픈 행복추구권이 사라졌다고 얘기했다. 그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이해한다면서, 전에 거절을 당한 은행, 환전소, 담배가계 등을 알려주는 거다. 시도를 해봤지만, 돌아온 것은 거절이었다.
오늘 여행은 다 글렀다고 생각하고 여행을 포기할까 생각하다, 이렇게 되면 남은 여행을 하지 못할 것 같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기회는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믿음으로 터키 음식을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조심스럽게 200유로를 100유로 1개, 50유로 2개짜리로 교환할 수 있냐고 물었다.

‘200유로 지폐’를 성공적으로 교환했던 툴루즈 캐피톨 광장(Capitole Square) 근처의 터키 음식점 Delice du Capitole 가게. ⓒ이원무
거절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알았다고 하면서, 어떻게 바꿔줄까 매니저가 고민하다가 50유로를 주고, 20유로를 세서 주더니, 10유로, 5유로 2유로, 1유로까지 해서 총 200유로짜리 1장을 완벽하게 바꿔준 거다. 이걸 보고서는 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왔고, 당신이 정의롭다는 말까지 해가며 이 가게로 오늘 중으로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여행할 힘을 얻고는 툴루즈 마타비우 역으로 가서, 다음 날 파리 몽파르나스 역으로 갈 기차를 미리 예약·예매한 후 점심을 먹고 시내 관광을 했다.
98 프랑스 월드컵을 치른 스타드 뮤니시바을 방문했는데, 그 주변으로 젊은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이 활발해 보였다. 날이 저물자 퐁 뇌프(Pont Neuf) 다리로 갔는데 그 다리의 야경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워 연신 사진을 찍는데 바빴다. 내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준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개인정보 쪽에 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3년 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정신적 장애인 사생활 보장에 관한 권고 이야기까지 이어가게 됐고, 그분에게서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다. 론강을 중심으로 하는 유람선 투어를 놓친 부분은 아쉬웠지만 말이다.

툴루즈 퐁 뇌프(Pont Neuf) 다리. ⓒ이원무
여행을 끝낸 후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마침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이 생각나서인지, 200유로를 바꿔준 캐피톨 광장(Capitole Square) 근처의 터키 음식점으로 가게 됐다. 감자튀김과 오아시스 음료수 등을 시켜 저녁을 먹었고, 정말 고마운 나머지 지폐를 교환한 분과 사진을 찍게 됐다. 국적을 물어보니 나는 한국인이라 했고, 그분은 튀니지인이라 했다.
내가 모로코 여행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니, 그분은 튀니지도 좋다면서 여행해보라고 나에게 권할 정도였다. 여행 기간이 거의 2주밖에 남지 않은 게 아쉽긴 했지만, 그건 다음에 기회 되면 다시 생각하는 것으로 말이다. 식당을 나와 숙소로 향하는 것으로 고생스럽고 파란만장했지만 고마움이 느껴졌던 하루가 끝났다.

터키 음식점에서 먹었던 저녁식사(좌측). 지폐를 교환해준 음식점 매니저와 함께(우측). ⓒ이원무
다음날 나는 툴루즈를 떠나 파리 몽파르나스(Paris Montparnasse) 역에 도착했고, 4일 후 쾰른(Cologne)행 기차표 예약을 위해, 파리 북역(Gare du Nord)으로 갔다가 로베스피에르 지역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에 도착해 거기서 4일을 머물렀다. 파리에 있는 동안 파리의 명소인 에펠탑, 개선문, 샹젤리제 거리, 콩코드 광장, 그랑팔레 등을 방문하며 관광을 즐겼다.
사족이지만, 에펠탑에 32년 만에 다시 왔다. 32년 전에는 나와 한국인 일행이 에펠탑 아래에서 노숙하고, 작은 누나는 한국 여성분을 운좋게 만나 그분의 집에서 평화롭게 하룻밤을 묵었다. 반면 에펠탑 아래에선 내 주위에 노숙인이 계속 돈 달라고 요구하니 일행 중 한 분이 노숙인을 혼냈었다. 노숙인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러니, 결국엔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는데 이상하리만큼 점점 조용해졌다. 그때의 추억이란 쓰라리면서도 뭔가 우끼는 이상야릇한 느낌이었다.
그때의 추억을 에펠탑에서 표를 팔고 있는 한 여성 직원분에게 얘기하며 박장대소했더니, 그분은 그래도 좋은 추억만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참고로 노숙인들 천국이었던 에펠탑 아래는 표 판매소 또는 음식을 파는 가게 등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유리로 가로막혀 있어, 출구로만 나가고, 입구를 통해서만 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물론 에펠탑 꼭대기까지 리프트로 가는 표를 구해 꼭대기에서 아름다운 파리 시내 야경을 보며 황홀감에 빠졌지만 말이다.

