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란 특정한 하나의 장애유형을 지칭하는 법적 용어가 아니다. 이는 척수장애, 뇌병변장애, 근육장애, 절단장애, 중증 보행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 가운데 일상생활과 사회참여를 위해 휠체어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사용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보행이 제한되거나 불가능하여 휠체어를 통해 이동 기능을 수행하는 기능 중심의 장애 집단을 의미한다.
장애정책은 오랫동안 사람을 장애명으로 분류해 왔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척수장애, 보행장애라는 구분은 행정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일상에서 장애인이 마주하는 장벽은 진단명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순간, 서로 다른 장애유형의 사람들은 같은 질문 앞에 선다. 버스를 탈 수 있는가. 건물에 들어갈 수 있는가. 병원 진료대에 오를 수 있는가. 키오스크를 사용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하나 더 보태야 할 질문이 있다. 집 안에서 침대에서 휠체어로 안전하게 옮겨 앉을 수 있는가. 화장실과 욕실을 혼자 이용할 수 있는가. 식탁과 싱크대 높이는 맞는가. 엘리베이터 버튼에 손이 닿는가. 편의점 진열대의 물건을 꺼낼 수 있는가. 비 오는 날 보도의 경사와 미끄럼은 안전한가.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일상은 이동 그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이전·위생·식사·구매·의료·노동·여가가 끊기지 않고 연결되는 생활 전체의 문제다.
그래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라는 정책 영역을 진지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는 새로운 장애명을 하나 더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척수장애 등 기존 장애유형 안에 흩어져 있는 휠체어 이용자의 공통된 생활 조건을 정책적으로 가시화하자는 의미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출입할 권리’다. 경사로가 없는 음식점, 문턱이 높은 약국, 자동문이 없는 공공시설은 단순히 불편한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의 접근을 거부하는 공간이다. 장애인의 사회참여는 복잡한 제도 이전에, 문 앞에서 시작된다. 들어갈 수 없는 공간에서는 소비도, 교육도, 노동도, 문화생활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러한 접근성 개선은 휠체어 이용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경사로와 문턱 제거는 유모차를 밀고 이동하는 부모에게도, 보행차를 이용하는 노령 비장애인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한 조건이다. 키오스크의 낮은 높이와 넓은 접근 공간은 어린이와 고령자 모두의 이용 편의를 높인다. 결국 휠체어를 기준으로 설계된 환경은 특정 집단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이동과 이용을 가능하게 하는 보편적 설계, 곧 유니버설 디자인의 출발점이다.
최근에는 디지털 장벽도 커지고 있다. 무인 주문기와 키오스크는 편리함의 상징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는 또 다른 문턱이 되고 있다. 화면이 너무 높거나, 터치 위치가 손이 닿지 않거나, 기기 앞에 휠체어가 접근할 공간이 없으면 이용은 불가능하다. 기술은 발전했지만, 접근성은 뒤처진 셈이다.
장애 선진국의 흐름은 분명하다. 미국, 영국, 북유럽, 일본 등은 ‘휠체어 장애인’을 별도의 고립된 장애유형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휠체어 이용 여부를 건축, 교통, 주거, 의료, 노동, 디지털 서비스 설계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경사로, 승강기, 저상버스, 접근 가능한 화장실, 높이 조절 가능한 진료대, 휠체어 접근형 키오스크는 특별한 호의가 아니라 기본 인프라다.
우리나라도 이제 장애유형 중심 행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지체장애·뇌병변장애 분류는 유지하되, 그 위에 ‘휠체어 이용 여부’와 ‘이동지원 필요도’를 별도의 정책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교통, 주거, 의료, 교육, 노동, 정보접근 정책이 실제 생활에 맞게 설계될 수 있다.
특히 접근성은 단편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집에서 나와 보도를 지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건물에 들어가고, 내부를 이동하며, 키오스크나 창구를 이용하는 전 과정이 연결되어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끊기면 접근성은 완성되지 않는다. 경사로는 있지만 키오스크를 쓸 수 없고, 저상버스는 있지만 정류장 보도가 막혀 있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정책이다.
휠체어는 개인의 한계를 상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가 얼마나 좁고 배제적으로 설계되었는지를 드러내는 기준이다. 계단만 있는 건물, 접근 불가능한 키오스크,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화장실은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설계의 실패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당신의 장애명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당신이 사회에 접근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고 물어야 한다. ‘휠체어 이용 장애인’ 영역의 구축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