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경식 칼럼니스트】19세기 영국의 구빈원(Poorhouse)은 단순한 빈민 보호시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업혁명 이후 급격히 증가한 도시 빈곤을 국가가 관리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사회 통제 장치였다. 특히 1834년 영국의 신구빈법(New Poor Law)노동 가능한 빈민구제받을 자격이 있는 빈민을 구분하며,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빈원이라는 시설 안으로 들어오도록 강제했다.

당시 구빈원은 의도적으로 열악한 환경으로 운영되었다. 이는 빈민이 쉽게 복지에 의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이른바 열등처우 원칙(less eligibility)’ 때문이었다. 도움을 받는 삶이 노동보다 더 비참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었다. 결국 구빈원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는 제도라기보다, 가난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누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인가를 선별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사회복지의 역사에서 구빈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근대 복지가 단순한 돌봄의 역사만이 아니라, 동시에 선별과 통제의 역사이기도 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후 현대 복지국가는 이러한 구빈원적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권리로서의 복지’, ‘보편적 사회보장’,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오늘날 AI와 데이터 중심 행정이 확대되면서, 우리는 다시 새로운 형태의 구빈원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거대한 벽돌 건물 형태의 구빈원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현대 사회의 구빈원은 콘크리트 건물 대신 데이터베이스 안에 존재한다. 종이 서류 대신 알고리즘이 작동하고, 복지 공무원의 직관 대신 점수와 통계가 인간을 판정한다. 이른바 디지털 구빈원의 시대다.

장애인의 삶은 점수와 등급으로 가름 할 수 없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장애인의 삶은 점수와 등급으로 가름 할 수 없다. (생성형 AI 활용 생성 이미지) ⓒ 김경식

현대 복지국가는 효율성을 이유로 수많은 평가 체계를 도입해 왔다. 소득점수, 재산환산점수, 근로능력평가, 서비스 필요도 조사, 돌봄 인정점수 등은 이제 복지행정의 일상이 되었다. 행정은 이를 객관성이라고 부른다. 숫자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통계는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인간의 삶은 본래 점수화될 수 없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 복지 영역은 이러한 점수 행정의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장애인을 의학적 손상 정도에 따라 1급부터 6급까지 등급화해 왔다. 이후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고, 2019년부터 기존의 세분화된 등급 체계는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이라는 2단계 체계로 간소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완전한 의미의 탈등급화라기보다, 기존의 의학적·기능적 판정 구조를 일정 부분 유지한 채 체계를 조정한 성격에 가깝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여전히 활동지원서비스 인정조사, 서비스 필요도 평가, 기능 제한 중심 조사표 등이 지속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활동지원서비스 인정조사이다. 현재 장애인의 활동지원 시간은 이동 능력, 배변·식사·착의 가능 여부, 인지 기능, 사회활동 수준 등 세부 항목들을 점수화하여 결정된다. 겉으로는 객관적 평가처럼 보이지만, 실제 장애인의 삶은 그렇게 단순한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같은 뇌병변 장애인이라도 누구는 가족 돌봄이 전혀 없고, 누구는 지역사회 서비스 접근 자체가 어려우며, 누구는 의사소통의 장벽 때문에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판정표는 이러한 삶의 맥락보다 혼자 몇 걸음을 걸을 수 있는가”, “식사를 어느 정도 수행하는가같은 기능 중심 수치에 더 집중한다.

그 결과 장애인의 삶은 점점 인간의 삶이 아니라 평가 가능한 기능의 총합으로 축소된다.

실제로 장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판정 체계에 대한 비판이 이어져 왔다. 장애를 단순한 신체 손상으로 보는 의학적 모델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 장애학은 장애를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 환경과 구조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실의 판정 체계는 여전히 얼마나 정상에 가까운가”, “얼마나 혼자 수행 가능한가를 중심으로 인간을 평가한다.

이 지점에서 미셸 푸코의 정상성 비판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근대 사회는 끊임없이 인간을 측정하고 비교하며 정상비정상을 구분해 왔다. 장애인 판정 체계 역시 이러한 정상성 권력의 연장선 위에 존재한다. 점수는 중립적인 숫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몸이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의 기준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AI 시대에 들어서며 이러한 점수 체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사회 역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복지행정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 위기가구 예측 시스템, 부정수급 탐지 시스템 등을 운영하며 건강보험료, 통신비, 단전·단수 정보, 카드 사용 내역, 체납 정보 같은 데이터를 결합해 위험군을 예측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은 고독사 예방이나 위기가구 조기 발견이라는 긍정적 기능도 가진다. 그러나 동시에 복지가 점점 더 인간을 만나기 전에 먼저 데이터를 읽는 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과거에는 복지 공무원의 현장 방문과 상담, 지역사회의 의견, 당사자의 실제 생활환경 등이 일정 부분 고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