트로카데로(Trocadero) 광장에서 바라본 에펠탑 전경(좌측), 에펠탑 2층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 야경(개선문, 세느강 포함, 우측) . ⓒ이원무
이렇게 신나게 여행했지만 200유로 바꾼 돈을 거의 다 쓰게 됐다. 남은 돈 200유로 지폐 1장이 있어 독일 여행 망치면 어떡하지 하는 고민과 불안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숙소에 같이 머물던 외국인 남성에게 도움을 구했고, 그는 물건을 사거나, 토요일이면 은행 문을 여니 거기서 바꿀 수 있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물건을 사려면 큰돈이 드는 걸로 사야 지폐를 바꿔줄 수 있다는 걸 직감했었고, 툴루즈 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불안과 의심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돈을 바꾸려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근처 카르푸 매장 옆에 있는 은행으로 가서 문의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였다. 큰돈 지폐를 교환하는 게 안되지만, 매장에서 물품이라도 사면, 돈을 바꿔주지 않겠냐는 말을 은행 직원이 했다.
카르푸 매장이 있길래 점원에게 어떻게 하면 200유로 지폐를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지폐 교환하는 교환기가 있지만 200유로 교환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에서 살짝 불안감이 들어, 원하는 물건을 사서 200유로를 내고 거기서 거스름돈을 받을 생각을 갖고 매장으로 향했다. 물건 구입해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200유로를 주니, 점원은 그런 큰돈이 없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지폐 교환기로 갈 수밖에 없었다. 직원이 한번 시도해보라고 하면서도 지폐 교환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고 불확실한 답변을 줬다. 살짝 불안했지만 그래도 교환기에 200유로를 넣었다. 그랬더니 200유로가 내가 원하는 50유로, 20유로 지폐, 2유로 동전 등으로 교환되던 게 아니던가? 거기서 나는 마음의 체증이 내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기쁜 나머지 이후 여행을 할 수 있게 됐다.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 근처 카르푸 매장에 있는 지폐 교환기. ⓒ이원무
이런 일들을 겪으며, 행복추구권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확실한 정보가 있을 때만이 불안을 겪지 않음을 새삼스러우나, 몸소 깨닫게 됐다. 그런데 이런 불편과 불안이 누군가의 삶에서 벌어지는 매일의 일상이라면? 이런 힘든 경험을 하면서 문득 27년 동안 사실상 건물이나 시설에 접근할 권리가 휠체어 이용인들에겐 배제된 현실이 떠올랐다.
1998년 ‘장애인등편의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이 있어도 바닥면적과 건축시기에 따른 편의시설 의무설치 대상에 제한을 두는 조항이 있었던 바람에 소규모 편의점 등 대한민국의 약 98%에 해당하는 건물들은 턱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 턱 때문에, 휠체어 이용인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거나, 공연 등을 맘대로 즐기지 못하고, 턱에 가로막혔다. 때로는 건물에 들어갈 때 누군가에게 업혀갔던 나머지 수치심을 겪으며, 헌법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했다.
이런 잔인한 현실에 휠체어 이용인들은 ‘장애인등편의법’ 전면개정은 물론 국가가 소상공인에게 편의시설 설치 예산을 지원하라는 등의 요구를 했다. 이에 정부는 면적기준을 강화했지만, 2022년 5월 이후로 한정을 지었기에 아직도 건물의 80%는 휠체어 이용인들에게 턱이 존재하는 현실은 여전했던 거다. 더군다나 정부는 소상공인의 부담을 들먹거리며 접근권을 보장할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3시간 동안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해 고통스러웠는데, 휠체어 이용인들은 27년 동안, 아니 평생을 살면서 그런 권리를 박탈당했다니... 프랑스 주류 사회에서 큰돈을 안 쓰고 이에 따라 잔돈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로 돈을 바꾸지 않는 것처럼 건물 대부분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되는 바람에 행복추구권을 빼앗겨 평생을 불편과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휠체어 이용인들의 분노가 조금이나마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권리위원회가 1차 때에 이어 2·3차 병합보고서 심의 때도 심의를 거쳐 면적기준, 건축시기 등에 상관없이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을 위한 법령 개정을 하라고 최종권고안을 냈다. 이런 권고안을 정부가 이행하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툴루즈 때 경험을 계기로 이전보다 더욱 확고하게 들게 됐다. 예전에도 최종권고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말이다.

