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원선애 칼럼니스트】방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장애인식개선교육' 시간이 있었다며 둘째가 툭 한마디를 던진다. 교육 중 언니의 학폭 사건을 다룬 엄마의 칼럼을 봤다길래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엄마 글 어땠어? 학교에서 접하니 엄마 대단해보이지?" 하고 글 내용과 영 상관없는 질문부터 던졌다.

아이는 신기했다고 짧게 답했다. 교실 한복판에서 엄마의 글을 마주한 아이는 평소 같았으면 "우리 엄마가 쓴 글이야!"하고 한마디쯤 자랑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말을 꺼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랑하고 싶은 엄마의 글에 정작 자기가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낸 언니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자식의 입에 내가 지퍼 하나 달아놓은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쓱 긁힌다. 

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여자 홍길동의 탄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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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언니를 언니라 부르지 못하는 21세기 여자 홍길동의 탄생.(ChatGPT 활용 생성 이미지) ©원선애

첫째의 느린 발달을 마주하고 사방의 치료실과 낮병동을 정신없이 뺑뺑이 돌던 시절, 보통의 육아라는 평탄한 궤도에서 튕겨 나간 일상이 버거워 둘째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체력과 정신력은 방전된 배터리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다 낮병동에 딸의 또래 엄마이자 만삭의 임산부였던 이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남산 만한 배를 쓰다듬으며 말한 그 순간의 워딩이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 나도 건강한 아이 낳을 수 있다는 걸 반드시 보여줄 거야!"

그 말은 나랑 같은 처지의 사람 입에서 흘러나왔기에, 뒤통수를 망치로 냅다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고 아팠다. 국가공인 계급장처럼 느껴지는 '영유아 검진'에서 처참하게 하위 1%를 찍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료를 풀코스로 돌리며 영혼과 영수증을 동시에 길바닥에 뿌리고 다녔으며 또래들이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갈 때 혼자 침묵을 고수하던 아이들. 그럼에도 나는 내 아이를 단 한 번도 '건강하지 않은 아이'라 여겨본 적이 없었다. 부모로서 '건강한 아이'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욕망이었지만, 그 한마디는 우리가 그동안 서로 모른 척 애써 눌러두었던 서글픈 진실을 적나라하게 후벼 파버린 것이다.

" 잘될 거야, 잘 클 거야, 그저 조금 느린 것뿐이지 뭐."

치료대기실에 모여 서로의 등을 영혼 없이 토닥여주던 그곳에서, 사실 우리 모두 마음 한구석에는 이미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너무 일찍 패잔병이 된 자신을 인정하기 싫었을지 모른다. 동지의 결의에 찬 눈빛과 남산 만한 배를 목도한 이상, 나는 더 이상 "우리 애는 그냥 좀 느린 거라니까?" 하고 천연덕스럽게 정신승리할 수가 없었다.

이후 한동안 그놈의 '건강한 아이'라는 다섯 글자가 귓가에서 웽웽거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잔인하고도 기괴한 집착일 수도 있겠지만, 그날 이후 1년 동안 장애아를 낳은 부모가 또다시 장애아를 만날 로또 같은 확률이 대체 몇 퍼센트나 되는지 맘카페와 병원 대기실, TV에 등장하는 유명인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엑셀 창을 띄워 놓고 수치를 기입해 어설픈 통계와 엉터리 확률 검증을 했다. 겁에 질린 모성(母性)의 발악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첫째와 4년 터울로 겨우 품에 안은 둘째는 분만 순간 태어나자마자 목청이 터져라 우렁차게 울어댔다. 심지어 핏덩이 신생아가 만 하루도 안 되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더니, 수간호사의 엄지 척을 받는 아주 안정적인 폼으로 수유를 하고 온갖 검사들을 가뿐히 통과했다.

신생아 시절 밤낮없이 잠만 자던 첫째와 달리, 이 녀석은 잠시도 쉬지 않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집 안을 스캔하고, "엄마, 나 좀 봐봐요!" 하듯 옹알이와 사회적 웃음으로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시도해 댔다.

하루라도 빨리 제 온몸을 움직여 세상을 탐색하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의 눈빛을 보며 속으로 '이번엔 성공이다!'하고 비열하고도 간사한 쾌재를 불렀다. 발달 과업들을 영유아 검진표보다 앞서서 척척 해내는 힘찬 몸짓과 또렷한 발성을 보며, 학령기 전 부모라면 누구나 거치는 '혹시 내 아이가 천재?'라는 뽕에 나 역시 취해버렸다. 마치 첫째의 느린 발달로 흘린 내 피눈물에 삼신할미가 뒤늦게 보상금이라도 쥐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첫째는 제 밑으로 들어온 동생을 보고 덩달아 자극을 받아 질투와 승부욕, 모방하기 같은 회당 10만 원짜리 치료센터에서도 절대 못 배워올 온갖 감정들을 몸소 체험했다. 둘째는 육아의 소소한 재미도 느끼게 해 주고, 우리 가족에게 평범한 일상을 선물해 줬다. 언니에게는 그 어떤 족집게 치료실보다 확실한 '동기부여 펌프질'을 해대니 이 얼마나 복덩이며, 효녀였던가. 과거의 그 효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정신적 보상'이자 언니의 '인간 치료제'라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그 고마운 둘째가 요즘 사춘기의 문턱에 걸터앉아 '광인(狂人) 모드'의 스위치를 제멋대로 온 앤 오프(On&Off)하는 중이다.

부모 동행도 없이 친구들과 떼를 지어 다이소를 갔다가 햄버거를 사 먹고, 코인 노래방 간 것을 들키기도 했으며 어느 날에는 갑자기 친구네서 파자마파티를 할 거라 일방적인 통보를 한다. 악을 쓰다가도 배가 고프면 혼자 냉장고를 털어 야무지게 밥을 차려먹고, 혼이라도 나는 날엔 하루 종일 침묵하며 '자식이라는 무서운 벼슬'을 온몸으로 시위한다. 나 역시 분명 그런 시절을 거쳐 왔을 터인데 참으로 낯설고도 신기한 풍경이다.

내 눈에는 곱슬머리 빡빡이에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던 아이의 잔상이 여전히 겹쳐 보이기도 하고, 첫째는 겪지 않은 혹은 겪어보지 못할 경험들을 둘째가 하고 있으니 다행과 당혹스러움의 중간 어디쯤이라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언니'라는 호칭은 엄연히 유지하면서도, 집에서 함께 숨 쉬는 대부분 언니를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평소 내 잔소리 말투를 그대로 복사해서 네 살이나 많은 언니에게 매서운 명령조로 쏘아붙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저녁으로 "언니 약 먹었어?" 하며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 조그만 어깨에 얹힌 책임감의 무게가 느껴지다가도, 대부분의 일상을 보고 있으면 그저 제 살기 바쁜 전형적인 사춘기 입문자의 삶이다. 그러던 어느 날 뚱딴지같은 질문을 한다. 

"엄마, 나 커서도 언니랑 같이 살아야 돼?" 라거나 "언니는 어른 되면 누구랑 살아?" 같은 가슴 철렁하게 만드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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