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병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를 받는 공간이지만, 장애인에게 병원은 때때로 “도달해야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특히 중증 뇌병변 장애인에게 병원 방문은 단순한 외출이 아니다. 장애인 콜택시 예약 가능 시간에 맞춰 움직여야 하고, 이동보조기기를 점검해야 하며, 보호자의 일정까지 함께 조율해야 한다. 어렵게 병원에 도착하더라도 긴 대기시간과 접근하기 어려운 진료 공간, 반복되는 이동 과정은 몸에 상당한 피로를 남긴다. 감염병 시기에는 그 부담이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이 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중증 뇌병변 장애 당사자로 살아오며 이러한 경험을 반복해서 마주해 왔다. 동시에 생물학과 의공학, 재활공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몸과 기술, 그리고 의료 접근의 관계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의공학은 인간의 생체 신호와 의료기기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재활공학은 장애인의 기능 제한을 기술적으로 보완하고 확장하는 분야이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기술이 단순히 기계나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몸을 기준으로 사회가 설계되는가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절감해 왔다.
특히 재활공학을 공부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장애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최첨단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실제로 접근 가능한가의 문제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기술과 디지털 시스템이 존재하더라도 그것이 장애인의 몸과 감각, 의사소통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또 다른 장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원격의료 역시 단순한 비대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의 건강권과 접근권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장애인의 원격의료 이용.(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원격의료(telemedicine)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오늘날 스마트폰과 화상회의 플랫폼을 떠올리기 쉽지만, 원격의료의 시작은 19세기 말 전화 통신을 이용한 의료 상담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이후 무선통신과 위성기술의 발전은 의료를 ‘거리’로부터 조금씩 해방시키기 시작했다. 특히 20세기 중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우주비행사의 생체 신호를 지구에서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을 개발하며 현대 원격의료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다. 우주에서 측정한 심박수와 혈압, 호흡 상태를 지구에서 분석하던 기술은 이후 농촌 지역과 의료 취약지 의료체계로 확장되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급속히 발전한 1990년대 이후 원격의료는 단순 전화 상담을 넘어 영상 진료와 원격 협진, 원격 재활, 디지털 건강관리 체계로 진화하였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그 흐름을 폭발적으로 가속화시켰다. 감염 위험 속에서 세계 여러 나라들은 화상 진료와 전자 처방, 재택 건강관리 시스템을 빠르게 확대했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과 고령자, 만성질환자에게 원격의료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건강권 보장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특히 오늘날의 원격의료는 과거처럼 병원 내부의 특수 장비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스마트워치 같은 대중적 디지털 기기가 원격의료의 기반 인프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환경과 스마트기기 보급률을 가진 대표적인 IT 강국이다. 상당수 국민이 스마트폰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태블릿PC와 스마트워치 역시 빠르게 대중화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장애인 대상 원격의료 활성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가능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라 심박수와 산소포화도, 심전도, 수면 패턴, 활동량 등을 지속적으로 측정하는 웨어러블 의료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태블릿PC는 손 사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스마트폰보다 더 넓은 화면과 다양한 접근성 기능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음성 입력과 시선 추적, 스위치 접근 기능과 결합될 경우 중증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는 스마트워치 기반 낙상 감지 기능이나 AI 기반 건강 모니터링 기술이 고령자와 장애인의 응급 상황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ICT 인프라가 잘 구축된 사회에서는 원격의료가 단순한 “비상 상황용 대체 진료”를 넘어 일상적 건강관리 체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 가정에서 스마트기기를 활용해 생체 데이터를 의료진과 공유하고, 재활 상태를 점검받으며, 건강 상담과 복약 관리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의료 접근의 구조 자체가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존재한다. 스마트기기의 대중화가 곧 장애인의 접근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디지털 기기와 의료 플랫폼은 여전히 “비장애인 평균 사용자”를 중심으로 설계된다. 작은 버튼과 복잡한 메뉴 구조, 빠른 터치 입력, 시각 중심 인터페이스는 중증 운동장애인이나 시각·청각장애인에게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즉, IT 강국이라는 사실만으로 자동적인 의료 평등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미국과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장애인을 포함한 의료 취약계층 중심의 원격의료 체계를 상당 부분 제도화하고 있다. 미국은 메디케어(Medicare)를 기반으로 원격 재활과 정신건강 상담, 원격 작업치료 등을 보험 체계 안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장애인의 디지털 접근성을 고려한 플랫폼 개선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의 NHS 체계는 병원 중심이 아니라 지역사회 중심의 재택 건강관리와 원격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원격의료를 단순한 “비대면 진료 기술”이 아니라 복지 서비스의 연장선으로 바라본다. 이들 국가는 자막과 음성 안내, 단순 인터페이스, 보조공학 연계 등을 국가 차원의 디지털 접근권 정책 속에 포함시키며 장애인의 의료 접근을 공공서비스의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원격의료는 오랫동안 제한적으로 운영되어 왔고, 코로나19 이후 한시적으로 확대된 비대면 진료 역시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비대면 진료는 주로 재진 환자와 만성질환 관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장애인 대상 특화 체계라기보다 일반 의료체계의 일부 기능을 디지털화한 수준에 가깝다.
물론 일부 재활 영역이나 정신건강 상담, 지방자치단체의 건강관리사업 등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원격 건강관리 시도가 이루어지고는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현재의 비대면 진료 플랫폼 상당수는 장애인의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본인 인증 절차, 화면 중심 인터페이스, 음성 중심 상담 구조, 수어 지원 부족, 보조기기와의 비호환성 등은 장애인에게 또 다른 디지털 장벽이 된다. 이동의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원격의료가 오히려 접근 불가능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새로운 배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애인 대상 원격의료가 단순한 “화상 진료”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장애인의 의료 접근은 의료기술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재활공학적 접근이 함께 결합될 때 비로소 실질적인 접근권이 가능해진다.
재활공학은 인간의 기능 제한을 보완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공학기술을 활용하는 학문이다. 원격의료와 재활공학이 결합되면 의료는 단순히 병원 공간 안에 존재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의 일상과 생활환경 속으로 확장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와 웨어러블 센서는 심박수와 산소포화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