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나 조부모, 형제자매 등 장애나 질환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위해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영케어러 이미지. ©Gemini AI 생성 이미지
【에이블뉴스 이정주 칼럼니스트】"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법)이 2026년 3월, 전국 183개 지자체에서 본격 시행되었다. '통합돌봄', '통합지원', '통합사례관리'라는 말이 복지 현장에 홍수처럼 밀려들고 있다. 그런데 정작 '통합'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작했는지, 왜 필요한지, 무엇을 통합하는지 등 궁금증이 생긴다.
'통합돌봄'은 어디서 시작되었나: 1970년대 미국
통합돌봄(Integrated Care)이라는 개념은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은 치솟는 의료비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병원과 보험이 각각 따로 움직이고, 1차 의료·전문 의료·재활이 분리된 채 운영되면서 비용은 폭증했고, 환자는 크게 불편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이다. HMO는 보험·병원·1차 의료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예방부터 치료까지 단일 시스템 안에서 제공하는 실험이었다.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서비스의 연속성을 확보하자는 발상이었다.
이 실험으로 미국의 노인포괄돌봄프로그램, PACE(Program of All-inclusive Care for the Elderly)가 시작했다. 의료·요양·사회서비스를 단일 팀이 단일 예산으로 제공하는 이 모델은 오늘날 통합돌봄의 원형이 되었다. 주목할 점은 그 출발이 '이념'이 아니라 '비용과 비효율'에 대한 현실적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의 분절은 돈이 더 많이 들어가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통합의 출발점이었다.
이론으로 발전한 통합돌봄: 유럽의 학문적 정의
'통합돌봄'을 학문적으로 이론화한 것은 유럽,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이다. Kodner & Spreeuwenberg(2002)는 통합돌봄을 '재정·행정·조직·서비스 전달·임상 수준에서 연결성과 정렬, 협력을 창출하도록 설계된 방법과 모델의 집합'으로 정의한다.
핵심 단어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사람을 한 곳에 모으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시스템들이 서로 연결되어 사람에게 다가오는 구조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이 정의는 이후 전 세계 통합돌봄 정책의 나침반이 되었다.
세계 모범 사례: 네덜란드·일본·북유럽
현재 통합돌봄의 모범 사례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나라는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다.
네덜란드는 국제보건의료비교(Commonwealth Fund Mirror, Mirror 2024)에서 전체 1~2위를 다투는 나라다. 그 중심에는 '부르츠조르흐(Buurtzorg)' 모델이 있다.
2006년 간호사 Jos de Blok이 창안한 이 모델은 10~12명의 간호사로 구성된 소규모 자율팀이 지역 내 300~400명을 담당하며, 복잡한 행정 없이 현장에서 직접 돌본다. 관리자도, 중간 단계도 없다. 팀이 스스로 결정하고 움직인다. 행정이 돌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위해 행정이 최소화된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 모델은 현재 전 세계 25개국 이상으로 확산되었다.
덴마크와 스웨덴은 지방정부가 의료와 복지를 동시에 책임지는 구조로, 행정 분절 자체를 제도적으로 극복했다. 한국처럼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국토교통부가 각각 다른 칸막이를 유지하는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본은 '30분 이내 생활권'이라는 구체적인 지리적 기준 아래 의료·간호·복지·주거·예방을 연결하는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운영한다. '통합'이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접근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모델이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일본이 이 시스템을 도입한 배경에도 비용과 효율의 문제가 있었다. 노인이 병원을 전전하는 대신, 지역 안에서 삶을 이어가도록 지원하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현명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왜 장애인은 통합이 필요한가
세계의 사례는 주로 노인 돌봄에서 출발했다. 그렇다면 장애인에게 통합지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비장애인 보다 더 많은 추가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지금 장애인은 분절된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각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리고, 받아야 한다. 병원은 의료 코드로만 사람을 본다. 주거 문제는 다른 부서 일이다. 복지관은 서비스 프로그램 안에서만 지원한다. 고용 기관은 취업 알선과 직업 훈련만 본다. 그 사이의 연결 비용, 이동 비용, 같은 사정을 반복 설명해야 하는 비용을 모두 장애인 개인과 가족이 떠안는다. 중증장애인일수록 이 부담은 더 크다. 이를 장애학에서는 '추가비용(Extra costs of disability)'이라 부른다.
장애학의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은 이를 명확히 말한다. 장애는 개인의 손상(impairment)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손상을 배제하도록 만들어진 사회 구조에 있다. 장애를 가진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고쳐야 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가 중증장애인을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장애인 통합지원은 그 구조를 교정하는 한 방법이다.
시혜의 통합인가, 권리의 통합인가
그러나 '통합'이라는 말에도 두가지로 나뉘는 지점이 있다. 하나는 제공자 중심의 시혜의 통합이다. 제공자가 편의를 위해 서비스를 묶는 것이다. '당신이 힘드니 우리가 가져다 드린다'는 구조다. 수혜자는 수동적이고, 전달자는 선의의 주체가 되고, 장애인은 여전히 능력 없는 존재로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권리의 통합은 다르다. 분절된 시스템을 장애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실패로 본다. 따라서 서비스는 제공자의 편의가 아니라 당사자의 삶의 흐름에 맞추어 연결된다.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시스템이 그 삶을 따라오는 구조다.
'통합'이 새로운 격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드시 경고 하나를 더해야 한다.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서비스를 한 건물, 한 기관에 몰아넣으면 — 그것은 통합이 아니라 현대판 수용시설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의 학교·병원·체육관·문화센터에 접근하는 대신 '장애인 전용 통합센터' 안에 갇히는 구조라면, 분리와 격리를 세련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정상화 원리(Normalization Principle)는 오래전부터 이를 경고했다. 학교는 지역학교, 병원은 지역병원, 여가는 지역문화센터. 사람이 한 곳에 묶이는 것이 아니라, 지원이 사람을 따라다녀야 한다.
통합돌봄에서 통합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이나 공간이 아니다. 서비스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돌봄통합법이 시행된 지금, 세계의 경험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 통합은 비용과 비효율에 대한 현실적 대응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진화의 방향은 언제나 당사자 중심이었다.
둘째, 행정 칸막이를 그대로 둔 채 서비스만 묶는 것은 진정한 통합이 아니다. 네덜란드가 행정을 최소화한 것, 덴마크·스웨덴이 지방정부에 의료와 복지를 통합한 것은 구조를 바꾼 사례들이다. 셋째, '장애인 전용' 통합은 지역사회 포용의 반대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통합돌봄은 장애인이 능력이 안 되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구조가 장애인을 위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필요하다. 기존의 사회서비스를 장애인을 중심으로 연결하는 것, 그 연결의 궁극적 목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지역사회 곳곳을 자유롭게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
세계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낸 단순한 원리가, 돌봄통합법 시행 원년인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살아 나길 바란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