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여객선 승선 모습.ⓒ에이블뉴스db
휠체어 사용 장애인의 여객선 승선 모습.ⓒ에이블뉴스db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삶의 활력소다. 낯선 풍경을 마주하고, 일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쌓는 일은 그 자체로 치유와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절마다 관광지를 찾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행 일정을 계획한다. 그러나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는 이들에게 여행은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들에게 여행은 단순한 즐거움이 아니라 ‘가능성과 자유’를 확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현실의 벽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최근 각 지자체와 관광지는 ‘무장애 여행 코스’를 앞다투어 홍보한다. 휠체어 사용자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 장애인 화장실, 경사로 등이 마련된 곳을 중심으로 홍보자료가 쏟아진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이제는 장애인도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여행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 서 본 휠체어 장애인의 목소리는 사뭇 다르다.

관광지보다 더 큰 장벽, ‘이동의 벽’

무장애 관광지가 아무리 많아도, 그곳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휠체어 장애인에게 여행의 첫 번째 난관은 ‘관광지 내부’가 아니라 ‘관광지까지의 이동’이다.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는 여전히 휠체어 탑승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고, KTX나 일부 열차는 좌석의 수가 제한적이다.

그나마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특장버스’다. 휠체어 리프트가 장착된 이 버스는 단체 이동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실제 이용은 ‘그림의 떡’에 가깝다. 특장버스를 대여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많지 않고,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소규모 단체가 하루 나들이를 떠나려 해도 버스 대여비가 백여만원을 훌쩍 넘는다. 게다가 정작 대여해도 휠체어 네다섯 대만 타면 공간이 꽉 차버린다. 나머지 인원은 일반 좌석을 이용할 수 있지만, 정작 휠체어 장애인 당사자는 ‘여럿이 함께’라는 여행의 묘미를 누리기 어렵다. 결국 여행의 시작부터가 선택받은 몇 사람의 몫이 되곤 한다.

여행의 비애, 함께할 수 없음

여행의 본질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에 있다.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어울려 새로운 풍경을 보고 맛을 즐기고 추억을 나누는 데서 여행의 의미가 확장된다. 하지만 휠체어 장애인은 그 ‘함께함’의 자리에 배제되기 쉽다. 이동을 위한 특장버스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함께 가지 못하고 남게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여행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는 체념이 자리 잡는다.

더 뼈아픈 건, 이런 상황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제한한다는 점이다. 장애인은 일상 속에서 이미 많은 제약을 겪는다. 직장, 여가, 인간관계에서 선택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여행은 삶의 숨통을 틔워주는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는데, 현실의 장벽은 그 가능성마저 지워버린다. “나는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다”라는 감각은 곧 자기 존재에 대한 위축으로 이어진다.

무장애 코스의 허상

요즘 관광지마다 “무장애 코스”를 내세운다. 그러나 막상 가 보면 진정한 무장애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휠체어 진입이 가능하다는 홍보 문구가 있지만, 실제로는 경사가 가파르거나 길이 울퉁불퉁해 이동이 쉽지 않다. 장애인 화장실이 있다고 안내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휠체어 회전 반경이 나오지 않거나 손잡이가 부실한 경우도 허다하다.

즉, 무장애 여행이란 이름은 홍보용으로만 빛나고, 실제 당사자가 체감하는 접근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더구나 장애인의 이동을 지원할 전문 인력이 현장에 상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가족이나 동행인이 모든 부담을 떠안게 되고, 이는 곧 장애인 본인에게 심리적 짐으로 돌아온다. “나 때문에 힘들다”라는 미안함은 여행을 온전히 즐기는 감각을 빼앗아 간다.

제도와 인식의 간극

정부와 지자체는 관광의 포용성을 강조하며 다양한 시범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속성’과 ‘현실성’이다. 시범사업은 일회성으로 끝나기 쉽고, 홍보물에 담긴 ‘이상적인 모습’이 실제 운영 단계에서는 뒷전으로 밀린다. 예산도 충분하지 않다. 특히 중증 장애인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핵심 기반인 ‘이동권 보장’에는 턱없이 부족한 지원만 이루어진다.

또한 사회적 인식 역시 큰 벽이다.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이 무슨 여행을 하냐’라는 시선을 가진다. 이는 장애인의 여행을 특별한 예외로 치부하게 하고, 제도를 뒷받침할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약화시킨다. 하지만 장애인에게 여행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 문화 향유권’이다.

필요한 변화들

휠체어 장애인의 여행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첫째, 이동 수단 확충이다. 특장버스를 지자체 차원에서 공공적으로 운영하고, 대여비를 합리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또한 휠체어 좌석 수를 늘린 다양한 차량 모델이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무장애 코스의 실질적 검증이다. 홍보자료와 현장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참여하는 점검 체계가 필요하다. 이용 가능한 길인지, 화장실은 제대로 작동하는지, 실제 체험 후의 피드백을 반영해야 한다.

셋째, 동행 지원 인력 제도화다.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활동 전반을 아우른다. 장애인의 안전한 동행을 돕는 전문인력이 배치된다면, 가족이나 지인에게 집중되는 부담을 줄이고 여행의 즐거움을 온전히 공유할 수 있다.

넷째, 사회적 인식개선이다. 장애인의 여행을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제도 개선과 정책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행의 권리, 삶의 권리

장애인의 여행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단순히 관광의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삶을 풍요롭게 누릴 권리에 대한 이야기다. 휠체어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의 바다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다른 도시의 길거리를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그 마음을 자꾸만 꺾는다.

여행이란 자유와 가능성을 확인하는 경험이다. 휠체어 장애인에게도 그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 여행을 통해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을 얻을 때, 삶의 활력이 피어난다. 하지만 지금은 여전히 이동권의 장벽과 제도의 미비 속에서 ‘여행의 비애’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포용을 이야기한다면, 장애인의 여행권을 보장하는 일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무장애 코스를 홍보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동에서부터 현장 경험까지 전 과정을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 그래야만 휠체어 장애인의 여행이 더 이상 ‘비애’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누리는 ‘기쁨’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 글은 김양희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 연락을 주시면 안내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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