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 김영아 칼럼니스트】함께 했던 발달장애인의 부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종종 이상한 장면을 보게 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00님께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장례 치루는 동안 활동지원사 선생님께 일주일 정도 부탁드려서 같이 지내게 했어요”
“장례식장에 데려가면 너무 슬퍼하고 충격받을 것 같아서요.”
“죽었다고 해도 그게 뭔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요.”
부모의 죽음인데 정작 자녀는 그 사실을 가장 늦게 알거나 모르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모의 장례에 상주로 함께하고, 영정사진 앞에서 인사하거나, 가족들과 함께 슬퍼하거나, 부모와 작별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상황을 ‘당사자를 위한 보호’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내 가족의 죽음인데 왜 나(당사자)는 빠져 있어야 할까. 그리고 내 죽음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나는 빠져 있지 않은가.
죽음을 ‘아는 것’에도 능력과 기회가 필요하다. 최근 나는 ‘죽음문해력(Death Literacy)’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호주에서 처음 도입된 개념으로 죽음과 사별, 돌봄, 임종에 관한 정보를 이해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에게 필요한 선택을 해나가는 힘을 뜻한다. 쉽게 말해, 죽음에 대해 알고, 묻고, 말하고, 도움을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예를들어, 부모가 많이 아플 때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아는 것, 사람이 죽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 장례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하는 것도 죽음문해력이다.
내가 아플 때 누구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지, 어떤 치료를 받고 싶은지, 내가 죽었을 때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은지, 누구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싶은지 말해보는 것도 죽음문해력의 한 부분이다.죽음문해력은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교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내 삶의 주인이 위한 능력이다.
발달장애인에게 죽음은 너무 오랫동안 ‘설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도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다. 부모가 죽고, 형제자매가 죽고, 함께 살던 친구가 죽는다. 나이가 들면 자신의 몸이 달라지고 질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발달장애인에게 죽음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괜히 불안해할까 봐.”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어서.”
그 결과 발달장애인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이해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죽음을 설명하지 않는다고 슬픔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호주의 ‘Talking End of Life’ . ©Talking End of Life 홈페이지
매일 보던 엄마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아무도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익숙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오지 않는데 “멀리 갔다”고만 이야기한다면 어떨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질문할 시간을 주고,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고, 장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지원일 수 있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죽음문해력은 글을 많이 읽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부모에게도 죽음문해력이 필요하다. 죽음문해력은 발달장애인 당사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부모 역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이 아이와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가.”
부모 사후의 삶을 준비하면서 정작 부모의 죽음 자체는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디에서 살지 계획하면서도 엄마가 언젠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돈을 어떻게 관리할지 준비하면서도 장례식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부모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재산과 돌봄 계획을 남기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많은 부모들은 이 같은 현실적인 고민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다. 부모를 잃고 살아가는 많은 당사자들을 본 입장에서 당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 부재의 인정과 애도이다.
여기에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자녀가 부모의 죽음을 이해하고, 슬퍼하고, 기억하고, 이후의 삶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비장애 형제자매에게도 죽음문해력이 필요하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가족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질문들이 부모의 노화와 함께 갑자기 현실이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내가 동생을 책임져야 하나?”
“돈 관리는 누가 하지?”
“병원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면 누가 해야 하지?”
“나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을 부모가 사망한 뒤 처음 시작한다면 너무 늦고, 너무 버겁기만 하다.
죽음문해력은 가족 구성원 모두가 미래의 돌봄과 책임을 미리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누가 무엇을 맡을 것인지, 가족이 할 수 없는 것은 어떤 지역사회 자원과 연결할 것인지, 발달장애인 당사자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실무자에게도 죽음은 ‘복지 밖의 일’이 아닌데, 복지 현장에서 숱한 죽음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용자의 가족이 갑자기 사망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이용하던 당사자가 중병에 걸리기도 한다.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일도 있다. 이 순간 실무자들은 당황하고 허무해하며 자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장례식에 참여하게 해도 될까요?”
“계속 엄마를 찾는데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그동안 장애인복지 현장에서는 자립, 직업, 금전관리, 건강,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교육을 해왔다. 하지만 죽음과 사별은 좀처럼 교육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발달장애인의 평균수명이 늘고 부모와 함께 고령화하는 시대에 죽음은 더 이상 복지 현장 밖의 사건일 수 없다.
죽음과 사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애도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임종 과정에서 당사자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역시 지원자의 역량이 되어야 한다.
죽음문해력은 결국 ‘삶의 문해력’이다. 나는 죽음문해력을 공부할수록 오히려 삶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
누구와 살고 싶은가. 아프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죽음을 이야기하려고 시작했지만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다. 그래서 죽음문해력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능력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어디에서 살 것인가”,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를 물어왔다.
이제 여기에 하나의 질문을 더해야 한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와 경험, 쉬운 설명과 선택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다. 죽음에 대해 배울 기회가 적었을 뿐이다.
죽음문해력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필요한 전문지식이 아니다. 당사자가 자신의 죽음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가족이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형제자매에게 책임이 갑자기 넘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실무자가 죽음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삶의 기술이다.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이야기에 당사자가 빠져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내 삶이라면, 내 죽음의 이야기에도 내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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