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러 시민들. (본 칼럼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MBC 뉴스화면 갈무리
【에이블뉴스 장지용 칼럼니스트】장애인 탈시설 논쟁을 보면서 정작 어딘가 빠져있는 느낌이 있습니다.
대중들의 장애서사를 잘 살펴보면, 장애인 양육 등의 이야기가 나오면 하나의 옵션인 양 시설 이야기는 꼭 나오는 서사입니다. 거의 장애인 관련 서사가 나오면 클리셰 수준으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대중적인 장애 관련 서사 중에서 시설 관련 언급이 없었던 것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정도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지점을 찾습니다. 바로 대중들의 장애인식 관념을 ‘탈시설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대중들의 인식에 ‘장애인=시설에서의 생활’ 공식을 없애지 않는 한 탈시설 논쟁은 쳇바퀴 구르는 논쟁이 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대중의 인식에 탈시설화가 이뤄진 뒤에야 진정 탈시설화 논쟁이 앞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이제 점점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일 것입니다. 대중들은 장애인이 여전에 시설에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우리만 탈시설하면 정작 대중들은 ‘왜 안전한 시설에 안 있어요?’라고 묻고, 우리는 이에 대해 탈시설화에 대해 또 설명하는 진땀을 흘리는 사태는 곧 벌어질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탈시설 운동은 정작 탈시설화를 해야 하는 또 다른 대상을 탈시설화하지 않고 벌어지는 또 다른 위험성을 안고 시작하고 있었고, 또한 정치인 등은 이런 것에 편승해서 또 이러니 결국 ‘쳇바퀴 구르는 논쟁’이 된 점을 우리는 이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오류가 벌어진 탓에, 우리는 대중의 장애인식에 영향을 받는 시설이용자부모회 같은 세력과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 것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장애인식을 먼저 바꾸지 않는 한, 반 탈시설 세력과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저쪽마저 대중의 기반이 흔들린다면 결국 무너질 집단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모 정당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결과 처참히 몰락한 현실을 우리는 지켜봤습니다.
우리는 이제 ‘대중의 장애인식’도 ‘탈시설화’해야 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대중들의 장애 관련 인식에 뿌리박힌 시설에 대한 관념을 탈시설화하지 않는 것은 결국 완전히 사회적으로 탈시설화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만 탈시설하고 대중들의 인식을 탈시설화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현재 벌어지는 대중의 인식 관련 충돌은 더 심해질 것이고 심지어 정치권도 엉뚱한 늪에 빠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지하철 시위 같은 방식의 압력이 아닌, 진짜 탈시설-자립생활을 하는 모습이 오히려 좋은 일이며, ‘시장경제’ 논리에도 합당한 이론임을 증명하는 투쟁을 해야 합니다. 특히 ‘시장경제’에 합당한 이론임을 설득하면, 우파 진영에서도 탈시설에 동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탈시설-자립생활이 도덕적인 명분까지 차지하게 된다면, 그때 가서 탈시설 관련 지원 등은 더 확충되기 쉬워질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사실 도덕적인 명분까지 있어야 성사될 수 있는 이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리하게 정부를 압박하는 그런 것이 아닌, 대중 속으로 들어가 탈시설-자립생활이 진정 장애인에게 적합한 삶임을 우리가 증명해 보이면서 대중들의 장애인식의 ‘탈시설화’를 향해 전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 대중들이 탈시설-자립생활의 긍정적인 면모를 알게 되면 자연히 정책 변화도 따라오며, 대중들은 설득될 명분이 생길 것입니다.
특히 프로파간다로 흐르지 않는 조건을 붙여서 대중문화 관련 서사 등에 탈시설-자립생활의 긍정적인 모습을 심기게 하는, 일종의 PPL 전략을 사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자연히 인식이 심어지는 효과가 발생하게 말이죠.
지금의 장애계 투쟁은 결국 대중들과 거리를 두는 투쟁이기에, 결국 이러한 좌초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대중 인식을 변화하면서 자연히 여론의 지지를 받는 모습으로 가면 진짜 이룰 수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중들이 장애인 관련 서사에서 시설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되고, 시설 이야기가 나오면 ‘구닥다리 인식’ 이런 소리가 비평가들도 자연히 할 수 있는 시점에 진정 탈시설화 논쟁은 승리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것입니다.
최종 목표는 또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장애인을 보는 장소가 ‘봉사활동 시간’에만 보는 것이 아닌, 바로 옆자리에 있는 일상적인 모습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도 결국 대중의 장애인식 탈시설화 뒤에 자연히 벌어질 이야기일 것입니다. 현재의 시설 서사로는 대중들이 장애인을 만나는 시간이 결국 ‘봉사활동 시간’에만 그렇게 될 공산이 큽니다.
장애계는 현재 벌어지는 1920년대 전위정당 식 투쟁은 지금의 장애 관련 문제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대중 속에서 장애인 탈시설화를 이야기하면서, 대중의 장애인식까지 탈시설화하는 전환을 이뤄내는 모습을 보여야 진정 이를 수 있는 목표에 올 것입니다.
대중의 장애인식이 ‘탈시설화’해야 진짜 장애인 탈시설화의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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