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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토일드라마 ‘프로보노’. ©tvN

프로보노(Pro Bono)’, 공익을 위해 휠체어에 앉은 법

프로보노(Pro Bono)’. ‘공익을 위하여(Pro Bono Publico)’라는 라틴어의 약어로전문가가 자신의 역량을 대가 없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나누는 것을 뜻한다최근 방영된 tvN 토일드라마 프로보노’ 3, 4화는 이 단어의 무게를 12살 지체장애 소년 김강훈의 목소리를 통해 묵직하게 전달했다.

소년은 로펌을 찾아와 당돌하게 외친다. “하나님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고 싶어요.” 이 기상천외한 의뢰 뒤에 숨겨진 진실은 참혹했다산모의 출산 거부 의사를 묵살하고 조직적으로 출산을 유도한 병원그리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장애라는 굴레소년의 하나님 고소는 단순한 법률적 투쟁이 아니라,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느냐는 존재 자체에 대한 절망적 비명이었다.

주인공 강다윗 변호사는 이 절규에 응답하기 위해 판을 뒤집는’ 초강수를 둔다바로 현장 검증이다그는 재판장과 상대 변호사를 직접 휠체어에 앉힌다강훈이가 매일 겪어야 하는턱 하나에 가로막히고 시선에 찔리는 고통을 머리가 아닌 으로 느끼게 한 것이다.

결말부에서 드러난 반전은 극적이다강훈의 유일한 온라인 바둑 친구였던 웅산그룹 최웅산 회장은 법정에 서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강훈의 후원과 어머니의 입양그리고 장애 학생을 위한 학교 설립을 약속한다.

드라마는 훈훈하게 마무리되었지만나는 TV가 꺼진 후 검은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드라마 속 최 회장의 학교 설립 약속이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휠체어 현장 검증이 고발한 공감의 부재

드라마 속 명장면인 휠체어 현장 검증은 사회복지학에서 말하는 당사자 (Partnership)’의 중요성을 역설한다비장애인 판사와 변호사에게 휠체어는 잠시 앉았다 일어나는 체험 도구일지 모르나강훈이와 나에게는 신체의 일부이자 세상과 만나는 유일한 통로다.

법은그리고 행정은 늘 합리성과 중립을 내세우지만장애인의 고통 앞에서는 유독 무기력하다드라마 속 강다윗 변호사가 법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 이유는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장애인의 삶을 서류로만 판단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기 위해 매일 왕복 3~4시간을 길에서 버려야 하는 현실학교 설립을 반대하며 집값 떨어진다고 외치는 주민들의 이기심은 판결문 속 문구가 아니라뼈를 깎는 실제 상황이다.

만약 현실의 정책 입안자들과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강다윗의 제안처럼 딱 하루만 휠체어를 타고 그 동네를 돌아다녀 본다면 어땠을까턱을 넘지 못해 식당에서 쫓겨나고화장실이 없어 물 한 모금 마음껏 마시지 못하는 그 현장을 검증하고도 과연 학교 설립을 반대할 수 있을까?

님비(NIMBY)’를 넘어시혜가 아닌 권리로

드라마의 갈등은 최웅산 회장이라는 선한 권력자의 결단으로 해소된다그는 장애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짓겠다고 선언한다이 대사는 수많은 장애 부모들의 가슴을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야 할 지점이 있다장애 아동의 교육권이 왜 한 회장님의 선의(Goodwill)’와 시혜에 의존해야 하는가?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특수학교 설립은 드라마처럼 회장님의 말 한마디로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는다부지를 선정하는 순간부터 인근 주민들의 극심한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현상과 마주한다.

무릎을 꿇고 비는 부모들공사 차량을 막아서는 주민들표를 의식해 뒷짐 지는 지자체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팩트.

드라마 속 박기쁨 변호사는 의뢰인을 이슈몰이의 도구로 삼는 강다윗과 갈등을 빚는다이 갈등은 우리 사회가 장애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장애인의 권리는 누군가의 영웅적 스토리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최 회장의 약속이 아름다운 미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국가가 책임지는 제도적 권리로 정착되어야 한다학교는 회장님이 지어주는 선물이 아니라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사회가 응답해야 할 차례

강훈이는 하나님을 고소하고 싶다고 했다자신의 장애가 천형(天刑)이 아님을자신의 삶이 실수로 태어난 불량이 아님을 확인받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복지학적 관점에서 볼 때장애로 인한 고통의 원인은 개인의 손상(Impairment)이 아니라그 손상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장벽(Disability)에 있다강훈이를 절망하게 만든 피고는 하나님이나 병원을 넘어장애인을 배제해 온 우리 사회’ 전체여야 했다.

최 회장의 학교 설립 약속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드라마 밖 현실에서는 그 학교가 지어질 때까지 수많은 갈등과 혐오의 시선이 쏟아질 것이다그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강다윗처럼 판을 뒤집는 용기혹은 현장을 검증하려는 공감의 자세가 필요하다.

드라마 속 강훈이가 최 회장과 온라인 바둑을 두며 나이와 장애를 넘어 친구가 되었듯학교는 장애 아동이 지역 사회의 친구로 자라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이다.

프로보노는 우리에게 묻는다당신은 강훈이의 바둑 친구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아니면 학교 문을 걸어 잠그는 또 다른 벽이 될 것인가?

법은 현실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강다윗의 외침이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의 귓가에 닿기를 간절히 바란다. 12살 소년이 더 이상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도록이제는 신이 아닌 인간이그리고 사회가 응답할 차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