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요양등급 받았다고 복지부 일자리서 해고
복지부 ‘장기요양에 일자리까지 못 준다’?
재판부 “애초에 장애인 위한 일자리, 배제는 차별”
승소소식을 듣고 환하게 웃고 있는 최윤정 씨. 최 씨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간절한 노력으로 재판에 임했다. 우리 모두의 승리다. 주변에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65세가 지나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고 복지형 일자리에서 해고된 중증장애인 최윤정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장애차별구제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2민사부(최욱진 재판장)는 7일 오전 10시 열린 1심 선고심에서 △피고 대한민국은 최 씨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보건복지부가 발간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안내서에서 장애인 차별에 해당하는 부분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 8월 21일, 국가 손배소 청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최윤정 씨. 사진 하민지
65세 넘어 장기요양등급 판정 받았다고 복지부 장애인 일자리 해고통보
59년생 뇌병변장애인 최 씨는 2020년부터 복지부가 주관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동료상담가로 일했다. 1년씩 계약하는 불안정한 일자리였고 월 50여만 원의 적은 임금이었지만 최 씨에겐 소중한 일자리였다.
지난해 2월 15일, 최 씨는 만 65세가 되면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받았다. 같은 달 29일, 장기요양 1등급 수급자로 판정됐다. 판정된 지 한 달 만에 퇴직을 통보받았다. 장애인 일자리 사업안내서에 따르면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은 해당 일자리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는 즉시 일자리 참여가 중단된다.
이에 최 씨는 지난해 8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해고 때문에 못 받은 임금을 달라는 취지다. 이에 따라 퇴직시점인 지난해 3월 13일부터 계약기간 종료일인 지난해 12월 31일까지의 임금 531만 4,540원을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또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을 일자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정당한 사유 없이 장애인을 차별한 것이므로, 올해 이후 시행되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최 씨가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며 장애차별구제 청구도 제기했다.
그런데 복지부가 소송 중에 사업안내서 지침을 바꿨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은 일자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을 삭제한 대신 근로가능 여부를 파악하겠단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최 씨의 변호인단은 신설된 조항 역시 장애인 차별이라는 내용으로 청구취지를 변경해 소송을 이어갔다.

복지부가 변경한 올해 장애인 일자리 사업안내서 내용. “장기요양등급 판정자의 경우에는 근로가능 여부 등 반드시 확인하여야 함, 장기요양등급 판정자의 근로가능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의사진단서 등 제출을 요구할 수 있음,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의 경우 장기요양등급 적정성 확인을 위한 조사대상으로 선정될 수 있음” 등이 적혀 있다.
복지부, 장기요양등급 받은 장애인은 “별도의 재정지원 받는 사람들” 주장
복지부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장애인만을 위한 복지사업이므로 장애인 차별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을 일자리 사업에서 배제한 건 “이들의 근로능력을 고려한 조치”라고도 했다.
게다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을 “별도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 규정하면서 이들을 일자리 참여대상에서 제외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장기요양 수급을 받으면서 복지일자리 ‘혜택’까지 받는 것은 ‘중복수혜’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또한 복지부는 “한정된 재원으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까지 일자리를 제공하면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지 못해 더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정책실장은 7일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사안을 왜곡한 궤변이다. 장기요양은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제도인 반면 일자리는 소득 보장과 노동권 보장, 사회참여를 위한 제도인데 항변을 하기 위해 제도의 취지조차 몰각한 주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복지부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확인하겠다고 지침을 변경한 것에 대해서는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근로제공을 한다는 건 심신상태 등에 변화가 생긴 것일 수 있으므로 장기요양등급 판정의 적정성 확인을 위해 조사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이에 따라 변경한 지침 또한 장애인 차별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지난 9월 5일, 마지막 변론기일에 모인 사람들. 제일 앞줄, 하얀 모자를 쓴 사람이 최윤정 씨. 사진 전국장애인노인연대
재판부 “장애인 위한 일자리인데 장기요양등급 여부로 배제하는 건 차별”
재판부는 최 씨가 청구한 것 중 단 하나만 기각하고 모두 인용했다.
우선 재판부는 복지부가 장애인을 차별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자의 근로능력이 부족하거나 없음을 전제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서 일률적으로 배제하는 건 그 자체로 장애를 이유로 한 직접차별”이라고 했다.
또한 “장애인 일자리 사업은 장애인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장애인 차별이 될 수 없다”는 복지부 주장에 대해서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규제대상이 되는 서비스 등의 내용을 이용 대상자 범위에 따라 제한하지 않는다”라며 “장애인으로 한정된 서비스라고 해서 함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할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을 “별도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면서 마치 ‘아무 지원을 받지 않는’ 장애인을 일자리 참여자로 우선 선발한 거라는 복지부 주장에 대해서는 “활동지원서비스나 다른 형태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에 대해선 별다른 참여제한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위 주장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사람들 내에서도 일생상활의 도움이 필요한 정도에 차이가 있고, 장애인 일자리 사업 자체가 장애인의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발굴해 실시한다는 점을 들어 “장기요양등급 판정자라고 하여 일률적으로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근로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장애인 일자리는 애초에 장애인의 근로능력을 고려해 만들어진 일자리인데 장기요양등급을 받았다는 이유로 배제하는 건 일자리 취지에 안 맞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최 씨를 언급하면서 “(최 씨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기 직전까지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동료상담 업무를 수행했고 판정전후로 근로능력이 유의미하게 달라졌다고 볼만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복지부가 변경한 사업안내서 조항에 관해선 “사업안내서 조항을 개정한 건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라며 “장기요양등급 판정여부와 근로능력 유무 사이 상당인과관계(원인과 결과 사이에 합리적 관련성이 있을 때 인정되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판정여부라는 일률적 기준으로 사업참여 대상자를 선별하는 게 합리적이거나 불가피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국가가 최 씨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고, 올해 사업안내서에서 장기요양등급 판정자의 근로능력을 확인하는 조항을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기각된 청구는 최 씨 등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 올해 이후 시행되는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허용하라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일반적·추상적인 적극적 조치를 명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이번 판결로 최 씨 등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 일자리 사업에서 배제되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굳이 명시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 씨는 판결 직후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기뻐했다. 그는 이 같은 차별을 겪는 장애인이 많기 때문에 재판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연신 걱정했다. 그 마음으로 매 변론기일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승소판결을 들은 최 씨는 “이제 마음이 놓인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한 간절한 노력으로 재판에 임했다. 우리 모두의 승리다. 주변에 자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