올해 6월 19일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이 주축이 되어 개최된 장애인 접근권 침해 국가책임 집단소송 ‘김순석들’ 기자회견 전경. ⓒ이원무
한편 지폐 교환기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교환하는 방법에 대해 불확실하게 얘기하는 모습을 통해 나로선 지적·자폐성 장애인이 확실하고 쉽거나 맥락에 따르는 정보를 받지 못해 겪는 불안함과 어려움이 생각났다. 과거 나도 상사가 불확실한 정보를 주는 바람에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머뭇거리며 때론 마음이 불안했던 기억이 난다.
나와 장애 유형이 같은 장애인들은 쉽거나 맥락에 따르는 정보를 키오스크 등을 통해 얻지 못해 불확실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낀 나머지, 어떤 음식, 음료, 물품 등을 구입해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나, 4년마다 있는 지방선거 등에서 투표용지가 비장애 중심의 글씨 위주, 선거공보는 어려운 말들로 되어 있어, 누구를 찍을지 모르거나 확신이 서지 않는 상태다 보니, 이들은 투표를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다.
그래서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인 단체 피플퍼스트 등에서 8~10년 전부터 알기 쉬운 선거공보, 투표용지 등의 참정권 보장조치를 줄곧 요구해왔던 거다. 이와 관련해 1심 재판부선 공직선거법에 관련 내용 없다고 이들의 요구를 기각했으나, 오랜 요구 끝에 2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선 최근 이들이 기표할 수 있게 정당 로고 등이 포함된 투표보조용구 제공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리멸렬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면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정보접근권, 참정권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와 한국피플퍼스트가 작년 12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을 개최했던 모습. ©에이블뉴스 DB
한편으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파리에 왔으니 파리 생제르맹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렝스(Parc des Princes) 경기장 외관이나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현지시간 9월 5일 오후에 그곳으로 갔는데, 외관을 보다, 경기장 투어하는 곳의 입구를 보게 됐다. 살짝 투어를 하고 싶은 마음에 가서 티켓값을 물어보니, 25유로란다. 장애인 표시가 들어간 복지카드를 보여줬지만, 가족 구성원 1명에겐 무료고 장애인 본인이 25유로를 내야 한다는 거다.
좀 비싼 가격에 그냥 다음 기회에 하자고 마음먹고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입구 안에서 무슨 얘기가 오가더니 나보고 무료로 해주겠다고 파르크 데 프렝스 구단 측에서 제안하는 거다. 그래서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경기장 투어를 하게 됐다. 이강인부터 시작해 하키미, 뎀벨레 선수 사진, 그리고 24/25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인 빅이어 전시물 등을 보면서 재밌었다.

