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장윤경 칼럼니스트】시간이 흐른 뒤에 깨달았다.

아들의 매니저인 내가, 전시를 계약한 러쉬 회사와의 계약서를 정독도 하지 않은 채 무심코 대리 서명했다는 것을. 작가는 전시계약 기간 중 동일 작품으로 타 공모전에 응모며 전시행위 자체가 계약 위반사항인 줄도 모른  채, 사치 공모전에 응모했으니… 그야말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나와 같은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이런 나의 무지함과 욕심이 빚은 수상이라는 결과물이었기에 영국 사치 공모전 수상자 명단에 오른 기쁨도 잠시, 한젬마 감독과의 통화는 교무실에 불려간 문제 학생처럼 좌불안석 그 자체일 수밖에 없었다.

“아, 네, 네. 색연필 작품, 오랑우탄 양예준 작가 기억합니다. 네? 어디요, 스타트 아트페어요? 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 말씀하신 그 내용을 우선 문자로 좀 보내주시겠어요? 제가 이따가 회의 끝나고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요, 우선 작품은 작가에게 권한이 있으니… 좋습니다. 20주년 러쉬 행사에 예준 작가는 영상물로 우선 대체하면 됩니다. 이 소식 ‘그림 엄마’ 카페에 올려 주시겠어요? 네, 네! 너무 축하드립니다.”

전화기 속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바쁘고 분주해 보였기에, 이 와중에 눈치 없이 말까지 더듬는 나 스스로가 한심했고 더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그녀는 내 예상과 달리 아들의 수상 소식을 먼저 축하해 주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긴장을 너무 했던 탓인지, 통화가 끝난 전화기에 대고 나도 모르게 감사 인사를 넙죽 하는가 하면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치료실 비상구에 주저앉아 숨 고르기를 한 채 남편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여보, 여보! 허락해 주셨어. 아! 어떡해 너무 긴장했었는데 감사해서 눈물 나.”

그랬다. 그녀, 한젬마 감독의 수락 한마디 덕분에 그날을 시작으로 예준이의 작품은 날개를 달고 영국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렇게 예준이는 스타트 아트페어 참여작가로 당당히 도록에 이름을 올리며 VIP 입장권과 영국 사치미술관행 티켓까지 등기 우편물로 받던 날, 나는 아들 덕에 마치 내가 신데렐라가 된듯한 비슷한 설렘을 경험할 수 있었다.

2022.9월 성수동 스타트 아트페어 공모전 시상식. 경인교육대 동양화 김선형 교수에게 수상자 패를 건네받고 있는 초등 5학년 당시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9월 성수동 스타트 아트페어 공모전 시상식. 경인교육대 동양화 김선형 교수에게 수상자 패를 건네받고 있는 초등 5학년 당시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무렵 9월1일~6일까지 개최된 스타트 아트페어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는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년 코로나가 한창이던 무렵 9월1일~6일까지 개최된 스타트 아트페어 기념촬영에 응하고 있는 양예준 작가. ©장윤경

“그래, 이 그림 그린 아이가 누굴지 너무 궁금했어? 왜 이렇게 구도를 잡았니? 내가 이 그림 심사할 때 국내에 아직 이런 아이가 있구나 싶어 많이 놀랐거든.”

아트페어 현장에서 만난 동양화 작가 김선형 교수가 시상식에 참석한 예준이에게 상패를 건네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그간 예준이의 작품을 여러 공모전에 응모할 때마다 아들의 장애를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들의 장애가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예술이라는 이름 앞에서 장애는 결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심사위원들에게 그 어떤 동정표나 선입견을 주고 싶지 않았고, 그저 공정한 심사를 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예준이가 그간 받아온 많은 미술대회 수상 소식은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요 감사함 그 자체였다.

시상식장에서 아들을 향한 김선형 교수의 질문은 예술에 장애는 결코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작품 그 자체로 인정받는 순간이었기에 더없이 예준이가 자랑스럽고 그의 질문이 오히려 나를 설레게 했다.

