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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AI. ©김양희

【에이블뉴스 김양희 칼럼니스트】이케아나 쿠팡에서 물건을 고르다 보면, ‘조립 필요’라는 문구는 너무도 당연하게 등장한다. 침대, 책상, 수납장, 의자, 심지어 간단한 생활용품까지도 조립을 전제로 판매된다. 이 문구는 비장애인 소비자에게는 약간의 번거로움 정도로 읽히지만, 많은 장애인에게는 구매를 포기하라는 신호에 가깝다. 물건을 살 수는 있지만, 사용할 수는 없는 상황. 소비의 문턱은 그렇게 조용히 높아진다.

조립은 선택지가 아니다. 힘을 써야 하고, 복잡한 설명서를 이해해야 하며, 일정 시간 동안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상체나 손 사용에 제한이 있는 사람, 인지적 부담이 큰 사람, 혼자 생활하는 중증 장애인에게 조립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늘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많은 장애인은 필요한 물건을 앞에 두고도 구매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불편이 아니라 구조적인 배제라는 점이다. 오늘날 온라인 중심의 소비 환경에서 ‘조립 전제 상품’은 표준이 되었고, 완제품이나 설치 서비스는 추가 비용이 붙는 예외로 취급된다.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립할 수 있는 사람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시장이다. 이는 장애인을 기본 소비자에서 탈락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설치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추가 비용이 부담이 되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서비스 자체가 제공되지 않는다. 쿠팡의 경우 특정 상품만 설치 옵션이 있고, 이케아 역시 배송·조립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경제적 여유가 없는 장애인은 다시 한 번 선택지에서 밀려난다. 접근 가능한 소비가 비용의 문제가 되는 순간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은 반복적으로 ‘혼자 살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낙인을 경험한다.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그 요청은 곧 의존으로 해석된다. 이는 자립생활을 지향해 온 장애인 정책의 흐름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립을 말하면서, 정작 일상 소비에서는 자립을 가로막는 구조를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의 시각에서 조립 상품은 효율의 상징이다. 물류비를 줄이고, 보관과 운송을 단순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효율은 누구를 기준으로 한 것인가. 소비자의 평균을 상정할 때, 그 평균에는 장애인의 몸과 생활 조건이 거의 포함되지 않는다.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은 효율은 결국 차별의 다른 이름이 된다.

조립이 전제된 소비 구조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노인, 임산부, 일시적 부상을 입은 사람, 혼자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 등에게도 동일한 장벽으로 작동한다. 즉 이는 특정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생애 주기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편적 위험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여전히 ‘조립 가능함’을 기본값으로 삼고 있다.

필요한 것은 거창한 배려가 아니다. 완제품 옵션의 확대, 기본 설치 서비스의 포함, 조립 난이도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제공, 접근 가능한 설명서와 고객 지원 체계. 이러한 변화는 이미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기업과 사회가 그것을 ‘필수’로 인식하지 않았을 뿐이다.

소비는 단순한 선택 행위가 아니라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무엇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는 곧 어떤 삶이 가능하냐는 질문과 연결된다. 조립이 전제된 소비 구조는 장애인에게 끊임없이 말한다. 당신은 이 시장의 상정된 소비자가 아니라고.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장애인이 왜 조립을 못 하느냐가 아니라, 왜 여전히 조립이 기본 값이 되어 있는가를 묻는 일이다. 접근 가능한 소비는 특별한 요구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다. 물건을 사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일상, 그것은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평범한 삶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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