파리 생제르맹 홈구장인 파르크 데 프렝스(Parc des Princes) 전경. ⓒ이원무

24-25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한 파리 생제르맹(Paris Saint-Germain)이 차지한 챔피언스리그 컵인 빅이어 관람을 즐기며. ⓒ이원무
한데, 티켓을 보다 어린이(Enfant)라는 말에 기분이 좀 좋지 않았다. 내가 자폐성 장애인이라 얘기했는데 혹시 프랑스에서 장애인을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심리적 접근권이 뭔가 제한받는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다가도 이들이 의도적으로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닌 게 확실했기에, 뭔가 분명히 얘기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나는 구단 측에게 의도적인 게 아닌 건 알지만, 장애인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 같기에 이건 아니라고 보고, 다른 장애인이 이런 티켓 보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고 얘기했다. 아울러 장애인이 내 돈 내고 경기장을 관람한다는 자부심이 들게 장애인의 소득 현실을 반영해 조금은 할인된 약 5~10 유로 정도를 경기장 투어 가격으로 책정하면 어떻겠냐는 말까지 했다.

어린이(Enfant) 글씨가 새겨진 파르크 데 프렝스 경기장 투어 티켓. ⓒ이원무
그랬더니 구단 측에서 장애인을 차별할 의도는 없었지만, 시스템상에 장애인 무료는 없고 어린이 무료가 있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해명했다. 그리고선 나의 제안이 합당하다며 구단 상부에 그 제안을 보고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대화를 주고받은 후 기분이 좋아졌고, 투어를 마친 후에는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라데팡스(La Defense) 아레나 등을 돌며 신나게 여행했다.

작년 파리올림픽 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김우민이 경쟁했던 파리 라데팡스 아레나 전경. ⓒ이원무
사실 우리나라도 지적·자폐성 장애인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게 지배적 정서라 이로 인해 이들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건 물론, 시설수용 폭력의 대상으로까지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장애인 할인도 지하철은 무료지만, 버스는 원래대로 이용요금을 지불하는 등 할인정책도 일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장애인에겐 혼선이 생기고, 주체적인 소비자라는 인식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선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된 실질적인 통합교육 미비와 노동시장 배제라는 요인도 함께 한다.
그래서 장애인의 경제 현실을 반영해 버스든, 지하철이든, 관람료든 일정 정도를 할인하되 장애인도 돈을 내면서 교통수단 이용하고, 문화시설 등을 관람하는 등 당당하게 주체적인 소비자로 나설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장애인도 ‘어린아이’ 취급을 받지 않도록 사회의 장애 패러다임이 인권적 모델로 전환되고, 관련돼 장애인식교육이 그 모델에 맞게 내용이 바뀌어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아무리 재차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이런 걸 파리 생제르맹 홈구장 투어를 통해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배운 것도 있다. 앞으로는 한화를 50유로 이하의 소액 권종들로 지폐를 교환하고, 100유로 지폐 권종은 2~3개만 바꿔달라고 해야 하는 걸 말이다. 또한, 200유로 같이 큰 금액 지폐 권종인 경우, 지폐 교환기가 매장에 있는지 잘 살펴보고 그곳에서 소액 지폐 권종으로 교환하는 시도를 다음번 유럽 여행 때 자주 해야겠다고 말이다.
200유로를 다른 유로 지폐 소액 권종으로 바꾸려는 고군분투와 파리 생제르맹 홈구장 투어 티켓을 통해 다시금 장애인 접근권이 제한받고 차별받는 현실이 생각나 조금은 우리나라 현실과 나 자신을 생각해보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건물 접근권 및 정보접근권 차별에 맞서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연대하고픈 내적 동기가 더 강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이들의 권리옹호 활동에 응원을 보내고 앞으로는 더 자주 관련 상황을 주시할 생각이다. 이들의 운동에 더 자주 함께 참여할 생각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프랑스에서의 잠깐의 힘든 경험은 나로선 장애인 접근권 증진에 관해 다시금 떠올리며 생각할 계기를 갖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계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