그 순간, 김 교수의 질문에 쭈뼛대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그냥 예쁘니까, 오랑우탄이 우리에서 살려달라고 하는 거고, 나는 마음을 그리는 마음 화가예요.”라고 엉뚱한 듯 조금 짧게 답하는 예준이의 말에 당황한 듯 바라보셨다.

“저,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양예준 수상자 엄마입니다. 저희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어 대화가 조금 매끄럽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상식장에 있는 많은 이들 앞에서 나는 아들의 장애를 당당히 소개했다.

“어쩐지, 아 그랬군요. 내 촉이 맞았네요. 이런 구도는 배워서 나오는 구도가 아니거든요. 그냥, 날것 그 자체가 만들어 낸 미학이지. 학원에서 배운 아이들은 배운 대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렇게 못 그려요. 내가 그런 아이들 이번 심사에서 다 제외했지. 이 어린아이가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쏟았을지 지나간 색연필의 중첩이며 지우고 문지른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서 솔직히 보자마자 내가 많이 놀랐어요.

이 작품을 그린 아이가 도대체 누굴까 궁금했거든. 너, 이름이 양예준이라고 했지? 선생님이 네 이름을 꼭 기억할게. 넌 이미 타고난 화가구나. 부모님도 장애 아이를 키우시면서 그간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 너무 예준이가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시겠어요. 축하드립니다.”

아들에게 악수를 청하며 우리 가족을 향한 김 교수의 위로와 따뜻한 응원의 한마디에 마스크 안으로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김선형 교수의 말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부모들도 상장을 받는 예준이를 향해 박수로 응원했다. 바로 그때, 시상식장이 갑자기 술렁이기 시작했다.

2022 스타트 아트페어 개최자인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영국 스타트 아트 글로벌 대표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초5학년 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 스타트 아트페어 개최자인 데이비드 시클리티라 영국 스타트 아트 글로벌 대표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초5학년 시절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 스타트 아트페어의 영국 대표 데이비드는 예준이를 위해 단독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며 영국 잡지에 소개해 주었다. ©장윤경
2022 스타트 아트페어의 영국 대표 데이비드는 예준이를 위해 단독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해 주며 영국 잡지에 소개해 주었다. ©장윤경

맙소사!

때마침 주최 측 영국 대표가 시상식장에 도착해 예준이를 향해 마스크를 벗고 다가오는 게 아닌가? 그의 옆자리에서 예준이를 오티즘 학생 작가라고 소개한 통역사 말 한마디에 식순과 대본에도 없는 악수에 기념사진 촬영까지 단독으로 하는 돌발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 19로 거리 두기며 마스크 착용이 의무이던 시절이었기에 그 순간 시상식장의 많은 이들이 놀라면서도 예준이에게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주는 영국 주최 측 대표의 과감한 모습에 다른 수상자들은 마냥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코로나 19 감염 우려보다도 더 소중한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고 그 순간은 현장에 있던 영국 취재 기자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긴 덕분에 예준이는 영국 잡지에 출연하는 행운의 한국 소년작가 되었다.

2022 스타트 아트페어 서울 성수동 전시관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는 양예준 작가. ©장윤경
2022 스타트 아트페어 서울 성수동 전시관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있는 양예준 작가. ©장윤경

그렇게 아들 때문에 어찌 살아야 할지 모르던 내가 아들 덕분에 영국 사치 미술관이란 곳도 알게되고 국내·외 유명 작가들과 같이 전시하는 아들의 엄마가 되었으니, 내 아들을 통한 하늘의 큰 뜻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지 다시 한번 기적을 체험하며 감사가 흘러넘쳤다.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기운이 마치 나를 돕는 것만 같았다.

그해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안녕하세요. 예준이 어머니, 혹시 예준이 작품 가지고 있는 것 중에 30호 사이즈가 있을까요? 그림을 이어주고 세상을 이어주는 특별한 힘의 그녀 한젬마 감독이 전화기 너머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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